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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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 여름호를 읽었다.

읽을 게 많았다.

박상영의 산문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2010년 전후의 한국사회를 이삽십대로 통과해야 했던 동세대인으로서 이 ‘명상’에 공감했고, 이기호나 이주란 작가에 대한 특집 지면도 재미있게 읽었다.

<#미투, 운동, 혁명>이라는 꼭지에 실린 다섯 편의 글은 경청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이렇게 한 발짝 떼기도 어렵고 갈 길은 너무 아득해 보이는데 이게 진짜 ‘혁명’이 될 수 있을까 하고 복잡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희진 선생도 결국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미투’는 고작해야 “범죄 신고 캠페인”일 뿐인데, 이제 ‘너도 미투해’라든가 ‘왜 미투하지 않느냐’는 질문 앞에서 서야 하고, 여성은 늘 완벽한 피해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할까.

2차 가해(피해)에 대한, 또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를 통과하면 황정은의 글에 다다르는데, 읽고나서 많은 생각을 했다.

작년 여름 발표했던 <정오에 우리가>가 당연히 생각났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이라는 록산 게이의 말을 읽은 덕분에 여기까지 나설 수 있었다는 것, 거기에 “동생들이 이 글을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면” 결국 입을 떼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라는 작가의 문장에 한없이 멈춰 있었다.

언제고 그때가 됐을 때 나 역시 “아니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될 텐데.

김수영 50주기에 맞춰 좌담도 실려 있는데, 김수영을 띄엄띄엄 읽어서 그런지 너무 신화화 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시에서는 이제니의 밀도가 이렇게까지 높아지다니, 하고 생각했고 그간 늘 재미있게 읽어왔던 한연희도 기대만큼 좋았다.

소설은 오랜만에 지면을 얻은 작가들이 꽤 있는 편인데, 전체적으로 다소 실망스러웠고 어떤 것은 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1. 이주란, 두번째 나  ★★★★

‘나의 이력서’로 쓴 작품.

이주란의 기원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어쨌든 ‘나의 이력서’이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 굳이 이주란과 분리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주란 특유의 스타일이 충분히 느껴졌고, ‘언니’가 ‘나’에게 주는 그 묘한 안정감이 좋았다.

여기에서도 이주란은 ‘자기가 지금 망친 관계’가 무엇인지, ‘언니가 많이 아팠다’고 짐작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의 독해를 염두에 둔, 그러니까 호기심 유발이라든가 서사적 전략 같은 게 아니고 그냥 지금은 이야기하지 못하겠다는,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기 싫다는 태도인데, 이 불친절함이 이상하게 이주란의 소설에서는 수긍이 된다.

 

2. 윤이형, 마흔셋  ★★★★☆

<러브 레플리카> 이후 윤이형의 단편들에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어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여러 번 울컥하면서, 계속 멈춰가면서 읽었다.

홀로 남은 ‘엄마’가 병과 싸워 가면서 끝내 죽음에 이르고, ‘여동생’인 ‘재윤’이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결정하는 시간 속에 ‘나’는 서 있다.

누군가는 자궁의 종양으로 죽음에 이르고, 또 누군가는 자궁을 들어내려고 하는 사건들 속에서 ‘나’의 자궁은(중의적인 의미에서) 연령으로나 젠더로나 애매하게 끼어 있다.

마흔셋의 나이가 되어 비혼의 삶을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나’는 스스로의 삶을 나름대로 영위하면서 또 때때로 외로움을 느껴가면서 늙어가고 있다.

‘나’가 ‘엄마’와 ‘재윤’을 통해 결국 느끼는 것은 “나는 어떤 것과도 그런 식으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들의 컴퓨터 배경화면에는 각자의 결심이 반영된 사진이 깔려 있지만 ‘나’에게는 늘 그저 새까만 화면만 있었을 뿐이다.

이 소설은 싸울 것도, 그렇다고 버릴 어떤 것도 없는 ‘나’의 삶이 “비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앞으로의 생이 또 얼마나 힘겨울지를 상상하면 결코 희망적인 결말로 읽지는 못하겠다.

두 혈연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는 ‘나’가 소설 말미에 자매였던 그들이 ‘걸스카웃’이었을 때의 짧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은 이럴 때야말로 효과적인 것 같다.

최근 페미니즘 서사들이 소재의 측면에서나 주제적으로나 ‘대의’에 함몰되는 듯한 양상을 보인 경향도 없진 않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또 어떤 측면에서는 급진적으로 다루면서도 오버하지 않는 시선을 견지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소위 ‘온건’해서 마음에 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쓰이지도 않았고.

이 인물들 각자의 슬픔을, 특히 나로서는 마흔셋 여성인 ‘나’의 현실을 감히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은 견뎌야 하는 일인지 분명하게 느낄 수는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3. 장강명, 현수동 빵집 삼국지  ★★★

빵집 경쟁 구도가 설정될 때부터 어쩐지 조금 예상되는 이야기이긴 했다.

소위 대기업 프렌차이즈 빵집과 신생 경쟁 업체, 그리고 장인 정신을 가진 소규모 자영업자 이렇게 세 가게가 출혈 경쟁에 내몰리는 과정이다.

장강명 특유의 디테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만큼 날카롭지 않고, 이런 사태가 왜 일어나는지 ‘내가 간파했다’, ‘내가 보여주겠다’는 식의 태도가 이제 좀 나이브하게 느껴진다.

개인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다 선량하고, ‘본사’로 대표되는 이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악하다는 식의 구도는 소설적으로 별다른 균열을 보여주지 못한다.

특히 빵집 노인 내외의 이상한 ‘낭만성’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몇 편 되지 않지만 최근 단편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실망감이기도 하다.

 

4. 김종옥, 개죽음  ★★☆

이 소설을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초반에는 그저, ‘아, 좀 올드한데’의 느낌이었는데, 아예 30년 전의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시공간적 배경만 90년대 초중반이 아니라 소설의 톤이나 문장 등 형식적으로도 90년대의 방식이다.

이건 좀 당황스럽고 충격적인데,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1인칭의 ‘나’와 3인칭의 ‘K’가 교차적으로 서술되는 방식도 그렇고, 친구의 자살, 휘발되는 청춘, 거기에 그 대상으로서의 여자.

자살한 친구 ‘용진’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동성애적 관계에서 비롯됨을 슬쩍 보여주기까지 하는데, 총체적으로 난국이다.

원래 김종옥의 스타일이 20대 남성을 이런 방식으로 즐겨 쓰는 타입이긴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이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소재는 ‘거울’이고, 또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가 일주일의 반복이라고 본다면, 이건 설마 지난 세기의 문학에 대한 ‘미러링’인가 싶기까지 하다.

이렇게까지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능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어느 정도의 여지만 남겨둔다.

 

5. 정지향, 알레르기  ★★★★

‘수주’와 ‘댄’의 동거가 그려지는 도입부는 좀 심드렁했다.

이런 관계 설정은 최근에 많이 봐 왔으니까.

그런데 수주의 ‘동생’이 자살하고 난 뒤로 모든 문장들이 평범하게 읽히지 않았다.

한없이 가벼워질 듯 하다가 무겁게 내려앉고 또 다시 조금씩 상승하는 소설의 공기가 여운을 제법 남긴다.

흔히 이런 ‘감성’에 취해 인물과 사건을 모호하게 처리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아서도 좋았다.

장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꽤 오랜만에 발표한 단편으로 생각되는데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때보다 확실히 좀 ‘성숙'(?)해진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런 서사 자체가 특히 젊은 작가군 사이에서 신선한 편은 아니고, 무엇보다 어쨌든 미국인 교환학생 ‘댄’에 의해, 또 전형적인 힙스터형 인물에 의해 ‘나’의 상황이나 한국사회의 현실 같은 것들이 나름의 이해 가능성을 부여받는다는 점이다.

‘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행보나 그가 ‘수주’에게 주는 요상한 위로가 좋은 장면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정치, 사회, 예술 등 조금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도 든다.

 

6. 사익찬, 출장 자장가  ★★

젊은 신인 여성 작가가 썼다고 하기에는 어쩐지 좀 믿기지가 않는 소설.

도입부에서의 톤과 전개 과정, 그리고 결말의 톤이 모두 달라서 흡인력이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무리한 설정이라고 여겨진다.

‘우란’이라는 인물이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 사람들을 자장가로 재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거기에 디테일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된 에피소드들이 유치하다.

‘나’의 사직, 결혼대행업체 알바, ‘규나’와의 관계 등 어떤 것도 ‘출장 자장가’라는 소재와 별로 어울리지 않고, 그나마 ‘결혼’이라는 관계에 관한 사유를 서로가 ‘잠자는 얼굴’을 공유하게 되는 일로 엮어낸 듯한데,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남성 인물들은 왜 ‘자위’ 행위를 통해 늘 삶의 무의미와 허무를 깨닫는다는 식으로 그려지는 것일까.

장점을 발견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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