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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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 겨울호를 읽었다.

개편 후 1년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하이픈’ 체제의 투트랙 방식이 이제 좀 자리를 잡은 느낌이다.

전통적인 문예지 방식의 본책과 조금은 과감하고 새로운 기획을 보일 수 있는 하이픈이 안정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다.

하이픈에서는 지금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 아니 ‘저자’들의 인터뷰가 쭉 실려 있는데 재미 있게 읽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각각의 목소리가 모두 달랐고, 읽는 내내 이 작가들이 얼마나 고투를 벌이는지 알 수 있었다.

몇몇 작가들에게는 지금 잘하고 계시다고,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었다.

의외로 ‘평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다들 호의적이었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다.

본책 리뷰 지면의 경우 흥미로운 글들이 많았지만, 기획 의도라고 할 수 있을 흑/백의 입장 차이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 것 같다.

정소연 작가의 글만이 비판의 지점이 선명했는데, 나로서는 좀 의아하다.

김중혁의 철 지난 소설을 소환하여 SF의 탈을 어설프게 쓰고, 여성 인물을 도구적으로 사용한 전형적인 문단-남성 문학이라고 규정하면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식의 “복고풍” 서사는 그만 보고 싶다는데, 뭐 그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어떤 소설이 있을 때 그 소설을 용인하는 시스템으로 ‘문단’이라는 체제를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김중혁의 이 소설이 문학상을 받길 했나, 평단의 지지를 받길 했나.

민음사가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이 책을 출간한 것이 ‘문단이 늙었다’는 증거가 되나.

이 작품에 호의를 가졌던 나로서는 오히려 문단의 무관심이 더 의외였는데, 이를 두고 “누가 이 서사를 좋아하는가? 누가 만족하는가?”라고 물으면서 “이런 조로(早老)를 쉽게 허락하는 문단” 운운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

차라리 이 논리에 따르면 김중혁의 <나는 농담이다>는 문단으로부터 허락되지 않은 작품에 가깝다.

‘김중혁이라서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정도면 끝날 글을 왜 이런 식으로 부풀리는지 잘 모르겠다가도 장르문학과 문단문학의 관계를 생각하고, 정소연 작가의 포지션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핀트가 안 맞다.

내가 되도 않은 SF작품을 접한 뒤 ‘이런 저열함과 천박함을 용인하는 한국 SF계’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작품이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정도 받았을 때라야 가능한 게 아닐까.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여러 이견이 들지만, 그건 개별적인 영역이니까.

 

아무튼 소설을 읽자.

은희경 작가의 연재가 다음 호 정도에 마무리 될 것 같고, 이장욱 작가가 새 연재를 시작했다.

따라 읽지는 못하지만 책이 나오면 기대하고 읽을 수밖에.

시 지면도 그랬고, 소설도 전체적으로 작품들이 아쉬웠다.

 

 

1. 최수철, 우리들 중 누가 인간이고 누가 거짓말쟁이고 누가 악마일까  ★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나는 소설.

한국문학을 한남문학으로 치부하고 저열한 비난을 쏟아 붓는 일군의 트위터리안들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다.

2017년 겨울에, 문학과사회라는 지면에 이런 소설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가의 관념소설이나 최근의 포로수용소 이야기 등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는데, 꼭 이렇게 한국의 중견 남성 작가들은 끝내 ‘남성-작가 판타지’를 놓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남성 인물의 눈에 비친 여성은 정말 단 한 순간의 예외도 없이 성적 대상일 따름이다.

혹시나 다른 방식일지, 혹은 어떤 전략이 있을지 눈을 부릅 떴으나 그냥 이 중견 작가는 ‘눈 가리고 귀 막고 사는구나’라고밖에 생각이 안된다.

친구의 누나를 보는 순간 가슴 타령,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마주한 딸을 보는 순간 성숙한 여인의 체취, 잘 발육된 튼실한 가슴과 엉덩이 운운하고 심지어 친구의 아내를 보고선 불감증에 걸린 여자 같다는 인상이라 갈음하는데, 작정하고 썼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친구로부터 일방적인 폭행을 당한 ‘나’가 그 친구의 딸을 유혹하여 범하겠다고 복수를 다짐하는 서사가 도대체 무슨 설득력이 있나.

‘인간’, ‘거짓말쟁이’, ‘악마’, 이런 말들은 허울 뿐이고 소설이라는 메타적 형식은 그저 동원되었을 뿐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약간 기대했던 스스로를 철저하게 반성하게 만드는 처참한 작품.

 

2. 한강, 작별  ★★★☆

<흰>의 발간과 맨부커상 수상이 거의 겹쳤기 때문에, 사실상 수상 이후의 첫 작품이다.

이 신작의 발표는 언론에 보도까지 됐는데, 문예지에 단편을 발표하는 일이 기삿거리가 된 경우는 재작년인가 황석영 작가의 단편이 발표되었을 때 정도였던 거 같다.

물론 그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주목의 정도는 훨씬 크다.

뉴욕타임즈에 보낸 한국의 정세에 관한 에세이도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어서, <문학동네>에 한국어 전문을, <창비>에 그에 관한 산문을 또 실었다.

이래저래 많이 시달리고 피곤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상당히 힘을 빼고 쓴 것 같다.

눈사람이 된 그녀가 자신의 생을 반추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라 요약할 수 있겠는데, 제목에서 보이듯 이 과정은 “작별”이다.

이별이 아니고 작별인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지 않나 싶은데, 마치 안락사를 택하는 사람처럼(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문학동네, 2017년 겨울호)) 죽음을 서서히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이 비극적으로만은 읽히지 않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묻는 한강 특유의 차분한 응시가 여전히 돋보이지만, 이야기 자체의 매력은 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눈사람이 되어버린 사람과 녹아서 죽음에 이르는 상황이 가능한 서사인지를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지금 그녀가 맺고 있는 관계, 처한 현실, 과거의 기억들 등 너무 많은 것들이 소설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또 한 사람의 전체를 돌아보려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눈사람’이라는 소재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체와 대비되면서 부서지거나 피가 나지 않는 독특한 ‘몸’의 형상화로 꽤 적절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끝내 이 소설에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뜨겁고 차가운 입술이 만나 녹아내리는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 아름답다거나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강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깊이’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느낌은 아예 처음인 것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연인인 ‘현수 씨’보다 아이인 ‘윤’이 부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3. 김미월, 연말 특집  ★★★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영미’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구조적으로 좀 허술해서 그냥 인물이 소비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선’의 ‘늙음’을 왜 이렇게 지속적으로 언급하는지 모르겠고, 그게 ‘선’의 태도 변화와 관련된다면 너무 단순한 방식인 것 같다.

지금 ‘선’은 뭘 하는 사람인지 잘 알 수가 없고, 특히 ‘윌리엄’에 대한 정보가 좀 부족하다.

윌리엄은 영미를 철저하게 이용해 몰카를 촬영하는 범죄자로 보이는데, 모호하게 서술되어 확신이 어렵다.

스무살 언저리에 대학에 입학하여 이런 식의 인물을 만나 어떤 사건을 겪고, 그 기억을 안고 시간이 흐른 뒤의 ‘나’의 이야기는 사실 얼마나 흔한가.

특히 ‘선’이 ‘김영미’를 만나기로 결심한 단계, 즉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4. 김이설, 축문(祝文)  ★★★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엄마의 1주기에 나름의 ‘의식’을 준비하는 두 딸과 아버지의 모습.

이 가족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굳이 ‘제사’라는 관습을 대비시켜가며 묘사해야 했을까, 그것도 끝내 그 이유로 이혼하게 된 ‘나’의 입으로.

소설의 목표가 분명해지면 그 목표가 겨낭하는 바, 즉 이 소설에서는 ‘집안’, ‘제사’ 등의 인습이 얼마나 비애도적인지,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 얼마나 차별적인지에 관한 것으로 소설의 모든 것이 수렴되어 버린다.

그러니 실제 이 가족 구성원들의 내밀한 이야기, 미묘한 갈등 같은 것들은 사라지고 서로 절대 “부담”을 갖지 않는 형식만 남는다.

그래서 소설은 좀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이 가족이 갖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며느라기> 같은 웹툰을 참고하자면, 한국 특유의 ‘제사’ 풍습을 파고들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훨씬 날카롭게 접근해야 할 것 같고, 더 매력적으로 써야 할 것 같다. 어려운 문제다.

 

5. 김효나, 젖은 필름  ★★★☆

읽어가면서 도대체 어떻게 쓸지 예측할 수 없는 작가 중 한 명.

서사를 구축하는 핵심이 이미지라는 감각은 여전한 것 같고, 나아가 ‘필름’이라는 물성도 이 작가가 생각하는 ‘순간’이나 ‘찰나’의 문제와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자유롭게 초점을 옮기는 이야기의 진행은 독보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2인용 독백>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에는 못 미치는 느낌이기도 하다.

아주 소박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지난 날 함께였고, 지금은 아니다’ 정도의 이야기가 무수한 이야기소(素) 속에 어지럽게 깔려 있는 듯한데, 그 속을 헤매는 기분이 불편하지 않다.

소설의 도입부가 아주 좋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밀도가 좀 떨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떨지 기대되는 작가.

 

6. 이유,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모자  ★★☆

사실 이 소설이야말로 굳이 ‘흠 잡을 데 없어’ 보인다.

두 명의 ‘대리’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를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무척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늘 이유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불만인데,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현실의 문제를 좀 더 파고들거나 환상성을 확장하여 밀고나가는 게 어떨까.

모자를 둘러싼, 그리고 모자가 떠오르는 상상력이 이 두 인물의 상황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는지 의문이다.

또 왜 굳이 모자인가에 대해서도 답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

‘모자’가 얼마나 많은 문학적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만으로도 상당한데, 이 소설이 그 끝자락에 놓일 수 있을까.

‘모자’라는 사물이 어떨 때는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또 어떨 때는 스스로를 더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는 양가적 속성의 사물임을 더 강조했다면 서 대리의 사연과 좀 더 밀착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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