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2018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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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위태해 보이지만 어쨌든 나오고 있는 <한국문학>을 읽었다.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문예지의 경우, 계간지의 분기별 발행이 체질에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월간과 격월간은 너무 빠르고, 반년은 너무 늦다는 느낌이…

아무튼 소설이 다섯 편 실려 있다.

 

1. 김성중, 보이지 않는 전사들  ★★☆

요즘 이 작가가 하고 있는 작업의 연속이라고 생각된다.

인류의 기원을 찾는다거나 디스토피아를 설정하는 식의 서사가 그것인데, 여기에서는 군인과 시인을 대비시켜 무수한 살생의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

도식적이고 식상하다는 것은 둘째치고, 이 작가의 ‘문학주의’에 대해서 조금 불만을 표하고 싶다.

작년이었나, ‘현대문학상’을 받은 <상속>도 그랬고, 이 소설에서도 마지막 단락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다짐으로 끝나는데, 너무 대책없는 ‘문학 지상주의적’ 결말 아닐까.

어떤 것이 ‘진정한 죽음에 이르는 길’인지를 좀 더 파고들었거나 혹은 현재로 도달한 시점에서 디테일을 충실하게 보강했더라면(예를 들어 중동의 상황?) 어땠을까.

<걷는 고래>로부터 시작되어 <이슬라>, <키나> 등으로 이어지는 작업은 사실상 좀 실패가 아닌가 싶다.

최근 악스트에 실렸던 <레오니> 같은 작품은 손꼽을 만한 수작이었는데, 그런 작품을 써 줬으면 좋겠다.

 

2. 손보미, 세 개의 환상  ★★★☆

손보미답게, 흥미롭고 또 빽빽한 텍스트였다.

(전직) 소설가의 환상, ‘나'(혹은 아내)의 환상, ‘그녀’의 환상 등 여러 인물의 환상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이다.

말 그대로 환상에도 여러 차원이 있다는 것, 또 그 환상을 다른 사람에게 들려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게 만든다.

소설가의 고민은 작가 자신의 고민이기도 한 것 같고(<죽은 사람들> 이야기 같은 것), 읽으면서 손보미가 의외로 이청준과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결말이 다소 힘이 빠지는데, 어떤 방식이어야 임팩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3. 윤성희, 어두운 생각들  ★★★

최근 출간한 중편 <첫 문장> 같은 소설은 좋았는데, 이런 소설은 너무 윤성희표라 이제 좀 뻔해 보인다.

아마 이 소설을 마감할 때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더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좋았는데, 여전히 ‘묻지마 살인’ 같은 소재를 ‘인간적인 풍경’들로 감싸 안고 있다.

릿터에 실렸던 <여섯 번의 깁스> 같은 작품에서도 ‘한 집안의 몰락’을 추억으로 소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 소설도 좀 그랬다.

내 유년기에 영향을 끼친 가족들(특히 ‘삼촌’ 같은), 남성-청소년 친구들이 맺는 유대 관계 같은 것들은 너무 반복이다.

심지어 인상적인 에피소드로 제시되는 ‘소파’ 이야기는 예전에 비슷한 형태로 썼던 적도 있고.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이 소설은 약간 일본 고교생 감수성이 느껴지는 청소년 소설처럼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성희니까, 의 방식으로 평을 맺곤 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4. 최은영, 몫  ★★★★☆

다시 한 번 최은영임을 확인시켜준 작품.

최근 발표한 소설들에서 느꼈던 다소의 실망(기대가 커서 그랬겠지만)을 기우로 여기게 만드는 소설이다.

이 작가는 한 120매 정도의, 중편보다는 약간 짧고 일반적인 단편보다는 긴 분량에서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고.

범박하게 요약하면 90년대 후반을 통과한 여성-운동권-대학생의 후일담이다.

<먼 곳에서 온 노래>의 확장판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권여선이나 박민정, 황정은 등의 작가가 간간이 써왔던 서사를 본격적으로 시도했다고도 읽혔다.

이 소설의 ‘해진’은 기자로 설정되긴 했지만 여지없이 ‘소설가-나’라고 여겨지는데, 이를 ‘당신’으로 지칭하면서 미묘한 거리를 확보한 것이 우선 장점으로 보였다.

해진-희영-정윤, 이 세 여성의 서사가 겹쳐지고 어긋나는 동안 자연스럽게 세계의 변화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진보적 정치 세력의 여성 혐오 문제는 지금 불타오르는 의제가 아닐 수 없는데,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힐지 무척 궁금하다.

지금 1020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에 대해, 이런 이야기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고, 아무튼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희영’이 꼭 죽었어야 했냐는 것이다.

최은영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것이긴 한데, 차라리 희영의 이야기, 특히 기지촌 활동 같은 것을 충분히 썼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 경우라면 중편급이 되었을 테고, 밀도가 떨어질 우려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죽음’의 자리가 반드시 필요한지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5. 홍상화, 세월 속 삶의 무늬들  ☆

종이가 아깝다.

최소한의 성의가 있어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노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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