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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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가을호를 읽었다.

예전과는 달리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분단 너머의 한반도’를 구상해보는 글들에도 눈이 갔다.

특히 북한의 ‘문학’에 관해서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보다 문학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국가, 정확히는 체제에 소속된 작가의 창작 활동이란 어떤 것일까.

일전에 탈북 시인 장진성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를테면 낮에는 출근해서 철저히 당의 명령에 부합하는 작품을 쓰고(집단으로), 밤에는 처참한 현실에 대해 시를 써서 가슴에 품고 있었다는데, 정말 그랬을까.

지금은 장편연재 때문에 잠시 손을 놓은 듯 하지만 김연수가 쓰는 ‘백석 연작’도 그래서 더 궁금하고.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에 관한 인터뷰, 필립 로스, 최인훈에 관한 글도 흥미롭게 따라 읽었고, 이원하, 임솔아의 시도 좋았다.

시, 소설, 평론 각각 신인상 결과도 발표됐다.

( 여기에서 모두 읽을 수 있다. http://magazine.changbi.com/quarterly/category/changbi/)

평론의 경우 황정은론인데, 문동이나 기타 다른 지면의 응모, 당선작들을 봐도 소설의 경우 황정은의 영향력이 무척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정은의 소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끝내 무언가를 쓰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시 부문에 뽑힌 곽문영의 작품들도 대체로 좋았다.

소설은 아래에서.

 

1. 강화길, 화이트 호스(white horse)  ★★★★

한 작가의 실종이 발생한 후 그가 머물렀던 창작 레지던시로 입주한 또 다른 작가 ‘나’의 이야기.

강화길 특유의 스릴러적 글쓰기가 여전하고, 많은 퇴고를 거친 것인지 불필요한 문장도 별로 없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우연적 설정, 클리셰 같은 것들이 눈에 띄긴 했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이 ‘집’의 분위기,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일들, 자꾸만 물이 새는 화장실과 관리자인 ‘그녀’ 등 여러 소재들이 잘 안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이트 호스’라는 여러 함의를 통해 소설가로서의 ‘나’가 보여주는 사유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점이 많았다. (이렇게 얘기하면 ‘나’는 비웃을지 몰라도)

‘백마 탄 왕자’에서 ‘나’만의 어떤 것으로, 그러니까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 “나는 너의 화이트 호스가 필요 없단다”로 귀결되는 서사는 이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또 여성으로서의 다짐으로 읽히기도 한다.

누가 뭐라 하든, 쓰고 싶은 걸 쓰겠다고.

 

2. 김정아, 너무 쉬운 우리 꿈  ★★☆

이 작가가 소설집 <가시>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았을 때, 다소 의외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납득은 했었다.

여전히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충분히 지지받아야 할 작품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소설들은 나름대로 생생했던 인물들이 힘든 현실 속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던 그때보다 상당히 퇴보한 느낌이다.

지난 번 <문학3>에 실린 <감독판>도 그랬지만, 그냥 예전에 있었던 ‘운동사’를 받아적는 것 같다.

이명박 정권에서 일어났던 2008년의 촛불시위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상당히 나이브하게, 386 운동권의 낭만화되고 고루한 시선으로 그 현장을 스케치할 뿐이다.

“이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다시 광장에서 만나게 되지만 그것은 길고 혹독한 밤을 겪고 난 다음이었다”라고 마지막 문장을 쓸 거였다면, 왜 이 정도로밖에 쓰지 못한 것일까.

지금에 와서 2008년의 촛불시위를 돌이켜보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텐데.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정말이지 너무 쉽게 쓰인 소설이다.

 

3. 하성란, 숭어  ★★★☆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노년의 회한을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문장의 리듬과 톤이 무척 좋다.

소설의 분위기도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일상’의 풍경이어서 잔잔하게 읽혔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제 할아버지로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김은석’이 “우리 애가 살아 있었다면”, “그 애를 만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라고 서술할 때 이 문장들의 함의를 알기 어렵다.

모호하게, 또 약간은 건조하게 처리하는 편이 이 인물의 상황과 ‘거리’에 맞겠다고 판단한 듯한데, 결과적으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읽히게 된 듯하다.

지나간 세월과 또 현재의 세태를 재개발 지역 아파트 풍경이나 병원의 모습, 노학자의 인터뷰 등으로 묘사하는 것도 특별히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4.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

신인상 수상작이다.

2018년 한국의 스타트업 직장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그간 꽤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올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도 그렇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간 ‘회사’를 배경으로 한 젊은 직장인들의 이야기가 약간 아쉽게 느껴졌던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서두의 ‘스크럼’ 풍경, 영어식 이름을 통한 소통, 상사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단련된 월급쟁이 ‘나’.

어플리케이션 개발 과정과 피드백, 판교(NC)의 풍경, 리니지, 조성진 같은 것.

흔한 직장인 덕후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들이, 혹은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군데군데 포착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지지할 만하다.

다만 아무튼 약간은 소박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어떤 측면에서는 디테일에만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일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지만 무척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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