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2018년 1월호

K272532781_f

 

월간 <현대문학> 1월호를 읽었다.

<현대문학>은 매년 1월호에 다수의 작품을 실어 상당한 볼륨으로 책을 내는데 지금은 중편 프로젝트인 ‘핀’ 시리즈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소설의 경우 예년보단 작품이 적었다.

그래도 중편 포함하여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 강화길, 서우  ★★★★

강화길이 “실종된 여자들은 모두 마지막에 택시를 탔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또 ‘여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성의 삶 자체가 스릴러라고 여기고 있을 이 작가는 실종이나 폭력, 살인 등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나’는 엄청난 불안 속에, 그리고 그 사건들은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상상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지금 타고 있는 택시의 기사가 여성이라는 점이 이 상황의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데, ‘여성=안전’이라는 그나마의 안심조차 가질 수 없을 때, 그러니까 ‘서우’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자신이 가진 불안의 근원을 추적하기 시작할 때 ‘나’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마저 위태로워진다.

이것은 최근 강화길 소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한데 이번 작품에서는 택시를 탄 여자들의 실종과 재개발 지역 동네, ‘나’의 이야기 등 여러 서사가 연결되어 있어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약간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적으로 밀고나가는 힘은 폭발적이고,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결말 등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2. 김연수, 그 밤과 마음  ★★★☆

작년에 발표했던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의 후속작이다.

아마도 연작으로 백석 시인의 북한 체제에서의 행적을 꽤 따라갈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려는 이야기에 비해 분량이 너무 짧아서 좀 아쉽다.

‘세계(현실)/작가/작품’ 이 관계를 어떻게 ‘분리’하고 ‘결합’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비단 백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정치적 올바름이나 작품의 윤리성에 관해 다시 고민하기 시작한 지금,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은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백석이 자신의 시를 갑자기 듣게 되는 순간의 묘사나 밤새 쓴 노트를 태워서 재로 만드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결국은 이런 작업이 백석에 관한 평전이나 일대기를 넘어서서 그의 내면을 훨씬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이후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3. 김채원, 흐름 속으로(2)-광야  ★★★

왜 2편인가 싶고 어디서 이걸 읽었더라 곰곰이 떠올려보니 아마도 2017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집이었나 보다.

2016년에 김채원은 <베를린 필>로 현대문학상을 받았고, 그래서 2017년에 기수상작가 자선작을 실었는데 그게 <흐름 속으로>였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김연수의 작품처럼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중후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 시절의 ‘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이 ‘그 밤과 마음’이었어도 무방할 정도인데, 단순히 유년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언니의 죽음을 계기로 그 시절의 기억을 아주 깊고 세심하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파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정’과 ‘연’의 관계는 아무래도 김채원과 故김지원 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고 여러모로 자전적인 소설인 듯하다.

말년의 서사란 결국 이런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흐름 속으로’라는 제목을 상기하면 이 소설이 말 그대로 기억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도 역시 연작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4. 백가흠, 그 길-1983  ★★★★

처음에 읽고나서는 좀 심드렁한 로드무비 같은 느낌이었고, ‘일구’라는 캐릭터가 조금 더 생생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좋은 소설 같다.

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데, 1983년에 태어난 ‘일구’와 ‘팔삼’의 각자의 ‘길’에 관한 이야기이자 지금 강원도로 ‘팔삼’의 친부모를 찾으러 떠난 ‘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팔삼’, 그러니까 입양아인 프랜시스 스펜서가 ‘고국’으로 돌아와 친부모를 찾는데, 이토록 건조한 톤은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이면서 ‘근원’, ‘고향’, ‘정체성’과 같은 문제가 마구 뒤섞이는 소설이다.

결국 모두에게 ‘근원’이란 각자 다 다른 것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든다.

둘 사이에 영어와 한국어가 섞이면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추측하는 재미가 있고, 일구의 버려짐(아마도 햄버거와 관련이 있을), 이혼 등이 여운을 길게 남긴다.

 

5. 최정화, 5년 전 이 거리에서  ★★★

최정화스러운 소설이기는 하다.

부조리극 같기도 하고, 카프카적이기도 한 기법이 여전한데 그간 느껴지던 긴장감이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가게로부터 쫓겨나고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서버린 5년의 시간을 ‘환상적’으로 처리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했는데 ‘나’를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병상의 장면으로 결말을 맺는 순간 이야기의 모호함이라는 매력이 투명하게 상쇄되어 버린다.

서촌 궁중족발을 암시하기도 하는 이 소설은 그래서 너무 직접적인 재현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은 여기에서 여러 번 비틀어져야 하는 게 아닐까.

 

6. 황현진, 오사삼 이후부터  ★★★★☆

작년에 장편 <두 번 사는 사람들>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한 신뢰를 회복했는데, 이런 방식의 소설이야말로 황현진에게 잘 맞는 옷인 것 같다.

“식구 수가 줄어드는 것, 어린 구태식은 가난을 그렇게 이해했다”는 문장이 소설을 지배한다.

이 모든 건 결국 돈 때문이고, 그래서 가족 공동체는 그렇게 변해간다.

키우던 개까지를 포함해 5였던 가족은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개를 버려 4가 되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지금 3이 되었다.

‘오사삼 이후부터’ 그들은 어떻게 될까.

소설의 디테일이 생생하고 살아 있고, 서사의 배치, 리듬, 적절한 서술자의 목소리 등 흡잡을 데가 별로 없었다.

조카가 ‘토마스’를 사달라고 전화하는 마지막 장면도 무척 좋았다.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서는 단연 베스트.

 

7. 정용준, 사수의 별  ★★★☆

아무래도 단편을 개작한 것이다 보니 이야기의 신선함이 좀 떨어진 면이 있었다.

인간의 육체와 질병, 장애, 폭력 등의 문제를 두루 탐구하는 집요한 시선과 거기에 혈연이라는 문제, 또 죄와 벌이라는 주제 의식 등 정용준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인데, 결국 단편에서처럼 교도관 ‘윤’이 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버지에 의한 강간으로) 동생이자 아들인 해준을 얻는 신해경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무통각증을 앓으면서 해준을 버리게 되는, 그리고 끝내 그들이 다시 재회하는 서사는 무척 고통스럽고 강렬하지만 정말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데, 왜일까.

여러모로 정용준은 작가 이청준의 후예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보면 정용준이 조금 더 힘을 실어야 할 부분이 어딘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