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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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겨울호를 읽었다.

여러 글들을 두루 읽었지만 무엇보다도 강화길의 근작에 대한 심진경 평론가의 글에 관심이 갔다.

아주 거칠게 읽어서 페미니즘의 서사가 그저 당장의 폭로나 고발의 성격에만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되기 위해 숙고해야 한다는 말 같은데, 나로서는 이 소설이 바로 그 숙고의 과정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볼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시에서 내가 애정해 마지 않던 이민하 시인의 작품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김명기의 <청량리>, <몸살 앓는 밤>이 무척 좋았다.

소설을 읽자.

 

1. 김봉곤, 라스트 러스 송  ★★★★★

만점이다.

이토록 절절한 소설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그간 무수히 접했던 이야기들 속에서 이 정도로 사랑과 연애와 죽음과 그리움에 대해 깊이 써낸 작품이 있었던가 새삼 되돌아봤다.

아기자기한 100%의 순정소설이고 로맨스이면서 죽음과 이별에 관한 비극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만이 몸에서 뽑아낼 수 있는 문장들과 디테일이 너무 놀랍다.

‘형’과의 기억을 더듬으며 시작하는 도입부, 기억의 시간들을 넘나들며 장례식장으로 독자를 데리고 가는 솜씨,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결말 등 형식적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마치 프루스트의 기억에 관한 서술 기법의 오마주로 느껴질 정도로 자유로우면서도 유려한 서술의 리듬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게이 서사가 확보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 또 게이여서 훨씬 더 감당해야 하는 몫이 큰 관계의 지속과 그에 따른 상실의 깊이 등은 이 소설이 완전히 새롭다고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도 ‘형’이 아닌 다른 것들의 세목만 떠오르는 장면들, 그리고 끝내 ‘형’의 어머니가 오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성조의 사랑을 말하며 ‘형’을 그리워하는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170쪽부터 171쪽까지 이 소설의 문장들은 분명히 울면서 썼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쓸 수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을 끝으로 소설집을 펴내지 않을까 싶은데, 김봉곤이 만들어 낼 첫 책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2. 김세희, 가만한 나날  ★★☆

이 작가의 최근작들, <드림팀>,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 거야> 등을 읽어보면 ‘회사’나 ‘직장’, ‘일’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에 나름의 깊이가 있고, 디테일도 꽤 확보되어 있으며, 인물들 간의 감정이나 관계도 잘 그려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근본적으로 세태에 대한 인식이 좀 단순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소설에서 허위, 사칭 블로그를 통해 업체의 홍보를 대행해주는 회사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얼마나 복합적인 문제인지 작가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서술하는 부분도 단순히 그 사태를 요약 정리하는 것 같아 영 마뜩잖다.

그런 요소들이 ‘네이스’나 ‘뽀송이’ 같은 어색한 명칭을 달고 사회 초년생의 ‘사회생활’ 적응과 맞물려 돌아갈 때, 또 ‘채털리 부인의 연인’ 같은 인문학적 감성과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으로서의 업무 능력이 대비될 때, 단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장의 ‘재화 언니’, 3장의 ‘사촌언니’는 잠깐 동원되었다가 사라질 뿐이고 예린씨와 마주친 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고 마무리되는 결말은 너무 간편한 방식이다.

‘가만한 나날’이라는 제목도 최근 자주 사용되는 표현을 그냥 받아 쓴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럽다.

급하게 썼거나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작품.

 

3. 손원평, 4월의 눈  ★★★

장편으로 먼저 주목받은 손원평 작가의 (아마도) 단편 첫 작품.

이 작가의 영화 관련 이력이나 장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좀 편견으로 작동했을까.

극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섞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부부가 지금의 갈등을 겪게 된 사연(아이의 사산), 이들이 만나게 된 과정, 핀란드의 ‘마리’가 이들의 집을 방문하게 된 일, 그리고 ‘마리’의 서술되지 않은 사연 등 어떤 것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이 긴밀하게 조응하지 않고 각자 따로 노는 데다가 갈등을 겪는 부부의 집에 우연히 찾아온 손님이 일종의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너무 뻔한 것 아닐까.

제목으로 짐작건대 일년 내내 눈이 쌓여 있는 핀란드의 산타 마을과 4월에도 눈이 가끔 내리기도 하는 서울을 대비시키면서 ‘눈’을 일종의 고통의 비유로 상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게 보면 ‘마리’는 가까스로 그것을 벗어났고, 이들 부부는 그 끄트머리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좀 아쉬운 소설이고, 혹 서두에서 부부의 갈등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불안과 균열의 뉘앙스만을 주면서 아내가 마트에 가거나 거리를 나서는 장면이 남편인 ‘나’에게 왜 위험을 느끼게 하는지 짐작케 했다면 조금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담담하게 눈이 내린 4월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리’와 나의 마지막 모습도 그리 와 닿지 않았다.

 

4. 편혜영, 후견  ★★★★

편혜영의 단편이니까 안정적이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읽힌다.

작은 읍의 교장선생님이었던 아버지 정호인의 ‘후견’ 아래 특혜와 보호 속에 자라난 딸 정소명은 고교 시절 제대로 기억하는 친구도 하나 없는 인물인데, 그 정소명이 입양 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자신이 친모로 기록된 아이가 엄마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소명은 그런 일이 없으므로 누군가의 음해라고 생각되었던 그 일은 결국 아버지 정호인이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정소명의 상장을 교내에 버젓이 걸어 놓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처럼 마무리된다.

워낙 탄탄한 문장들로 씌어졌기 때문에 소설의 세계는 그 자체로 자족적인 느낌이고, 아버지 정호인의 클럽 같은 폐쇄적인 집단, 정소명이 만나는 고교 동창 한진희, 그리고 정소명이 겪었던 고교 시절 전학생과의 ‘대걸레’ 사건 등은 굳이 따져 물을 것 없이 견고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 소설은 곱씹을수록 좀 이상하다.

‘후견’의 방식으로밖에 관계맺음을 할 수 없는 정소명이라는 무척 기묘한 인물을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굳이 성까지 붙여 이름을 계속 호명하면서 전개되는 이 서술 방식은 일견 객관적이고 확실한 진술들로 생각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점점 고개를 든다.

정소명은 아버지 정호인이 ‘범인’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금 정소명의 깨달음과 마찬가지고 이미 정호인은 이 일이 그런 식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딸의 안위와는 관계 없이 그 일을 어떻게 지역의 호재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욕적으로 고민하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 사실은 정소명이 그 미혼모가 아닐까.

전학생에게 대걸레로 얼굴을 맞아 ‘걸레’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 말을 사실일까.

그리고 정말 그것 때문에 정소명이 전학을 가게 된 것일까.

혹시 우리는 핵심을 감춘 채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또 한 발짝 나아가 사실 ‘후견’이라는 제목은 ‘사라’라는 자신의 핏줄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이 소설은 좀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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