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7년 가을호

92가을호_계간지_입체

 

문동 가을호를 읽었다.

늘 풍성한 편이지만 이번 호는 특히 읽을거리가 많았다.

김영하와 김애란에 대한 ‘초점’란은 대담이 재미있게 읽혔고, 강화길 작가에 대한 ‘조명’도 시의적절한 것 같다.

박상륭 작가에 대한 추모의 글은 문사 쪽에 실린 글들과 함께 읽으니 꽤 다채롭다.

이 기회에 <죽음의 한 연구>를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텐데, 또 실패할 것 같아서.

‘비평’이나 ‘시’ 지면 등도 좋은 글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소설’은 지금까지 읽은 다른 주요 계간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훌륭했다.

 

1 . 강화길, 다락  ★★★☆

‘나의 이력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예전의 ‘자전 소설’ 형식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강화길이라는 작가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바, 어떤 문학적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소설이기는 하다.

여성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그것이 일종의 ‘소문’과 ‘추문’으로 매개되는 과정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진 채로 스릴러의 형태로 구현된다.

‘명아’가 사실상 ‘나’와 다르지 않다는 점으로 추측건대 결국 모든 ‘여자’들의 서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 같다.

남성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어렵게나마 이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공간들이 ‘여성’만이 상상하는 공포와 불안에 가까운 것일까, 하고 느꼈다.

그러니까 남성이 시커먼 호수 앞에 설 때, 깜깜한 다락을 바라보며 상상하게 되는 ‘서사’와 여성의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호수’라든가 이 소설에서의 ‘다락’과 같은 컴컴하고 축축해 보이는 공간은 여성에게 있어 스스로의 ‘피해’를 상상하게 하는 게 아닐까.

특히 물에 빠져 죽은 여자에 관한 강화길의 끊임없는 시선은 마치 한 번 다락으로 가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처럼, 폭력의 최종 심급 같은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소설이고, 인상적으로 읽긴 했으나 최근에 발표된 문장 웹진의 <손>이 나로서는 훨씬 섬뜩했다.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140534

 

2. 김연수,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  ★★★★

백기행이라는 본명을 가진 시인 백석에 관한 이야기.

얼마나 실제 백석의 행적과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의 강압적 체제 속에서 글쓰기를 고민해야 했던 1958년의 북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분량으로는 짧은 편인데 꽤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은 김연수 특유의 서사적 깊이가 아닌가 싶고.

결국은 ‘바다’에 관한 언급으로 이어지는 걸로 봐서는 세월호 이후의 ‘언어’와 ‘글쓰기’에 관해 그 고민을 북한 체제의 백석에게까지 확장시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병도’라는 소설가 인물이 던져주는 질문이 꽤 무겁게 느껴졌고, 이 인물의 고민도 심상하지 않았다.

작금의 블랙리스트 문제와도 무관해 보이지는 않아서 시의성도 있고, 결국 마지막 삼지연 행 기차에 오르지 않는 백석의 모습도 수긍하면서 읽었다.

그러나 <21세기문학>에 발표한 소설도 한 번 검토를 해보아야겠고, 지난 봄 <문학3>에 실렸던 작품 등과 비교하면서 읽어보면 그 성취가 아주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3. 김성중, 상속  ★★★☆

문학 창작 교실의 만남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나 스스로의 고민이 꽤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기주’와 ‘진영’으로 교차 서술되면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왜 쓰지 못하는가 혹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적 고민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요절한 ‘선생님’의 서재를 ‘상속’받는 기주와 진영의 모습 뒤로 불행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이를 극복해내면서 ‘소설’에 이르는 길이 소설의 전개라고 범박하게 요약할 수 있을 텐데.

문학에 대한 일종의 숭고함이나 신성성에 너무 기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로 인해 인물들이 조금 소모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밑줄이나 인용의 ‘상속’, 그리고 어쨌든 여성 연대기라는 것은 장점으로 읽혔다.

 

4. 박민정, 세실, 주희 ★★★☆

이제 이런 소설은 박민정의 것이라고 주장해도 될 만큼 이 작가 특유의 문제의식이 들어 있는 작품.

어떻게 우리가 지금도 민족이나 국가, 역사나 언어의 문제로 이어져 있는지를 새삼 고민하게 한다.

<행복의 과학>류의 소설이라고 보면 될 텐데, 이 작가에게 있어 지금-여기에서 일견 개별적으로 발생하는 듯한 모든 문제는 사실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도드라진다.

또 100%의 피해자나 가해자도 없다는 생각도 엿보이는 듯하다.

물론 그것이 가해에 대한 옹호나 피해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하지만 이런 지점들은 그대로 다시 단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겠다.

너무 많은 연결은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인물이나 사건이 작위적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민정의 계속되는 작업은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5.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그냥 만점을 주고 싶은 소설.

아주 오랜만에 말 그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어설픈 유머와 자극적인 에피소드, 멋을 부린 묘사와 문장, 쿨한 냉소적 태도 사이에서 마음껏 즐겨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재미를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서사의 리듬이 너무 좋고, 유머 감각도 탁월하고, 각각의 인물이나 사건들도 적절하고 흥미롭다.

계속해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소설이지만 좋은 소설이 늘 그렇듯 인물은 실패해도 이야기는 실패하지 않았다.

무조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이고, 소설가로서의 재능과 개인으로서의 진정성이 만나면 이렇게 폭발력 있는 이야기가 된다.

퀴어 영화를 만드는 게이 감독이라는 인물은 이제 어쩌면 일군의 작가들에게 페르소나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지난 계절의 김봉곤 <여름, 스피드>와 더불어 퀴어 서사의 투 탑(이 표현은 좀 난감하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성애자로서 늘 고민스럽고 불편했던 지점까지 속시원하게 돌파해주는 이번 계절의 베스트 중 하나.

 

6. 고진권, 희만  ★★★☆

신인상 수상작이다.

창비도 그렇고, 문동에서도 의외로 좀 익숙한 ‘정통파’가 선택된 느낌이다.

소설가의 목소리가 크다기보다는 ‘많은’ 이 소설을 온전히 지지하기는 아직 어려울 것 같다.

2015년에는 김남숙이었고, 2016년에는 박상영이었는데, 2017년의 고진권이 과연 어느 정도 기대를 충족시킬지 궁금하다.

소위 한량 캐릭터인 ‘희만’과 그걸 받아주다 끝내 이혼한 ‘정애’, 그리고 아들 ‘요한’.

이 관계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결국 느슨하게 다시 엮이는데, 이런 이야기 그동안 얼마나 많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선택된 데는 나름대로 신선한 어떤 ‘리얼함’이 있었던 것 같고, 두 편이 투고되었으니 나머지 한 편에서 또 나름의 매력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밖에.

 

 

 

1 Response

  1. 노바라

    박상영을 읽고는 정말 오랜만에 한국의 소설이 너무 좋아서 이것 저것 검색을 하다가 들어오게 됐습니다.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대사가 정말 신선하고 훌륭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밑줄까지 그어 가며 읽은. 두 문장 정도를 제외하고는 완벽한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과 비슷한 내용의 감상문을 찾게 되니, 답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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