쓺, 2018년 상권 / 문학3, 2018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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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간 잡지 <쓺>은 3월과 9월에 한 번씩 발행되는데, 대표적인 문학주의, 텍스트주의 잡지다.

이인성 작가의 주도 아래 전위적인 작가들의 근거지가 되는 곳인데, 늘 좋은 글들이 많이 실린다.

소설은, 정확히 말하면 소설로 읽히는 작품은 5편이 있다.

 

1. 구병모, 곰에 대해 생각하지 말 것  ★★★☆

1년 전쯤이었나,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가 떠오른다.

지금 한국 문단의 작가 중에 구병모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가 있을까.

페미니즘 이슈와 장르 소설 쪽에 고루 힘을 쏟으면서도 문학 자체, 언어에 대한 고민도 놓지 않고 있는데, 이 소설이 그렇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이런 소설은 다분히 지면을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싶고, 이게 구병모라는 작가에게 맞는 옷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문단 경험을 토대로 그 세목을 충실히 채워 넣으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평가받고 읽히는가에 관한 흥미로운 서사를 보여준다.

어떤 측면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러나 역시 이상하게도 ‘청소년 문학 작가’라는 딱지로 고통받던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에게 작가라는 자의식 혹은 언어에 대한 자의식은 늘 ‘과잉’일 수밖에 없을 텐데, ‘나’를 비롯해 ‘디’, ‘오’, ‘피’ 같은 인물이 다양한 양태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대해 고평을 주저하게 되는 것은 문단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전반부와 ‘오’의 연락을 받고 ‘곰을 잡으러'(언어라는 환상이겠지만)가는 후반부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절반씩 분배된 이 서술의 균형이 어떤 쪽으로든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더 매력적이지 않았을까.

 

2. 김솔, 브라운 운동  ★★★

최근 김솔이 지속하고 있는 작업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지나치게 자기 유희로 점철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2-3년 전에 유럽을 배경으로 대단히 독특하고 인상적인 몇 편의 단편을 쏟아낸 적이 있는데, 그 이후 사실 임팩트가 조금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카로니 프로젝트>나 <보편적 정신> 같은 최근 장편은 ‘자본주의’와 ‘세계’에 대한 김솔의 최종 버전 같은 느낌이고.

이 소설은 김솔이 자주 활용하는 지적 탐닉의 한 사례인데, ‘내 몸 속의 ‘배’를 어떻게, 또 왜 옮길 것인가’의 문제를 일관된 서술자의 목소리로 전달하고 있다.

성경이라는 전거를 두루 활용하면서 결국 시간의 불확정성, 비가역성에 대해 사유해 보는 시도가 아닐까 싶은데, 정확하게 읽어내기는 조금 어렵다.

‘게스타’/’디스마’의 대립은 나름대로 재미있긴 했는데, 이 소설의 매력이 되기에는 좀 부족했던 것 같다.

 

3. 박민규, 리처드 브라우티건과의 결투  ★★★☆

리처드 브라우티건을 읽고 싶게 만드는 글.

박민규 특유의 서사가 여전하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는 진리를 실천해온 ‘나’의 모험기(?).

결국 그 ‘선교’는 브라우티건과의 조우를 끝으로 마무리되는데, 그간 박민규가 보여준 거침없는 활력에 비하면 좀 심심한 편이다.

‘미국, 남성, 문화’ 이 세 가지로 연결되는 박민규의 세계는 또 그만큼 또 익숙하고 단순한 편이기도 해서 소품 정도로 읽힌다.

 

4. 이상우, 부채꼴 모양의 타일이 이렇게  ★★★★☆

이런 일상적인 소설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마 작가 본인은 늘 그랬다고 생각하겠지만.)

힘을 좀 빼고 쓴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상우 소설에 빠져들 줄은 몰랐는데.)

로마 사피엔자 대학의 안토네타 브루노 한국문학 교수가 등장하는 걸로 봐서는 이탈리아 로마에 레지던시 프로그램 같은 걸 떠난 게 아닌가 싶은데.

소설의 모든 문장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링의 집 앞 푸드 트럭에서 핫도그 먹었다.”와 같은, 조사를 생략하고 불필요한 수식을 걷어낸 자리에 리얼리즘의 세례를 마구 끼얹는 서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무의미, 허무, 권태가 집약된 듯한 이 일상의 지속은 어쩔 수 없이 ‘예술’과 함께해서 자의식은 점점 비대해지는데, 그게 ‘허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 느낌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위해 두 번 읽고 싶지 않은 소설.

 

5. 한유주, 개의 구조  ★★★★

‘텍스트 실험 공간’이라는 지면에 실려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작품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한유주가 지속해오고 있는 실험, 즉 “처음부터 다시 짖어야 한다. 나는 몇 년째 처음부터 다시 짖고 있다. 나는 언제나 개의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 개를 사랑했기 때문이다”의 서사가 다시 펼쳐진다.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이 작가는 최근 꾸준히 써오고 있는데, 그 반복과 차이들이 꽤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설령 그것이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끝내 이 이야기들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그것이 곧 ‘개의 짖음’이 아니겠는가.

한유주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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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 2호를 읽었다.

여전히 약간 짧은 소설(아마 50매 내외?) 5편을 싣는 방식이고, 이번 호에는 새로운 폰트를 도입했다.

명조와 고딕이 점유하는 활자 세계에 균열을 내겠다는 ‘산돌’ 측과의 협업인데,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읽어가다 보니 금방 적응이 됐다.

김이강의 시는 여지없이 좋았고, 이번에 실린 다섯 편의 소설도 대체로 좋았다.

 

1. 공선옥, 행사작가  ★★★☆

공선옥은 전통적인 방식의 ‘실천적’인 작가이지만, 또 소설적으로는 의외로 젊은 작가인 것 같다.

여전히 다양한 형식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고, 또 그 시도의 기저에 ‘광주’라는 거대한 사건이 늘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짧은 소설에서도 공선옥은 나름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면서 ‘광주’ 이후의 회한을 그리고 있는데, 전라도 특유의 감수성과 후일담 서사가 적절하게 잘 꾸려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K’라는 인물이 가진 어떤 순수함? 혹은 무심함 같은 것이 80년 광주 이후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태도와 연결되고, 또 그것이 일종의 추억으로 소환되는 ‘전형’ 같다는 것이다.

특히 또 그것이 ‘남성’ 특유의 스탠스라는 점은 작금의 젠더 감수성과 조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2. 김금희, 미국식 홈비디오  ★★★★

솔직히 좀 뻔한 이야기인데, 김금희가 쓰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늘 그렇듯 표면적으로는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이 잔잔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매튜’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입양아로 짐작되고, 엄청난 용기를 내어 부모의 나라로 온 ‘매튜’가 당신의 나라를 바라보겠다는 그 시선이, 담담하지만 무척 슬프다.

짧은 소설이지만 도입부도 흥미롭고 ‘매튜’의 엄청난 ‘노력’을 ‘상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미국식 홈비디오’라는 제목도 절묘한데, 결국 ‘매튜’가 찍을 수 있었던 홈비디오가 바로 그 여행 동영상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끝내 이 소설의 메시지가 ‘상구’는 한국인, ‘매튜’는 미국인이라는 점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3. 김희선, 조각공원  ★★★☆

이제는 김희선다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방식.

SF적 서사를 적절히 차용하면서 흥미로운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지난 계절에 <문학의 오늘>에 실렸던 <공의 기원>도 그랬고, 이 소설도 현실과 허구를 엮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출렁다리와 조각공원이 명물이라는 W시는 아마도 원주시(작가가 거주하는?)일 것 같고, 또 생각해 보면 사실 한국에서 출렁다리와 조각공원 없는 지역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것들은 참 요상하기 그지없는 랜드마크인데, 아무튼 그 조각공원이 사실은 거대한 냉동인간들의 캡슐로 이루어진 공간이었다는 이야기다.

‘데이비드 발렌타인’이라는 전위 예술가, 특히 ‘불멸’이라는 주제에 골몰하고 거기에 제 몸을 던져버린 인물이 이 서사를 이끌어나가는데 예술의 허위 같은 것을 보여주는 통쾌한 장면이 꽤 있다.

아쉬운 것은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이, 조금 식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냉동인간’이라는 것이다.

SF 클리셰가 주는 나름의 효과도 있겠지만 ‘불멸’을 상상하게 하는 다른 방식도 충분히 상상 가능하지 않았을까.

<문학3>은 소설 뒤에 바로 독자들의 감상을 덧붙이고 있는데, 거기에서 냉동 시체들의 ‘방주’, 그리고 ‘해동’의 실패 같은 장면들을 두고 “세월호와 연결되는 면”이라고 읽는 것은 좀 심하다.

실제로 세월호 추모공원 설립 논의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렇게 읽어내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리 김희선이 <골든 에이지>의 작가라고 해도 이런 소설까지 세월호를 이어 붙이면 곤란하지 않을까.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쓰인 소설에서 죽음과 바다, 특히 어린아이의 실종과 죽음 같은 소재가 등장할 때 이를 심상하게 넘길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지금의 한국 소설도 여전히 ‘세월호 이후의 문학’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정확한 맥락 없이 이미지와 소재로만 작품을 읽어내는 것은 명백히 오독이다.

 

4. 박유경, 가장 낮은 자리  ★★☆

이 작가의 <여흥상사>를 기억하고 있다.

‘개봉열독X’라는 이벤트로 책의 표지를 아예 가리고 판매했었는데, 2017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작이다.

그 장편의 서사와 분위기를 떠올리면 지금 이 단편과는 특별히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아마 문예지 발표는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우선 묘사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아파트 모델하우스 홍보 일을 하는 ‘지민’과 ‘은호’가 ‘김기사’의 승합차에 올라타 이동하는 잠깐 동안의 일인데도, 집중이 어려웠다.

30대 후반의 여성이 (아마도)4-50대, 그리고 20대 초반의 남성과 ‘차량’이라는 공간에 있을 때 어떤 언어 폭력에 노출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나로서는 ‘은호’라는 인물과 또 이 두 남성이 보여주는 대화의 맥락들이 리얼하게 와 닿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왜 ‘지민’의 직업과 일이 ‘아파트’라는 공간과 연결되어야 했는제, 별로 긴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여성이고 그래서 늘 키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무수히 좋은 설정이 있지 않았을까.

 

5. 정소연, 집  ★★★★

잘 다듬어지고, 완결성을 갖춘 SF 소설.

약속을 지킨다는 본사 ‘카두케우스’는 예전에도 등장했던 걸로 기억된다.

아무튼 이른바 ‘우주인’과 ‘지구인’이 서로의 죽음을 “반대로 준비”하다가 맞닥뜨린 상황.

시간의 상대성이 주요 모티프인데, 그것은 또 사랑과 죽음의 ‘상대성’으로도 연결되어서 무척 슬프게 읽힌다.

남-녀 표지가 없다는 점은 이제는 특별할 게 없는 경향이고.

무엇보다 “오작동으로 십만번에 한번 철판을 떨어뜨리는 단순한 운송장치였다” 같은 낯설지만 정확한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짧다는 것, 그래서 ‘나’와 ‘그’의 관계의 깊이가 어쩔 수 없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점 등이 아쉽다.

그리고 ‘네가 나의 집이야’라는 방식으로 묘사되는 “집”의 이미지도 조금 평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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