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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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봄호를 읽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절반 정도는 기대하고 지지했던 리스트이고, 또 절반 정도는 약간 의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고 읽었던 작품들이 빠져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정된 작품들 모두 각각의 매력은 충분한 소설들이다.

김숨과 최은미는 작가론이 마련되어 있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데 정홍수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느껴지는 김숨의 저 고집스러운 면모는 어떨 때는 작품의 밀도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일종의 답답함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최은미의 첫 장편 <아홉번째 파도>는 나오자마자 읽었고, 당시 완벽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읽은 지 벌써 몇 달이 지나서 그런지, 찬찬히 작품론을 따라 읽다 보니 약간 유보적인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거의 동시에 출간된 윤고은의 <해적판을 타고>와 더불어 꽤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단이나 독자의 반응이 별로 없어서 조금 의외이기도 하다.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데, 그럴 여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1987>에 대해 대화를 나눈 지면도 마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1987>에 대해 무척 비판적인 입장이었는데, 대화를 따라가면서 여러 맥락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이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영하 작가의 희곡 <그물>이 실려 있는데 인간의 나약함과 불안이 추동하는 욕망이 흥미롭게 읽혔다. 무대에서는 어떻게 실연되었을지 궁금하다.

시 지면에서는 신예 주민현 시인의 시 두 편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형식, 혹은 텍스트의 무의식” 특집, <대화>의 리뷰,  <비평>에 실려 있는 글들에 대해서는 특히 할 말이 많고, 바뀐 체제의 계간평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야겠지만 이러다가는 잡지 리뷰가 될 것 같아서 빨리 소설을 읽어야겠다.

김연수가 <바다 쪽으로 세 걸음>(미출간) 이후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단편소설은 네 편이 실려 있다.

 

1 . 최은미, 美山  ★★★★

‘나의 이력서’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 자전소설.

최은미 소설의 기원을 엿본 듯한 기분이다.

자전소설이라는 형식을 염두에 두면 ‘미산’이라는 강원도 인제의 지명, 그리고 ‘나'(아마도 은미), 은욱, 은석 이렇게 삼남매의 이야기가 평범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미산 집에서, 그 고추밭과 바위 사이의 출렁다리 위에서 떨어져 죽은 어린 막내동생 은석, 아마도 그 일로 인해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른 아버지, 그리고 그날 집을 나가려 했었던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작가와 굳이 겹쳐 읽고 싶지 않을 정도의 무서운 비극이다.

이 사건 이후 이제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면, 중요한 것은 작가와 이야기를 겹쳐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그 기억에 계속 매인 채로, 찢어지는 생명을 여전히 감각하면서 은석의 부재를 믿지 않는다.

이런 ‘나’의 이상 행동은 ‘엄마’의 다소 기계적인 응대에서 미루어 짐작건대 아마도 무수히 반복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 오랜 세월 지쳐서 이제는 그러한 응대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은욱’이나 심지어 조카인 ‘서윤’도 마찬가지다.

둘째인 은욱은 나름의 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가족 구성원의 고통과 상처는 여전히 깊다.

어쩌면 ‘나’는 매일 무언가를 찢으면서 인간의 몸이 찢어지던 소리, 잠자리를 손으로 잡을 때의 그 불안함 같은 것들을 계속 떠올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출렁다리 위에서 첫째인 내가 아니라 둘째인 은욱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의 기억 같은 것.

이미 전작들에서 익히 증명되었던 바, 이런 유년의 끔찍한 기억들과 또 동시에 지독하게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하나의 ‘꿈’이 되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 최은미의 소설의 원류가 아닐까.

다만 아쉬웠던 점은 책가방을 저 세상에 두고 왔다는 꿈으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약간 의아하다는 것, 아버지라는 캐릭터가 조금 불분명하다는 것, ‘은석’을 만나는 결말이 다소 뻔하다는 것 등인데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을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2. 권여선, 너머  ★★★☆

정규직/비정규직, 기간제/무기계약.

이런 ‘가름선’들, 그리고 이 가름선들 ‘너머’에 관한 이야기이다.

권여선은 가끔씩 지나칠 정도로 선명하게 현실의 문제를 소설로 써내곤 하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기간제 교사, 간병인 등을 비롯해 조리사, 배움터 지킴이, 초단기 사서, 발명 실무사, 스포츠 강사, 방과후 코디 같은 불안한 고용 환경의 직업군들이 겪어내야 할 고통과 차별의 단면이 주인공 N을 통해 그려진다.

기간제 교사인 N은 처음엔 여성으로 읽혔는데, 다시 읽어보니 남성 같기도 하고, 굳이 성별 표지를 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러한 비정규직의 현실을 전면에 부각시키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그래서 N인가 싶기도 하고).

‘주무관’ 같은 인물이 보여주는, 이 가름선을 넘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일종의 관용 같은 것들이 날카롭게 그려지고,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8,9,10층이 요양병원이고 11층이 피트니스 클럽인 공간의 풍경을 엘리베이터로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또 이기적이고 능력이 부족하고 불성실해서 비정규직인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그만큼 노동 환경이 불합리하고 고강도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즉 사회 구조가 이러한 노동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임을 보여주는 간병인 교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고(간병인의 말투가 무척 리얼했다는 것도 장점), ‘이해타산은 단순해야 한다’, ‘잡급직들은 잡급직답게 잡스럽게 살아야 한다’ 같은 표현 역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기간제 교사 N이 그런 일들을 모두 거쳐 도달하게 되는 결말이 어머니와의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며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세상천지 N에게는 어머니밖에 없다고 어머니에게는 N밖에 없다고.”라면 너무 싱겁다.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느껴지기에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너무 설명되지 못했고, 그간의 이야기 진행을 고려하면 불필요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마지막 문단을 그냥 삭제하면 N의 복잡한 마음이 더 오래도록 남지 않을까.

 

3. 김유진, 보이지 않는 정원  ★★★★

독특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자기가 나고 자란 마을에 남아 혼자 있기를 원하는 특이한 인물 ‘태희’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오정’이라는 소설가가 등장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무척 잘 형상화되어 생생하고, 문장도, 소설의 분위기도 좋다.

단순하게 읽으면 혼자라는 것, 홀로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정원을 가꾸며 여생”을 보내는 삶이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고독이나 외로움에 대한 꽤나 독특한 레퍼런스가 될 텍스트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태희’가 보여주는 미묘한 사유와 행동의 표지들이 어쩌면 ‘퀴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또 그간 김유진이 그려온 세계를 떠올리면 작가에게 그런 관심이 분명히 있었고, ‘K’와의 관계나 ‘오정’을 대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흔들리는 ‘태희’의 모습들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태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 그 자신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유폐의 방식으로 귀결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혹은 ‘태희’가 일종의 무성애자로 읽히기도 하고 더 나아가면 사이코패스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오정’이 남긴 미완성된 소설의 줄거리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묻는 노인을 비롯해 마을을 절멸시키는 신원 미상의 여자의 이야기인데, 결국 죽음에 이른 ‘오정’을 생각하면 ‘태희’가 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태희’는 그 모든 정체성을 가진, 그래서 “숲에 은신하여 아무도 오지 않는 이 고요한 절간”이 ‘사랑’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독특한 소설은 다리 건너 관광지를 가진 오래된 마을과 또 오래된 한옥이라는 매력적인 공간도 꽤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백가흠의 <그 집>이 떠올랐다), 처음 읽을 때는 그것이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 다시 떠올려보니 꽤 매력적으로,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오정’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를 비롯해 각각의 이야기들의 배치나 구성이 조금 아쉽다는 점은 있다.

 

4. 이은선, 유빙의 숲  ★★

첫 도입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야기가 마구 확장되더니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문장이 혼란스럽게 쓰인 편이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자꾸 멈춰서 얼개를 그려내야 했다.

숲을 지탱하는 비자나무의 이야기로부터 거기서 나온 상어(어미의 죽음을 목격하고, 다시 죽어 돌아오는), 한센병 마을에서 잘려져 나온 손가락들을 숲에 묻는 ‘유진’, 그리고 4.3의 기억, 거기에 급기야 세월호 참사에서 조카를 잃은 ‘조형사’까지 엮어내니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제주’라는 공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힘이기는 한데, 절절한 진혼곡으로 쓰인 서술들이 공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죽은 숨들이 기포로 몸에 붙어 있는 모습이나 숲이 내보내는 전류 같은 것들은 이야기를 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지럽게 만들 뿐이고, 한센병이나 세월호에 관한 접근 방식은 다소 불편하기까지 하다.

다시 뒤적여 보니 양적으로는 정말 길지 않은 소설인데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써 넣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욕이 너무 지나쳤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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