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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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가 빨리 나오는 잡지가 아닌데, 9월이 되기 전에 나오는 기염을 토했다.

게다가 “이론” 특집이어서 쉽지 않은 원고 수합이었을 텐데, 아무튼 읽을 게 많다.

기획과 특집에 집중해서인지, 시와 소설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좀 아쉬웠다.

시는 웬일인지, 뒤로 갈수록, 그러니까 젊은 시인들의 작품이 별로였다.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친한파인 듯한 스페인 작가의 단편도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소설은 소위 ‘문지’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들이었는데, 역시 대체로 아쉬운 편이었다.

 

1. 오한기, 바게트 소년병  ★★★☆

‘무질서의 무질서’를 구현해 보려는 시도라고 해야 할까.

개연성이나 인과 관계를 아예 거부하고 그것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댈 뿐, 굳이 최대한 설명하려 하지 않는.

이미 그렇게 일어나버린 일인데, 그 의외성에 대해 ‘필연’을 부과하지 않으려는.

그렇게 읽다보면 어느새 바게트 소년병을 마주한 수진과 나의 심정처럼, 그냥 이야기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의도’가 오상순, 수진, 미아, 지안 등 인물의 성별까지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는 방식으로 이어지면 어떤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하고 독자는 빠르게 눈치를 채버린다.

어쩌면 오한기는 기묘한 리얼리스트가 아닐까.

이 작업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궁금하기는 하다.

 

2. 김환, 기계  ★★☆

이야기는 너무도 단순하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어떤 기계를 마주하고, 그 기계를 피해, 아니 정확히는 기계음을 피해 뛰쳐 나갔다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음을 느끼고 스스로 기계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 단순한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변모하려면 사유와 묘사가 독보적이어야 할 텐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멋’도 아니고 ‘힘’만 잔뜩 들어간 문장들이 대체로 평범한 사유를 늘어놓고 있을 뿐이며, 정작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외면해버린다.

어쩌면 이 소설에 쓰인 모든 문장이 불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심드렁하게 읽혔다.

거기에 결국 광장으로 나온 그가 이 세계가 기계로 둘어싸여 있음을 자각하는 마지막 장면은 시효가 한참 지난 깨달음일 뿐이다.

 

3. 윤해서, 맹목(盲目)  ★★★

최근 윤해서의 작품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데, 의외로 기복이 심한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소설의 분위기, 특히 외로움과 그리움이 혼재된 정서를 형성하는 데는 탁월해 보이는데, 그것이 이 작가가 지향하는 형식들과 잘못 만나면 빛을 잃어버리는 듯하다.

‘의지’에 관한 소설의 서두, 친구 시훈(시자시자)과의 술자리, 현수의 실종 등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매끄럽지 못하다.

‘의지’를 비롯한 몇몇 키워드들로 서사를 묶어가며 끌고 가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아 보인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세계가 ‘의지’와 무관하게 완전히 무너져내리고 있는 마지막 장면은 나쁘지 않았지만 끝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답답하다.

역시나 굳이 인물의 성별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묘사도 이야기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지만, 굳이 감출 이유도 없는데 왜 모호하게 남겨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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