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7년 여름호 & 릿터, 2017년 6/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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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학 여름호를 읽었다.

첫 시집과 첫 소설집에 주는 김준성문학상을 각각 백은선과 최은영이 받았고(충분히 납득 가능했다), 창간인인 김준성 선생의 10주기 기념 특집이 있었다.

재수록 등으로 지면이 많이 필요했을까. 소설은 두 편밖에 실려 있지 않다.

시 지면은 좋은 작품이 많았는데, 질적으로도 소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1. 김유담, 탬버린  ★★★

무난하게 읽히는 소설.

노래방에서 탬버린을 마구 흔들어대던 고교 시절의 기억과 이제 아마도 이십 대 후반을 지나 서른 즈음에 이르렀을 인물들의 현재가 교차하는 이야기.

은수와 송과 반장 모두 나름의 사연과 매력을 가진 인물이기는 한데, 평면적이고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송, 그런 것들에 무감각하고 심드렁한 은수, 1등이지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는 반장 등.

어쩌면 이 소설은 이런 종류의 소설이 얼마나 쓰기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김애란이 개척하고 김금희나 최은영이 뻗어나가는 유형의 작품들.

신선하고 좋은 장면이 꽤 있는 편이고, 탬버린이라는 독특한 설정도 괜찮은데, 결정적으로 멈추게 하는 ‘문장’이 없다.

등단작도 그렇고, <영국산 찻잔이 있는집>이나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 같은 작품들을 보면 캐릭터나 설정은 나쁘지 않는데 대체로 익숙하고, 또 무난해서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자기 스타일에 대한 고심이 좀 필요할 듯.

 

2. 윤대녕, 생의 바깥에서  ★★☆

결국 윤대녕도, 우려했던 대로 이렇게 올드해지는구나.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까지가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장편 <피에로들의 집>에서 약간 감지되었던, 최근의 <백제인>에서 심각해지고 말았던 ‘올드함’이 이렇게 엄습해버렸다.

생의 말년에서, 자기 삶의 굴곡을 다른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야 마는.

그런데 그 경험이라는 게 그다지 긴요하지도 않은.

영화배우 김준영의 사연과 ‘나’의 사연이 만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가 별거 중인 아내에게 연락해봐야겠다는 수준 아닌가.

그래도 장점이 있겠지 싶어 꽤 노력해 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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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의 소설 지면은 확실히 색깔이 있다.

외국 작가의 단편을 하나씩 소개한다는 것, 각각의 소설이 완결된 형태로 편집된다는 것 등인데, 좀 ‘민음사’ 위주의 작가군에게 청탁이 자주 가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겠지만.

아무튼 두 편이 실려 있다.

 

1. 구병모,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

작가가 구병모라서 그랬을까, 얼핏 동화같은 제목이라고 느꼈는데, 전혀 다른, 한국 여성의 현실을 악몽처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어찌됐든 한국여성 서사의 새로운 신호탄이라면, 구병모가 최근에 발표한 일련의 소설들은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여성이 여성일 수밖에 없는 절대조건, 즉 임신과 출산에 관해, 또 한 아이를 기른다는 문제에 관해 이토록 치밀하게 써나갈 수 있는 작가는 드물 것 같다.

출산을 앞둔 여성이 경력단절을 무릅쓴 채 무연고의 농촌으로 내려가는 이야기는 이미 그 자체로 끔찍함이 어느 정도 예견될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식으로 반복되는 남편의 무책임함까지 겹쳐지니 좀 극단적인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한 아이가 생겨난다는 것은 ’19세기’적 의미와는 다르게 온 마을의 일, 그러니까 사회 전체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천착이 좋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역시 ‘최씨’라는 인물이었는데, 결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도 관련되어 있어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익명성이라는 도시의 속성이 그나마 정주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얘기하는 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싶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인상적인 서술이 많았는데 한 대목만 옮겨 놓는다.

이런 어르신들의 세계 속 어린이들은, 차 없는 거리에서 아무런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고 다방구나 땅따먹기로 왁자하게 뛰놀다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면 각자의 집으로 뛰어가는 생물들이었다. 거기서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세계에는 네발자전거나 축구공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그림 같은 세계에서 어미란, 한 아이가 더 태어나면 상 위에 숟가락 하나만 추가로 올려놓으면 되는 존재였다. (161쪽)

 

 

2. 최영건, 쥐  ★★★☆

삶의 단면을 딱 잘라 보여주는 단편소설의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미묘하게 낯선 감각이 있다.

<공기도미노>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핏줄로 연결된 이 질긴 가족 관계가 서로의 애증이 겹치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서사를 즐기는 것 같다.

장편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좀 더 파국으로 몰고가길 바랬던 아쉬움이 이 소설에서는 꽤 진전이 있었다.

그래서일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좋게 읽었다.

이 괴상하게 묘한 고택과 그 속의 인물들이 마치 ‘쥐’처럼, 또 한 편의 연극처럼 그려지는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다만 이 낯설다는 감각이 소설의 구성하는 인물이나 사건, 공간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문장 자체에서 와야 하는데 그게 좀 이상하게 온다.

좋은 의미에서 독특하고 낯선 게 아니라 어떤 문장은 말 그대로 이상해서 잘못 쓴 게 아닐까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서술의 시점이나 대화의 행갈이도 좀 특이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됐는지는 사실 모르겠다.

어쨌든 좀 더 지켜보고 싶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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