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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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봄호를 읽었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터져 나오는 시기에 이에 관해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것은 ‘창비’라는 문예지가 좀 무감각한 게 아닐까.

정치사회적 이슈에 중점을 둔 문예지라고 해도, 또 분단체제나 개헌 문제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는 해도, ‘고은’의 진영에서 이토록 방관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백낙청 명예편집인과 여섯 명의 편집고문, 또 한기욱 편집주간과 무려 20인의 편집위원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황정아 평론가가 책머리에 “세상의 기준은 이미 변했다”라고 쓸 때, 그래도 머리말은 ‘미투’에 관한 것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창비가 말하는 세상의 변화된 기준은 그저 ‘촛불’이다.

미투운동은 삼성 이재용 판결, 평창동계올림픽 등의 문제들과 동급으로 취급된다.

‘촛불혁명’만큼이나 여성주의적 일대 변혁이 세계를 완전히 뒤바꿀 것임을 왜 인식하지 못할까.

페미니즘에 관한 지식인들의 태도는 거칠게 말해서 세계 인식의 수준을 보여준다고밖에 할 수 없다.

어떤 세대이든 어떤 성별이든 어떤 직업이든 페미니즘이 가장 근본적이고도 위대한 혁명임을 인식하지 못할 때 ‘진보’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설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을 비롯하여 다섯 편이 실려 있다.

 

1 . 박민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

늘 그렇듯 박민규다운 서사이고, 매우 흥미롭게 읽기는 했다.

신이 아주 거대한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지구를 범하는 이야기.

트럼프와 미국을 동원해 우스꽝스럽게 세계를 비웃고, 신의 존재라는 것도 결국 인간따위일 수밖에 없다는 거침없는 이야기는 좋다.

또 그것이 마치 그리스 비극의 기계적 결말처럼,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왜 생식에만 골몰하는 동물로 남성인 신을 그려놓고 불필요하게 여성 신을 구색맞추듯이 등장시키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비록 성욕이 마치 인간이라는 종의 최종심급인 것마냥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박민규식 인류 탐구이니까 그렇게 서사를 만들어가는 게 매력이었는데, 조금 방어적인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박민규의 서사는 이제 총체적으로 또 근본적으로 어떻게 읽어내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여성 신의 등장 자체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읽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여전히 박민규는 ‘보라, 이 강간의 왕국에서 나는 그러지 않는다’ 정도의 윤리 감각을 가진 게 아닐까.

이제 강간이 문제라고, 지난 세기의 인간들은 모두 틀렸다고 이야기하기를 바란다.

 

2. 이주혜, 아무도 없는 집  ★★★★

‘녕’과 ‘규’가 ‘원’을 잃은 이야기.

두 인물이 교차 서술되면서 도식적으로 읽힐 염려가 있었는데 깊이가 있어 그렇지 않았다.

해부학이라는 디테일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두 인물이 아주 복합적으로 형상화되어서 읽어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녕’이 (아마도) 프로포폴 시술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도 흥미롭다.

‘규’가 ‘원’의 이름을 빌려 ‘네모’를 만나는 부분은 조금 작위적이고, 엄마-되기를 거부하는 ‘규’가 ‘원’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모습은 감상적이지만 현실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유치한 문장이나 설정이 꽤 있다는 점은 분명한 단점이다.

등단작에서는 이보다 조금 더 밝은 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당히 다른 분위기여서 조금 놀랐다.

이게 두 번째 작품인가 싶기도 한데, 일단은 좀 더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

 

3. 임재희, 로드  ★★☆

처음 읽는 작가인 것 같다.

미국에서 자란 진, 범, 명, 삼남매가 엄마가 가보라고 한 집을 찾아가는 일종의 로드 무비.

제목도 그렇지만 소설에서 엄마의 의도가 삼남매가 함께 ‘로드’를 따라 여행하는 것이 아닐까 직접 언급을 하고 있다.

가족의 와해, 엄마라는 존재, 엄마의 그리움, 유년의 추억 등을 말하기에 이런 방식은 워낙 익숙한 것이어서 ‘재미교포’라는 이들의 정체성이 색다른 지점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실패한 것 같다.

주로 ‘캐네디 암살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대화가 영 맛이 떨어진다.

빈둥지증후군에 관한 언급이 마지막에 그 ‘집’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방식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4. 조남주, 가출  ★★★☆

어느 날 아버지의 가출로 생겨난 집안의 변화를 그리는 소설.

재미있게 읽히고, 아버지가 없는 집의 분위기가 얼마나 자유롭고 편안한지 보여주는, 날카로운 지점도 있다.

꽤 설득력 있는 판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꼼꼼히 따져보면 상당히 비현실적인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는 가출하여서 딸의 신용카드를 간간이 사용하며 생존을 알려오고 나머지 가족들은 아버지 실종을 핑계로 매주 모여 진정한 가족의 유대감을 경험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가족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고민을 나누고, 같이 어머니의 음식을 먹는.

가부장제를 비판하기 위해 동원한 판타지가 역설적으로 가족이라는 구조의 판타지를 공고화하는 게 아닐까.

 

5. 박서영, 윈드밀  ★★★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이다.

심사평을 보니 소재보다는 인물의 태도가 더 신선하다면서 건강한 소설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비보잉 공연으로 불규칙한 수입을 가진 채, 아버지의 유산인 트럭을 몰며 컵밥을 파는 이 두 남녀 청년의 동행이 건강하다니.

더군다나 불가능한 미국행을 꿈꾸며 고속도로를 달리다 트럭이 뒤집히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말이다.

나는 이들의 일상과 서로 간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깊은 절망과 무기력을 느꼈는데 여기 어디에서 희망과 여유가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윈드밀에 관한 설명, 스무살 언저리의 대책없는 태도 같은 것들은 좋았는데, 소설이 소재적으로 흐른 면이 있다.

다음 작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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