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문사 봄호를 읽었다.

빼놓을 게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김사과의 글과 강혜빈의 시가 좋았고, 하이픈에 실린 글들은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머리가 아플 때는 역시 소설이다.

 

1. 권여선, 손톱  ★★★★☆

이제 권여선이라고 하면 조금은 과한 기대를 갖고 읽게 되는데, 여지없이 그걸 충족 시켜준다.

사실 그냥 만점을 줘도 무방한, 봄 소설 중 베스트.

견디고 버티는 생활에 대한 육박하는 감각은 물론이고 다 읽고 나면 아무말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서술이 집요하고 압도적이다.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난과 생활의 디테일부터 막막한 두려움을 그려내는 매 장면들 모두가 빼놓지 않고 좋다.

소희의 휴일, 그 작디 작은 여유가 말 그대로 슬프면서 좋다.

 

2.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

이 약간의 심드렁함은 권여선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금희다운 매력이 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인물, 신념의 허무함, 독특한 회고적 감성 같은 거 말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마치 동면을 지속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던 시절은 다 잊은 봄날의 곰들처럼, 아니면 우리가 완전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상실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아버린 세상의 흔한 아이들처럼” 이게 결국 이 작품의 이야기다.

감각적이고 반짝이는 장면이 여럿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김금희의 이력에서 그렇게 빛나는 소설은 아닌 것 같다.

 

3. 이기호, 한정희와 나  ★★★★

이기호의 계속되는 일종의 ‘실명소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오래 전 김숙희는>, <최미진은 어디로>,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 등에 이어 다시 ‘이름’이 표제에 있다.

이 소설들은 대체로 웬만한 문학상 수상집에 들어가 있는데, 그렇게 보면 정말 상복이 없는 작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소설들 중 어떤 작품은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대체로 실제 작가인 이기호 ‘나’와 ‘이름’과 ‘사연’을 가진 어떤 인물 간의 관계를 그린다.

작가로서의 솔직한 고민이 들어있다.

고통을 이해하고, 글로 쓴다는 것. 아니,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한가에 대한 것.

이름과 사연이 주는 리얼함이 있고, 연속되는 시도가 흥미롭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단순하다는 느낌도 있다.

 

4. 허희정, 인컴플리트 피치  ★★★★

이 무기력하고 몽롱한 소설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가 어떤 갈라짐도 없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만나고, 굳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아도 비현실적인 현실을 이렇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등단작인 <페이퍼 컷>과 <파운드 케이크>(그러고 보니 제목이 전부 영어다)에서 느껴졌던 약간의 아쉬움이 이 소설에서 많이 극복된 듯하다.

‘어쩌다 보니’ 식의, 전혀 주체적이지 않은, ‘그냥 그렇게 되는’ 인물들은 무척 많이 보아 왔지만, ‘백’과 ‘O’의 무기력은 조금 특별해 보이기도 한다.

 

5. 강화길, 우리는 사랑했다  ★★★☆

이제부터 네 편은 좀 짧은 소설이다.

강화길은 이제 이런 주제에 좀 골몰하기로 작정한 모양인데, 꽤 날카롭게 읽힌다.

사랑과 폭력, 안심과 불안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보여준다.

결국은 남성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 여성을 굴복시키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이 불안하고 불균형한 관계를, 또 어쩔 수 없이 ‘사랑’인 관계를 섬세하게 보여주려면 인물들의 ‘관계’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를 완벽하게 알고 있는 서술자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런데 그게 꼭 3년 전에 죽은 여자의 ‘혼’이어야 했을까.

결국 침실로 여자를 끌어들이는 이 남자와 죽은 채로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이 여자를 어디까지 읽어내야 할까.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불안’이 많다는 것은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6. 임솔아, 신체 적출물  ★★★★

강렬한 이야기이고, 당연히 작가 스스로 디테일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소재였는데 이렇게 써 버리니 조금 아쉽다.

은지와 은하의 자매 이야기로 일종의 대비를 구성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결국 타협에 이르는데 그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이진 않는다.

발가락 절단과 그 일련의 과정이 범접할 수 없는 실감을 보여주지만 그게 결국 ‘신체 적출물’ 이상의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

따로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문학3>에 실린 <병원>이 훨씬 좋았다.

 

7. 정용준, 물거품  ★★★

왜 Y와 U라는 이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이야기에 몰입하고 진전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과 또 그럴 수 없어서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에 대해, 사랑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에 대해 얘기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기억을 부르는 방법이나 꿈속에서 새로운 연인, 죽은 사람을 만나는 설정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약간 정용준답지 않은 소설.

 

8. 최은영, 601, 602  ★★★★

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세대가 겪은 일종의 집단 기억.

거의 자전적인 소설이 아닐까 싶은데, 여성 멸시에 가까운 남존여비(오랜만에 써보는 말)의 시대를 가감없이 그리고 있다.

2017년에 이런 이야기를 읽으니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풍경이 거의 야만적이었구나 싶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20년 뒤에 우리 시대는 또 얼마나 야만적이었다고 기억될지 새삼스럽다.

이 소설을 이 작가의 세대가 읽으면 정말 말도 안되지만 그땐 그랬지, 할 텐데 90년대 이후 태어나 200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독자가 읽는다면 어떨까. 좀 다르려나.

지나가버린 한 시대의 풍경을 그리면서도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여전히 보여주는 최은영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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