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대산문화,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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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학> 여름호를 읽었다.

첫 시집과 소설집을 대상으로 시상하는 ‘김준성문학상’에 안미옥 시인과 이주란 소설가가 선정되었다.

첫 책 이후에 더 잘 쓰는 분들이어서 신뢰가 간다.

비평란의 ‘여공’을 이인휘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이경재 평론가의 글은 좀 의아하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최근 소설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여공의 문제라면 김숨이나 공선옥, 하명희 등의 작가가 쓴 근작들이 더 논의를 펼치기에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특집의 ‘미투 릴레이 매니페스토, 촛불’은 아무래도 제일 관심이 갔다.

쉽게 쓰인 글이 없었고, 말 그대로 이 사람들은 섶을 쥐고 불로 뛰어드는구나 싶었다.

이 ‘거대한 침묵’과 ‘관조’와 ‘문학의 자율성’과 ‘백래시’ 앞에서 우리는,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18년의 오늘이 단순히 과거를 소환하여 같이 얘기되거나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도록, ‘페미니즘’이 동력을 잃거나 꺾어지 않고 삶과 문학 곳곳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들이었다.

어쨌든 지금 스피커는 여성에게 있(어야 하)고, 더 크고 많은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시의 경우 이랑의 작품이 독특한 매력이 있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어 더 눈길이 갔다.

<21세기문학>은 작년에 그간 운영해오던 신인상을 폐지하고, 작품을 투고받겠다고 선언했었는데 그 결과로 실려 있는 세 편의 소설 중 2개는 ‘청탁이 아닌’ 작품들이다.

작품의 만족도를 떠나서 일단 지면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작가들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그 작가들의 작품이 마침 무척 좋아서 지지를 보낼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1. 김의경, 2층 여자들  ★★★

재미는 있었다.

고시원, 이라기엔 좀 고급스러운 10명 내외의 여성 거주자가 모여 사는 복도식 거주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나’를 통해 풀어놓는다.

‘총무’라는 인물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데, 다소 클리셰적인 면이 있지만 매력이 있는 것도 분명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좀 뻔하게 진행되는 면이 없지 않고, 애매하게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좀 있었다.

애초 이 공간 자체가 그런 면이 있고, ‘총무’의 활약 같은 것도 너무 쉽게 그려지고 있다.

이왕 이렇게 갈 거였다면 현실의 디테일을 무리하게 끌어오기보다 약간의 환상성 같은 걸 부여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특히 결국 ‘나’가 자신의 속물성 같은 걸 드러내는 일종의 반전이랄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차라리 더 밀고나가서 ‘믿을 수 없는 서술자’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한동안 고시원 등의 한국 특유의 거주 공간에 대한 서사가 뚝 끊겼다가 최근 다시 변형된 모습으로 꽤 등장하고 있는데(장은진의 <외진 곳> 같은) 그것이 ‘여성’과 함께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2. 김혜진, 다른 기억  ★★★☆

김혜진이 최근 단편에서 계속 시도하고 있는 형식이자 주제.

‘너’를 호명하면서 ‘나’와 겪는 갈등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레즈비언 커플인 ‘나’와 ‘너’라고 읽혔는데, 사실 이 작품에서 그런 표지는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냥 친구 사이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다만 전작들을 따라 읽었던 나로서는 연인이라는 감각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아무튼 ‘너’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차 ‘비위’를 저지른 교수를 ‘좋은 사람’으로 끝까지 믿으려는 태도이고, ‘나’는 상식과 팩트를 통한 합리적인 판단을 견지하려 한다.

그러니 결국 ‘나’에게 그 교수는 예전의 그 사람은 아닌 게 되고, 여전히 교수를 믿는 ‘너’와는 끝내 멀어진다.

이런 방식의 김혜진 소설의 장점은 갈등의 간극을 쉽사리 줄여서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든가, 그것을 증폭시켜 파국으로 몰고가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 자체만을 충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고, 또 아쉬울 때도 있지만 작가의 태도가 틀렸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시선으로 호명되는 ‘너’가 너무 일방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은 된다.

‘너’는 늘 감정과 주관에 치우쳐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무리하고 과한 행동을 하는데, 그것만이 ‘너’의 모습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의 제일 마지막 두 문단에서 “아니, 네가 좋은 사람이길 포기할 수 있었더라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라는 문장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3. 주애령, 원한  ★★★

아마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을 모티프 삼아 쓴 소설로 보인다.

시골 마을의 오래된 지인 간에 일어난 농약 살인 사건이 모든 증거와 범인이 밝혀졌지만 그 ‘동기’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결국은 어떤 ‘원한’은 이렇게 오래 간직되다가 삶의 끝자락쯤에 폭발하기도 한다는 내용으로 읽히는데,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 성 기자, 박 경사 / 정경수, 서유정을 대비시켜 오래된 ‘친구’라는 관계를 부각하려는 시도는 도식적이라는 느낌이고, 박 경사의 가족사나 과거의 일이 좀 번잡스럽게 덧붙여져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같은 방식으로 생생하게 읽히는 것은 장점인데, 사실 서사가 말끔하게 한 번에 이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작가 나름의 전략이겠지만 회상 장면이 좀 엉뚱하게 등장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대화나 서술이 생략하지 말아야 할 부분들까지 생략해버려서 이야기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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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도 꾸준히 발행되는 잡지다.

의외로 재미 있는 글들이 많고, 소설도 2편씩은 꾸준히 실린다.

다만 교보문고에서만 판매하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는 좀 어렵다.

 

1. 양진채, 북쪽 별을 찾아서  ★★☆

이 작가가 인천을 기반으로 해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소설의 지역적, 공간적 설정에는 자연스럽게 수긍을 했다.

중년의 남성 인물들이 유년기를 회상하는, 기억을 더듬는 회한이 실린 이야기인데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든다.

작위적으로 끼어드는 장면이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 ET에 대한 언급은 흥미로운 측면도 있었으나 너무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렸을 적 무선 통신에 관심을 갖다가 정보부에서 일하게 되고, 다시 나와 자전거 수리를 하게 된 ‘정호 형’의 사연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사화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는 좀 아쉬운 작품.

 

2. 배명훈, 미래과거시제  ★★★☆

이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언어와 시공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최근 출판된 <춤추는 사신>과도 주제 의식을 공유하는 것 같다.

예의 그 ‘은경’이 등장해 언어학적 소재를 통해 시간 여행에 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하지만 소재 자체의 흥미로움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이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일종의 타임리프 로맨스인데, 설렘이나 긴장, 감동 같은 로맨스 특유의 감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아무래도 ‘은경’이 ‘강은신’에게 느끼는 감정의 깊이가 별로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둘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나누고, 또 이별한 뒤의 장면들은 인상적인 몇 개의 문장들로만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장면에 도착해 “마침내 김은경이 강은신을 처음으로 만남다”라고 서술할 때 풍부한 감정이 생겨나지 못한다.

이런 소설에서 그것은 꽤 치명적이고, 돌이켜보면 배명훈의 여러 작품들이 다채로운 로맨스를 생산하는 데는 실패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꼭 ‘은경’이라는 인물이 대체로 등장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계를 구성하고 설명하는 데 할애되는 서술과 인물의 관계와 감정에 관해 서술되는 부분의 ‘조화’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이 작품은 대체로 이야기의 이음새가 썩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고, ‘강은신’이 말은 실수할 수 있겠지만 글로도 그랬을까 싶은 점도 사소한 불만이다.

 

 

 

2 Responses

  1. 주애령

    폐간 소식에 기운이 빠져 있었는데 그래도 누군가 읽어주었다는 사실에 약간 기운이 납니다. 도움이 되는 좋은 평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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