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중앙, 2017년 여름호

x3904000295633

 

바로 지난 봄에 문예중앙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는 얘기를 썼는데, 갑자기 휴간을 선언해버렸다.

당분간 못 보게 될 잡지여서 그런가, 유독 알차게 읽혔다.

“문학의 여성 내러티브”라는 특집에서는 지금은 시행착오 중이라는 윤이형의 솔직한 글이 좋았고, 김성중과 김홍중의 대담도 겉돌지 않고 서로가 육박해 오는 주제를 다룬다는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시 다섯 편 정도를 발표할 수 있게 하고 시작노트까지 싣는 잡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아무튼 아쉽다.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앞에 실린 두 작품은 추세에 맞게 좀 짧다.

 

1. 김유진, 나팔  ★★★

언니의 아이를 사흘 간 맡아 보게 된 동생의 이야기.

아무래도 짧아서일 테지만 왜 아이를 맡겨야 했는지, 언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너무 많이 감추어져 있다.

‘소리’에 예민한 아이로 미루어 짐작건대 ‘고성’이 오가는 가정의 불화나 학대, 폭력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다.

아이라는 존재의 불가해함이나 양육의 고됨 같은 것을 얘기하는 소설은 아닐 테고, 아마도 ‘언니’의 경력단절이나 우울증 같은 것들이 좀 더 언급할 만한 것일 텐데 제시된 장면이 거의 없다.

제목이 왜 ‘나팔’이어야 했는지도, 결말에서 나팔꽃을 바라보는 장면만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2. 최진영, 막차 ★★★★☆

성공적인 짧은 소설.

길이와 내용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왜 큰 차를 무서워하는지, 그래서 그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던 ‘승지’의 사연이 마지막에 밝혀질 때 꽤 충격이 있다.

생존이라는 것은 오로지 운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인식 아래에서 늘 막차에 오르는 밤을 계속 살아야만 하는 승지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계속 반복되는 일종의 악몽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자연스럽게 읽힌다.

버스가 출발하고 시작되는 이 악몽은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계속되다가 버스가 멈출 즈음에야 ‘죄책감 다음에 오는 단어’와 함께 끝난다.

그렇게 보면 장과 남의 조금은 연극적인 대화도, “아주 크고 무거운 발자국”이라든가 “검은 덩어리” 같은 다른 차원의 공포를 상기시키는 대목들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쨌든 ‘막차’라는 단어와 설정에서 흔히 떠오르는 익숙한 장면들을 이 소설이 전복시키지는 못했다는 것 정도.

 

3. 김효나, 남자여자-직전에서  ★★★☆

그야말로 ‘직전’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된다.

‘남자여자’ 사이에 ‘직전’과 ‘직후’ 사이에 어떠한 경계나 공백도 없는, 사실상은 하나인 ‘2인용 독백’ 같은 이야기.

직전이나 찰나 같은 어떤 ‘순간’을 최대한 길게 늘여보려는 소설적 시도 같은 걸로 여겨지기도 하고, 마치 그림처럼(작가의 이력을 참고할 때) 스케치를 해나가고 선과 색을 덧입혀가는 작업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최근 출간한 단행본에도 실려 있는 작품인데, 대체로 무책임한 전위주의자들과 달리 이 작가는 서사의 ‘얼개’를 분명히 가진 채로 소설을 써나가서 미더운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2인용 독백>에 실린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면 큰 성취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4. 허희정, Stained  ★★★

잘 어울리지 않는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

아마도 스테인드 글라스를 염두에 두고 ‘떨어지는 삼각형’이라는 설정을 한 게 아닌가 싶긴 한데, 그것이 빨간 공에 관한 ‘나’의 꿈과 유기견을 입양하는 ‘P’, 그리고 연극을 했던 경험 등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잘 짐작되지 않는다.

아무튼 허희정의 등단작 이후로의 행보를 고려하면 무기력의 정서가 여전히 짙다는 것 정도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5. 이정연, 앞자리에 앉은 사람  ★★☆

바로 지난 봄에 문예중앙으로 등단했기 때문에 아마도 휴간되기 전에 급하게 실었을 것 같다.

등단하자마자 지면이 사라져버리면 이 작가는 얼마나 허무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어쨌든 그와 별개로 이 작품은 소설적이어야 한다는, 뭔가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강박이, 등단작에서처럼 또 드러난다.

그저 인물을 어떤 결말로 몰고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이 소설의 이야기는 존재하는 것 같다.

우연적이고 작위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좀 필요해 보이고, 아마도 본인이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육아’에 대한 디테일도 좀 더 세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 Response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