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8년 여름호

창비

 

<창비> 여름호를 읽었다.

아무래도 특집인 <문학이라는 커먼즈>에 제일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창비에서는 ‘공공성’, ‘공동체’ 등의 용어를 포괄하면서도 새로운 개념으로 ‘커먼즈’를 상당히 밀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유효해 보이진 않는다.

공동(통)의 문제가 어떻게 개인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다시 어떻게 정치적 감각으로 기능하는지 그 방식을 문제삼는 얘기라면 말이다.

그런데 이 논의가 현재의 한국 문단, 특히 <82년생 김지영>을 필두로 한 소설계의 상황과 만난다면 꽤 의미가 있어 보인다.

문학이, 소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근의 논의들, 내 감각으로는 ‘당사자성’이라는 문제로 범박하게 요약되는 ‘능동적 독자’의 출현과 맞물려 ‘공공’, ‘공동’, ‘공통’의 감각은 매우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려 있는 세 개의 글 모두 많은 공부가 되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계속 논의가 ‘반복’될 뿐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평론 지면에는 특이하게 외국인 필자의 글이 2편 실려 있는데, 짧은 편이고 약간의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있지만 흥미로운 대목도 꽤 많았다.

시에서는 서효인과 주민현이 좋았다.

소설은 3편밖에 실려 있지 않은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평소 창비의 볼륨을 생각하면 의아하기는 하다.

 

1 . 김혜진, 동네 사람 ★★★☆

상대방을 ‘너’라고 지칭하는 ‘나’의 1인칭 서사라는 점에서 <아는 언니>와 <너라는 생활>에 이은 레즈비언 커플 서사 3탄인 듯하다.

동성 커플이 접하게 되는 공포와 두려움에 관해,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각자의 인식 정도를 통해 촉발되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너’는 세상에 편견에 크게 개의치 않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는 성격이다.

‘나’는 당연히 그 반대여서 우리의 ‘옳음’을 주장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무수한 문제들을 먼저 떠올린다.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아마도 북촌이나 서촌 같은, 관광객의 시선에 자주 노출되는 서울의 중심가인 것으로 보이는데, 그 수많은 익명성 속에 관광객으로 섞이고 싶은 심리와 역으로 사생활이 끊임없이 익명의 시선에 노출되는 거주민으로서의 불편함과 불쾌가 ‘나’의 상황과 겹쳐져 있다.

즉, ‘나’는 ‘우리가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너’는 모르니’라고 계속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네 사람’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듯 한없이 개방적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내부/외부를 분리하는 시선이 레즈비언의 정체성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는지는 조금 의문이 든다.

사실 그런 설정은 조금 뻔한 것이기도 하고.

또 ‘너’의 결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불안함을 점차 증폭하는 서사로 나아가는데, 그것이 끝내 폭발하지 못한다는 점도 아쉽다.

아무튼 장편 <딸에 대하여>도 그렇고, 이 작가가 지속하고 있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는 따라 읽을 가치는 있어 보인다.

<21세기문학> 여름호에도 작품이 실려 있는데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2. 장은진, 외진 곳  ★★☆

사기를 당하고 삶의 끝자락이라고 부를 만한 쪽방에 거주하게 된 20대 자매의 이야기.

그리고 그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사연들.

이미 올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서사의 특성상 ‘리얼함’의 확보는 필수적인데,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생의 온도(?) 같은 게 조금 높아 보였다.

물론 어떻게 보면 오히려 그런 것이 더 리얼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날 이 공간의 풍경처럼 그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이 나름대로 설득력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도처에 이상한 낭만성이 깔려 있다.

불필요한 문장이나 크게 와 닿지 않는 표현 등이 많았고, 무엇보다도 자매의 ‘대화’가 아무런 ‘맛’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여러 서사를 갖다 붙인 어설픈 세태소설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3. 정지돈,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Light from Anywhere)  ★★★★

‘젊은작가상’을 받았던 <건축이냐 혁명이냐>의 후속작이라고 봐야 할 듯.

아마도 어떤 프로젝트(201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 의해 창작된 소설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과는 별로 상관없이 그저 ‘인간’이 ‘미래’를 어떻게 ‘건설’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우리의 지금, 이 공간은 분명 과거의 누군가가 ‘설계’한 것이고 그들이 상상했던 미래와 ‘지금’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그 간극, 그리고 허구와 사실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장르는 아마도 소설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고 정지돈은 이를 무척 잘 활용하고 있다.

‘양코 씨’와 ‘태순’의 당대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시공간적 서술의 폭을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풍부한 읽기가 가능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정지돈이 김연수에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지적 자극을 주는 소설이라는 차원만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어떤 시공간에 대한 시선이 기본적으로 따뜻하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중견 작가 군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고 여겨지는 2018년의 감각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어설프게 힙한 레트로적 감각을 내보이려는 소설과 분명히 다르고, 최근 약간은 실망스러웠던 정지돈과도 조금 다른 것 같다.

앞으로 뭘 쓰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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