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7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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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여름호를 읽었다.

읽을거리가 무척 많았는데, 특히 실린 소설들이 다 좋았다.

 

1. 배수아,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

모호하고 몽환적이지만 이 소설 속 세계는 그 자체로 단단하게 직조된 소설.

배수아가 이야기를 장악하면 소설은 완벽해진다.

대충 휘갈겼거나, 멋대로(중의적 의미에서) 쓴 문장, 어휘가 전혀 없다.

‘언어’의 문제를 다루면서 작가가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가 아닐까 생각하며 읽었다.

“그의 언어가 진행되는 동안 내 감각과 직관이 어렴풋하게 그려낸 내용”(67쪽)

“놀랍게도, 우리의 경험이란, 사실 우리의 직관이 눈에 보이는 형체를 입고 나타나는 것에 불과합니다”(87쪽)

단순하게 언어 이전의 혹은 이후의 소통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통한 “직관”의 교환이 가능함을 아주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적인 것’에 대한 강조나 ‘문학적 이미지’에 관한 사유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내가 모르는 언어로 낭독을 해도 어떤 이야기가 내게 형성되는 것처럼,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가지 않아도 내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는 것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그들도 느낄까? 라고 작가는 물었고, 느낀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2. 김영하, 오직 두 사람  ★★★★★

그냥 만점을 주겠다.

이것이 프로의 소설임을 역력하게 보여주는 작품.

폭발한 김영하는 급이 다르다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왜 다른 서사 장르가 아니고 소설이어야 하는지를 매순간 보여준다.

불필요한 문장이나 묘사가 전혀 없고, 밀도의 조절이 능수능란하다.

전매특허라고도 할 수 있을 매력적인 도입부에, 아빠와 딸로 보여주는 인간의 ‘관계맺음’에 관한 통찰.

단점을 찾기 어려웠다.

 

3. 조경란, 11월 30일  ★★★☆

뭔가 좀 조경란답지 않은 소설이랄까.

촘촘한 느낌이 없고, 특별한 이야기는 아닌데 이유없이 혼란스럽다.

인물들의 사연은 너무 감춰진 게 아닌가 싶고, 서사에 등장하는 소재는 너무 많다.

한국의 오늘을 사는 어떤 스물일곱의 자화상을 스케치한다는 느낌 정도만 알겠고, ‘닭’과 ‘달걀’, 그리고 광장에 대한 결말의 묘사는 꼭 필요했을지 회의적이다.

 

4. 최민우, 우주의 먼지  ★★★★

단순하게 말하면 어떤 영업사원의 연극배우로의 전환, 그리고 그 체념을 그린 소설.

전체적으로는 좋았으나, ‘한철’의 결심이 쉽게 납득되지가 않았다.

연극에의 몰입과 경도가 좀 더 구체적이고 인상적으로 그려졌으면 좋았을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흔하디 흔한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라는 표현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이 인물의 삶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서사는 먹먹하지만, 그 결말로 가기 위한 장치가 어쩔 수 없이 작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최민우의 이력에서 보면 한 단계 더 나아간 게 아닌가 싶다.

 

5. 김봉곤, 컬리지 포크  ★★★★

등단 이후 한결같이 ‘게이 서사’로 자기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작가.

소설 속의 ‘나’와 작가인 김봉곤은 별로 구분되지 않고, 분리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냥 ‘나 1985년에 진해에서 태어난, 남자가 너무 좋은 게이이고, 편집자이자 소설가야’라고 말하면서 (아마도) 자신의 판타지를 즐길 뿐이다.

이렇게 막 밀고 나갈 때, 끝내 아름답다고 느끼지는 못했으나, 이것도 괜찮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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