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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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문학 가을호를 읽었다.

이 알찬 계간지가 겨울호를 끝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었는데, 그러지 않기를 바라고.

‘미투 릴레이’의 두 번째 지면으로 ‘청년 독자’ 스무 명쯤의 글을 실었는데, 거의 이십 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게 목표였다면, 이미 인터넷 공간에 여러 독자의 리뷰가 무수히 많은데 왜 굳이 이런 딱딱한 지면이 필요했을까 싶다.

좀 더 한정적인 주제나 대립 구도 같은 게 있었다면 모를까, 그냥 여러 독후감을 모아놓았다는 생각이다.

물론 군데군데 숙고할 만한 지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전체적으로는 좀 아쉬운 기획 같다.

비평란의 김미정의 글은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그래서 흥미롭게 읽었다.

“소설의 재현법이 달라지고 어떤 인물들의 표상이 달라졌다면, 거기에는 분명 구획된 미학의 언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것”이라는 말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사유가 이 글에서 그토록 비판하는 문학주의, 엘리트주의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곧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줄이고.

북한문학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김성수의 글이 무척 흥미진진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김준성문학상 수상 작가 이주란의 특집에 실린 이재은 작가의 ‘작가초상’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 자체로 ‘이주란’이라는 소설 같다.

시는 별로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고, 서재진이라는 신인의 경우 뭔가 굉장히 익숙한 느낌인데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시 쪽은 아무래도 계보나 흐름에 대한 감이 없어서, 이럴 때는 좀 답답하다.

아무튼 소설은 네 편이 실려 있다.

 

1. 권상혁, 너를 생각해  ★★

등단 후 발표하는 작품들을 그래도 쭉 읽었던 편인데, (여전히) 문장이 난삽하고, 서사의 진도가 더디다는 단점이 있다.

단편소설치고 꽤 긴 편인데, 불필요한 부분이 너무 많다.

이를테면 소설이 시작되고 처음 줄바꿈을 하는 것이 4쪽이나 지나서인데, 그랬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서주’라는 주인공의 2018년 현재, 그러니까 유방암 수술 후 고교 교사로 복직한 지금의 상황과 20년 전인 1998년의 ‘영호’와의 관계가 겹쳐지는 이야기다.

스무 살 때 만난 두 연인이 임신과 낙태를 경험하게 되고, ‘서주’는 그걸 혼자서 다 감당, ‘영호’는 군대로 가버리고, 수술비에 보태라며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돈을 남겨놓고 등등.

모든 장면이 클리셰에 가깝다.

인물은 그저 소비되고, 극단으로 이야기를 몰고가겠다는 의지만 보인다.

특히 ‘서주’는 낙태 경험, 유방암 수술, 성폭력 사건 해결 중재자 등의 역할 등을 부여받으면서 과도한 짐을 지고 있다.

여성 인물의 고통을 꼭 저런 방식으로 서사화 하지 않아도, 복직 이후 학교에서 겪는 스트레스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1998년의 일과 2018년의 일 중 하나를 포기하면 어떨까 싶은데, 아무래도 이 소설의 방점은 1998년의 ‘너를’ 2018년의 내가 여전히 ‘생각해’에 있는 것 같아서, 재활이 어려울 것 같다.

 

2. 성석제, 에레미아의 선인  ★★☆

한국 근현대사를 통과하는 가족의 일대기는 이제 좀 지겹지 않나.

이런 소설은 이제 성석제만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소중’이라는 지주와 ‘심종국’이라는 심복의 두 가족이 어떻게 ‘몰락’해가는지 보여주는데, 다른 작가가 썼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가 좀 약해진 것 같다.

결말 부분에서 아내가 죽고나서야 뒤늦은 후회와 할말을 챙기는 건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이기도 한데, ‘재식’의 부고가 그 전환 직전에 전해졌다면 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사투리에 대한 감각이 그나마 성석제의 특장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각주로 처리하는 방식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각주는 쓰고, 필요해 보이는 각주는 쓰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 소설이 태극기 집회의 기원에 관한 텍스트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읽기에도 너무 단순해 보인다.

 

3. 정영수, 우리들  ★★★★★

소설의 문장, 분위기, 전개, 형식 모든 게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정은’과 ‘현수’를 바라보는 ‘나’의 위치가 우선 좋았다.

관찰자도 내부자도 아닌 그 애매한 위치가 둘의 관계를, 또 ‘나’와 ‘연경’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딱 절반으로 나뉘는 형식이 좋았고, 결국 이 텍스트는 ‘연경’ 때문에 쓰게 된 ‘소설’일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다.

읽지 않는 글에 대한 아득함과 고독이 제목의 ‘우리들’이라는 말과 묘하게 겹치면서 ‘나’와 ‘너’, ‘그들’과 ‘우리’, 그 모든 관계에 대한 상념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결말도 좋았다.

사실 소설에서 그려내는 장면은, 또 분량 자체도 얼마되지 않는다.

그들을 만났던 상수의 카페, 해방촌 카페의 공간, 입었던 옷, 드라이브 장면 등을 통해 이들의 시간을 모조리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탁월한 감각이 있다.

한 발짝만 더 나가려고 하면 바로 파국이 시작될 그들의 관계에 ‘나’가 끼어들면서 “우리 매년 여름마다 여기 올까?”라는 말 같은 게 나오고, 당연히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싸우는 순간 그냥 끝이니까, 끝낼 명분이 너무도 확실한 그들이 결국 끝나버릴 때, 나는 철저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그 기억들을 되짚는 과정까지, 작가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래 들여다보고 고쳤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제련된 문장이 돋보였다.

느슨하고 자유롭게 서술하는 척 하고 있지만, 고심해서 많이 덜어냈을 것 같다.

이런 평가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지적인 사랑과 낭만의 아이콘이었던 김연수의 전성기를 보는 것 같은, 그래서 어쩌면 정영수는 김봉곤이나 박상영이 최근 그러하듯, 청춘의 로맨스 작가가 가장 어울리는 타이틀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4. 이주란, 넌 쉽게 말했지만  ★★★★★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이주란스러운 소설이라고.

작가의 이름을 가려도 이제 이런 서사는 이주란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기’ 같은 글을 쓰면서, ‘과거의 사건’은 굳이 말하지 않고, ‘현재의 일상’을 특별히 여기는 감각이 이채롭다.

‘나’를 중심으로 겹겹이 포개지는 인물들과 이야기는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특이하고, 편안하고 느슨하지만 또 어딘가 불안하다.

이것은 고스란히 서사적 긴장감으로 이어져 이런 이야기라면 “요즘 나는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구나, 하는 것만 생각한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처럼, 그냥 영원히 읽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매력을 준다.

매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굳이 어떤 장면을 꼽기가 어렵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나’에게 ‘W’가 “넌 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네”라고 말하는 장면, 집 앞에서 ‘지유’와 ‘지우’를 만나는 장면들, 엄마와 미나리를 뜯으러 가는 장면 등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소설에는 최근 이주란 발표한 단편들의 인물, 장면 같은 것이 곳곳에 박혀 있는데 나는 어쩌면 이 소설이 최근 이주란의 최종 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이 이주란의 전성기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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