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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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호의 시즌이 왔고, 창비가 역시 제일 먼저 나왔다.

‘페미니즘’의 바람이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

그 어떤 문학적 이슈보다도 크고, 오래 지속될 것 같다.

그런데 “페미니즘으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조금 정체 상태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어떤 독법이라도 그렇겠지만, 비판적 재독에서 새로운 발견으로 나아갈 때 한 번쯤은 뒤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실려 있는 세 편의 소설을 읽는다.

 

1. 구병모,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  ★★★☆

SNS, 특히 트위터를 중심으로 파생되는 문학 텍스트의 유통에 주목한 작품이다.

시의적절하다고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학3’의 각색 사태나 ‘김훈’에 관한 비판, ‘듀나’와 같은 기묘한 정체성 등이 모티프가 되어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물론 작가 본인이 꽤 적극적으로 SNS를 활용하고 있음도 지적해야겠다).

일단 ‘피씨주의자’라는 제목이 세 가지 의미로 읽혔다.

우선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가 P씨, 그리고 웹상에서 이루어지는 여론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PC(personal computer), 마지막으로 흔히 ‘PC함’으로 자주 활용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아마도 이 작품에 의도는 정치적 올바름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것일 텐데, 트위터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의 현장감에 비하면 소설은 조금 약한 편이다.

이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P씨 작품의 단점들이 곧 이 소설의 단점이기도 하다.

결국 P씨와 서술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결말 부분은 어느 순간 예측 가능한 것이기도 했고, 소설 속에서 꽤 많이 동원되는 희귀한 어휘나 표현들은 흐름을 좀 깨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목적이 분명한 소설이기 때문에 차라리 실제 논란이 되었던 사건을 아예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고 조롱이나 조소로 읽으려고 해도 결말은 사실 너무 비장하다.

여러모로 아쉬운 지점이 있지만 세태의 흐름을, 특히 소설과 작가, 독자 등의 관계를 예민하게 포착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계절에 여러 글을 쓴 작가여서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이후 여러 지면에서 다양하게 ‘호명’되는 작가인데 좀 소모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장편 <한 스푼의 시간>은 일단 논외로 해도 <지속되는 호의> 이후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이 없다.

어떻게 써야 할지보다 무엇을 써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2. 김인숙, 아주 사소한 히어로의 특별한 쓸쓸함  ★★★☆

말 그대로 사소한 히어로들의 소설.

순간이동을 하는 K, 소시지를 굽는 배터리맨, 그리고 자신의 놀라운 ‘시야’를 발견하는 주인공 ‘그’.

생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종의 소영웅이라는 설정은 좀 올드하다는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짊어진 삶이 무척 무겁다는 것은 잘 서술되어 있다.

다소 소박하고 단순한 ‘희망’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게 만드는 결론이 아쉽다.

K의 사연은 <순간이동자의 슬픔-어느 보통의 삶>(황해문화, 2017년 여름호)에 실려 있는데, 이를 보면 일종의 연작일지도 모르겠다.

황해문화에 실린 소설이 좀 더 나았다는 생각이고, 그 소설의 마지막 문단이 이 소설들의 의미를 잘 말해준다.

누구도 그를 보지는 못했지만, 봤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은 자신이 방금 전에 뭘 본 것 같은데 하면서, 방금 전의 절박함을 깜빡 잊었다. 마치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솜털처럼, 그렇게 스쳐 지나간 순간. 그러고나면 남는 것은 다시 열심히 살아야 할 삶이었다. 사실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는데, 열심히 살아야 할 삶 이외에도 그들에겐 남은 것이 있었다. 그들이 보았으나 보았다고 믿지 못했던 눈 깜짝할 사이의 순간들. 그들 모두를 살짝 건드렸던 그 특별한 순간들. 그들 모두의 보통의 삶이 가진 바로 그 특별한 순간들이었다.(145쪽)

 

3. 정용준, 눈구름  ★★★☆

신체, 정신적 불구에 대한 이 작가의 계속되는 천착.

이해할 수 없는 정신적 ‘고장’을 이해해 보려는 정용준 특유의 노력이 이 소설에서도 돋보인다.

감정을 없앤다는, 아니 정확히는 ‘어떤 감정’을 제거한다는 설정은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상상 가능해봄직 하다.

어떻게 누군가는(혹은 우리는) ‘사이코패스’가 되는가.

죄를 짓는다는 것, 벌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됐다.

‘나는 충분히 벌을 받았으니, 이제 너도 벌을 받아’의 태도는 꽤 통쾌했다.

그러나 결국엔 ‘감정 제거’의 시술과 그 이후의 과정에 설득되지 못했고, 엄마 ‘소아’의 역할이 후반부에 좀 이상해진 것 같다.

그리고 제목인 ‘눈구름’의 의미는 여전히 짐작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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