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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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학>을 읽었다.

소위 메이저 출판사의 문예지를 제외하면 가장 풍성한 듯하다.

구성도 꼭 필요한 것들로 다양하고, 필진이나 작품의 수준도 늘 좋은 편이다.

다만 확실히 편집이나 교정에 있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

오타는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교열조차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열악한 제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판하여 판매하는 문예지가 이토록 허술한 건 좀 문제다.

 

‘페미니즘 시대의 풍경’들로 꾸려지고 있는 논의들은 이제 조금 정체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페미니즘이 기존의 어떤 정치사회적 이념이나 문화예술적 사조보다도 세계 인식의 근본적인 변혁을 가져다 주리라는 감각은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았는데, 아직도 그것을 하나의 ‘조류’ 정도로 이해하려는 시각이 있어 보인다.

시대와 세대를 가르고 그를 통해 ‘단절’을 선언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같은데, 사실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보다 미묘한 차이에 관해 깊이 접근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시 지면에서 백상웅의 작품 두 편이 매우 좋았다.

소설은 기대에 비해 별로였다.

 

1. 구효서, 은결-길편지  ★★★★

이 작가가 시도하는 독특한 서술의 시점이 또 부각되는 소설.

무생물의 화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소리나 냄새에 이어 이번에는 어떤 ‘빛’이 그 목소리를 낸다.

쇠락한 포구에서 민박집을 중심으로 몇몇 인물들이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건져 올려 보려는 이 이야기는 얼핏 일본 영화 같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구효서의 이 감각은 어떨 때 너무 의식적인 포장 같아서 거부감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소설은 생생한 인물들이 그걸 메꿔주었다.

키미노인이 그랬고, 미가나 요 같은 인물도 결국 설득해내는 힘이 있다.

파도에 반짝이는 은색 물결이 아니라 그때 누군가가 보게 되는, 삶을 변하게 하는 어떤 빛이 화자라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작위적인 느낌이 있긴 한데, 결말로 갈수록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기대보다 좋았다.

 

2. 김세희,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  ★★★☆

이 작가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게 된 소설.

등단작이나 지난 봄의 <드림팀> 같은 작품에서 보이듯 어떤 균열과 어긋남의 순간을 충실한 디테일을 동반해 잘 포착해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그것이 인물이나 사건의 전형성을 조금 무마하면서 결국 독자를 마지막까지 끌고 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한 편의 완결된 소설로서의 구성이나 배치의 문제를 조금 더 고려했으면 좋겠다.

시작에서부터 결말이 예측되고, 그 결말이 별로 특별하지 않을 때, 결국 이 소설은 몇몇 장면들로만 기억하게 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그것을 위해 어떤 설계가 필요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선배의 초대와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어색하고도 난감한 공기는 인상적이었다.

 

3. 김연수, 바다는 토끼산의 신들처럼  ★★★

누가 읽어도 아, 김연수구나, 할 정도의 작품.

그런데 이 소설에 동원되는 사연과 소재가 너무 많다.

제주로 간 렌터카 업체 가이드, 그리고 그곳을 찾은 망명하다시피 했던 소설가.

제주라는 공간과 토끼산의 설화, 사당과 제의, 4.3사건, 짧았던 만남과 헤어짐, 등려군 등등.

돌이켜보면 예전에 김연수는 그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조합해서 어떻게 이 모든 걸 연결할 수가 있을까 감탄하게 했었는데, 이 소설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실패하더라도 김연수라면, 끝내 어떤 부분에서는 설득되지 않을 수 없어야 할 텐데 그렇지도 못했다.

소설의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 등려군의 ‘독상서루’까지 틀어 놓고 읽었으나 실망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작가가 고집하는 소설가 인물도 이번에는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이 이야기의 차원에서는 그저 ‘우연’으로만 획득되고 있다.

얼핏 내 기억에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제주로 돌아온 여배우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소설 속에 소설로 등장하는 <토끼산의 신들>의 문장이 좋았다.

 

4. 손보미, 도베르만  ★★★☆

손보미다운, 묘한 소설.

윤이라는 인물을 둘러싸고, 그와 그녀가 형성하는 관계가 꽤 흥미롭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들은 무슨 관계였는지 윤이 사라져버린 지금도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각자 조금씩 서로를 사랑했다는 것이고, 또 그만큼 증오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복잡한 마음이 이 소설을 결국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데, 동일본 지진의 경험, 그리고 도베르만이 돌아다니던 이제는 사라져버린 공간의 골목 등, 그와 그녀의 내면 풍경을 암시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소재나 곁이야기들이 좀 붕뜬 느낌이 든다.

‘인생의 시험’을 언급하는 결말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조금 급하게 쓴 게 아닐까, 짐작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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