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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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 가을호를 읽었다.

종합지로서의 무게가 조금 힘겨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주제와 지면을 마련하기는 했는데 그것이 그냥 다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아이돌’이라는 키워드 자체는 시의적절했던 것 같다.

다만 이것을 ‘덕질’의 방향에서 바라본 것은 조금 식상했다.

차라리 BTS 현상을 확실하게 팠더라면 어땠을까.

자모 입장에서는 불운하게도, 지난 여름호의 상황과 비슷하게, 잡지가 이미 꾸려진 뒤에 BTS가 <IDOL>이라는 노래를 발표하고 말았다.

타이밍이 안타깝지만, 그건 일단 어쩔 수 없고.

아무튼 만약 BTS로 이 ‘크리티카’ 지면을 꾸렸다면 재밌었을까, 생각해본다.

근데 그것도 이미 대중매체에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러 분석이 있었던 터라 그다지 특별했을 것 같진 않다.

요컨대 문학을 벗어난 키워드 설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돌’을 다룬 문학 작품 정도는 그래도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싶은데 전혀 언급이 없다. (근데 아이돌을 다룬 작품이 있긴 하나 싶기도 하다(순문학에서). 정아은의 <맨 얼굴의 사랑>? 아니면 박민정의 <아내들의 학교> 같은? 하지만 광범위하게 ‘연예계’일 뿐이지, ‘아이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그냥 문화현상을 분석하는 일은 문예지가 비중 있게 수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How to Read’ 같은 지면도 일관성이 없고, ‘모멘툼’의 경제, 사회, 언론 지면도 의미 있는 논의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결정적으로 지면에서 편집위원들의 비중이 너무 높다.

물론 그것이 장점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잡지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수의 지면이 편집위원에게 가 있는 것은 그리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생만 하는 듯한)

시까지 실으면서 종합문예지로 복간했지만 결국 문학의 비중이 대폭 축소된 듯한 느낌은 왜인지.

소설은 ‘짧은 장르 소설’ 쪽 지면을 없앴고(이건 동의한다), 리뷰의 경우도 소설은 대담으로 대체하고, 시는 ‘리뷰’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 글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모는 문학 담론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별로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 역할은 문사의 하이픈이 가장 적극적인 것 같다)

아무튼 뭐, 작품이 좋으면 다 좋은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시는 전체적으로 아쉬웠고, 소설은 4편이 실려 있다.

 

 

1. 이승우, 사랑의 역사(役事): 이삭의 사흘길  ★★★☆

지난 <소돔의 하룻밤>에 이어 성경 다시 읽/쓰기를 연이어 시도하는 작품.

‘너의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신의 말을 듣고 제단에 이삭을 올리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이삭’의 시점으로 다시 읽고 있다.

나름대로 읽는 맛이 있고, 장 마다 조금씩 톤이 바뀌는 이삭의 목소리가 흥미롭긴 했지만 임팩트가 크지는 않았다.

지난 번 작품도 그랬고 최근 <사랑의 생애> 같은 장편에서도 느꼈는데, ‘사랑’에 대한 이승우의 잠언, 경구 같은 것들이 별로 새롭다는 느낌이 없다.

사랑을 ‘증명’한다는 것, 사랑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 등이 그러한데, 말하자면 사유를 ‘갱신’해 나가는 즐거움을 별로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로서는 일종의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의 좋은 사례 정도로만 여겨지는데, 이 작업이 지속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만약 단행본이 된다면, 원용하는 성경의 대목을 서두에 제시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읽는 재미가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반복이 많다는 건, 그게 변주되고 있다고 해도 좀 지루한 게 사실이고, 이 소설의 경우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후 갑작스럽게 끝나는 느낌도 있다.

사실 ‘이삭’의 입장이라면 그 이후가 더 궁금한데 말이다.

 

2. 노희준, 사우지, 사우다지(Saude, Saudade)  ★☆

읽다가 중간에 ‘아, 이건 음악이구나’ 해서 브라질 보사노바 <Chega de Saudade>를 틀었고, 작가의 말대로 도움이 됐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 같다.

요즘은 꽤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난 ‘남성-예술가 판타지’ 서사이자 ‘뮤즈’ 서사이다.

시각을 잃은 남성이 특유의 청각적 능력을 통해 드러머로 명성을 얻고, 특별한 목소리를 가진 재즈 보컬리스트 여성을 만나 일종의 예술적 승화에 이르는 서사인데, 하나하나 고개를 젓게 만든다.

자, 남자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술자리를 빠져 나와 기사를 부르고 차에 오른다.

그때 여자가 뛰쳐 나와 갑자기 차로 뛰어들고, 울면서 19살 때 윤간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괜찮다고’, 날 좀 알아 봐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때부터 둘의 관계는 이어지고.

어김없이 여성의 고통과 상처는 강간으로만 가능하고, 그 정도는 되어야 예술적 깊이를 얻는다고 또 이 남성 작가는 생각한다.

거기에 그 여성은 남자에게 매번 다른 여자를 데리고 가 섹스를 하게 만든다.

자신도 여러 뮤지션과 잠자리를 하고.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질투와 욕망, 또 음악과 예술.

마지막 장면을 볼까?

둘은 녹음이 잘 되지 않는다. 도통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여자는 불을 끄라고 한다.

남자는 앞을 볼 수 없으니 자신도 같은 상황에 처해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이런 문장이 나온다.

“드럼을 한참 치고 나서야 여자가 옷을 모두 벗은 것을 알았다.”

그리고 홀린듯 노래하는 여자의 목소리 속에서 남자는 흑백으로 구성되던 상상에 ‘색깔’을 얻는다.

어떻게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을까.

정치고, 젠더고, 윤리고 다 떠나서 하나도 재미가 없다.

그 와중에 애완견까지 칼로 난도질 당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나의 친구 말로에게 바”친다고?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

 

3. 손원평, zip  ★★★

아무리 생각해도 zip이라는 제목은 이 소설에서 강조되고 있는 바 ‘집’이라는 공간이 결국 삶의 모든 것이 ‘압축’되어 있는 곳이라는 의미밖에는 없을 거 같은데, 너무 단순한 착상 아닐까.

‘영화’가 ‘기한’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생활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한국 여성 일반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고, 여성 서사의 여러 소재들을 그냥 이어붙인 느낌도 있다.

우선은 문체가 너무 평이하다는 것부터 얘기하고 싶다.

중반부를 넘어설 때, ‘영화’가 (아마도) 이혼을 결심하고 통보하는 시점부터 전환이 시작되는데, 좀 더 빡빡하게 썼어야 하지 않을까.

우연히 다다른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자신의 결심을 얘기하는 도중, 남편이 호수에 빠져 식물인간이 되는 설정은, 비로소 남편에게 벗어났지만, 영원히 떨어질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영화’의 지독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는데, 그게 너무 평이하게 쓰여서 임팩트가 없다.

만약 이 사건이 ‘영화’가 남편을 죽이려고 했던 시도였다면, 그리고 그 기억의 사라짐과 ‘숙희’ 같은 친구의 등장이 효과적이려면 훨씬 더 혼란스럽게 서술했어야 한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채로 이야기가 손녀딸에게서 마무리되는 것은 이 소설을 단순히 ‘(여성인) 너는 그렇게 살지 말아라’ 정도로 읽히게 만들기 때문이다.

 

4. 박상영, 재희  ★★★★

첫 소설집 이후 처음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상당히 문제작이다.

단순하게 보면 <자이툰 파스타>의 왕샤가 ‘재희’로만 바뀌었을 따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끝내 이야기를 설득 시켜내면서 함께 한 시절을 살아낸 듯한 느낌을 주는 서사적 활력은 여전하다.

재밌게 읽히는 건 당연하고.

박상영 특유의, 그러니까 아주 하기 어렵고 예민한 이야기를 쉽고 솔직하게 써줄 때 오는 그 쾌감이 시원하게 느껴지면서도 묘하게 개운치가 않은데.

그건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작품에서도 느꼈던, ‘여성’의 문제(계급과 소비가 결합된?) 같기도 하고, 게이/여성의 (불)가능한 연대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이제는 작가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인물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낙태라든가 연인의 죽음 같은 문제가 아주 가볍게 처리되면서 동시에 비극성을 담보하는 방식, ‘나’가 느꼈던 그 “배신감”의 순간 같은 것들이 이제 좀 익숙해졌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박상영밖에는 쓰지 못할 것 같은데, 어쩌면 박상영은 이런 이야기만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

어쩔 수 없이 김봉곤의 서사 전략과 비교도 하게 되고.

아무튼 이런저런 고민을 지속하게 하는 문제작임에는 틀림없다.

다음 소설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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