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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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겨울호를 읽었다.

늘 그렇듯 가장 먼저 책이 나왔고, 소설 라인업이 좋았다.

두루 읽었는데 <한국문학과 새로운 주체>라는 특집은 좀 아쉽다.

여전히 한기욱 평론가의 ‘촛불혁명 주체’라는 호명, 거기에 ‘마음’의 서사를 더해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독법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황정은이나 정미경의 작품도 같이 언급되고 있는데, 해석이 별로 동의가 되지 않았다.

양경언 평론가의 글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비평은 ‘누구나 한다'(백지은)와 같은 맥락, 비평가와 독자의 경계 허물기 같은 논의는 특별할 것이 없었고 여기에도 ‘촛불’과 ‘혁명’이 양념처럼 가미되는 게 좀 불만스럽다.

지금 한국문학의 새로운 주체를 읽어내는 방법은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프랜시스 멀헌의 <비평혁명의 정치사>였는데, ‘연구’와 ‘비평’의 경계, 비평의 정치사회적 맥락 등이 (영미권의 상황이야 잘 모르지만) 참고할 부분이 많았다.

이기호 작가에 대해 주요 문예지가 일제히 특집을 마련하는 것은 조금 의아하고.

시는 별로 인상적인 작품이 없었는데, 노국희와 최지은 정도가 좋았다.

소설은 대체로 좋았고, 아래에.

 

 

1. 박민정, 나의 사촌 리사  ★★★☆

이제는 서른 여섯이 된 ‘나’가 일본인 사촌 ‘리사’를 찾아 도쿄로 간 이야기.

초반에는 좀 심드렁하게 읽혔는데, 이게 소설가 ‘나’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 후 갑자기 긴장감이 생겼다.

박민정 소설에서 그간 계속해서 등장했던 문제들, 국가, 민족, 여성, 가족 등이 여전히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그게 작가 자신의 고민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특히 <바비의 분위기> 같은 작품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유미’에 관한 서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세간의 평가들은 지난 계절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처럼, 지금 이 작가가 처한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리사’의 입으로 들리는 “외국 애들이 너무 많아. 우리도 힘들어 죽겠는데.”(122쪽), “나에게는 오따꾸를 미워할 이유가 없어”(130쪽) 같은 말들이 여전히 오래도록 고민스럽게 만들고.

동노조와 관련된 일, 오타쿠들의 거래 현장, 한국에서의 사진 촬영 경험(AV 배우) 등 ‘리사’의 이야기들은 결국 한 가지로 수렴되는 것 같다.

결국 문제는 여성혐오라는 것.

이 소설의 결말을 나는 작가가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겠다, 여성혐오의 문제를 더 명확하게 직시하겠다는 걸로 읽었다.

하지만 그것이 소설가의 ‘취재기’로 서사화 될 때, 형식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고, ‘나’와 ‘리사’ 각자의 이야기가 ‘전달’될 뿐, 그것이 어떤 ‘관계’와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메시지’에 대한 고민은 오래 가지만 ‘인물’이 별로 남지 않는 것 같다.

나로서는 <바비의 분위기> 정도의 ‘거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2. 박선우, 휘는 빛  ★★★☆

올해 <자음과모음>으로 등단한 신인 작가.

아마 잡지를 받아들고 조금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뒤에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 붙어 있고, 다루고 있는 소재가 거의 같다.

둘 다 직장에서 만난 두 여성의 관계에 대한, 그 어긋남의 과정에 관한 작품이고, ‘지수’라는 인물은 이름도 같다.

어떤 관계나 감정에 관한 소설이라면 지금 최은영보다 잘 쓰기가 어려울 것이고, 이 신인작가로서는 조금 불운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이 작가가 보여준 감정의 디테일, 흐름 같은 것은 최은영과 견주어도 충분할 만큼 깊이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특히 섬세하고 집요한 묘사가 이야기의 긴장감까지 견인하는 이 소설의 도입부는 최근 읽은 소설들 중 단연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이경’과 ‘지수’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도 나쁘지 않은 리듬으로 전개되었고.

아쉬운 것은 결말인데, 이메일 회신으로 어떤 ‘가능성’을 너무 쉽게 획득한 게 아닌가 싶다.

답장은 오지 않았거나, 혹은 조금은 예상치 못한 어떤 방식으로 왔어야 하지 않을까?

분량이 길지 않은데, ‘처음-중간-끝’의 리듬이 조금씩 다른 것도 결과적으로는 아쉬운 것 같고.

등단작에서도 약간은 그렇게 느꼈던 것 같은데,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하는, 그러니까 좀 길게 써 봐도 좋을 것 같다.

 

 

3. 최은영, 일년  ★★★★

올해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고,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도 뽑히는 등,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발표했던 <몫>도 아주 좋았고.

앞서 언급했듯 여성 동료와의 ‘관계’ 또 ‘일년’이라는 시간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사회인으로 만난 두 사람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공유하고, 알아갈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 이 소설을 보면 될 것 같다.

함께 출퇴근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나 각자 처해 있는 상황은 다르고, 조금씩 오해와 어긋남이 발생하고.

그리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될 때.

타인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과 자신을 돌봐야 하는 노고가 어떻게 부딪히는지, 각자 마음의 크기와 모양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떤 관계는 왜 결코 회복되지 않는지, 천천히 이들의 ‘일년’을 따라가면 알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액자 구조’로 이루어진, 우연한 재회로 시작되는 회상의 형식이다.

조금 다른 방식을 고민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위의 박선우처럼)

*귤을 까먹으며 읽으면 좋다.

 

 

4. 박상영, 우럭 한점 우주의 맛  ★★★★☆

그간 박상영 소설에 대한 학습효과가 없었다면 무조건 만점을 줬을 소설.

다행히 겨우 평정심을 되찾고 조금 차분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박상영 서사의 활력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계속 이렇게 쓸 수 있을까, 하고 최근에 생각한 적이 있는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95학번, 76, 용띠, 운동권 출신, 반미-반제국주의자, 디나이얼 게이인 ‘형’과 ‘나’를 ‘고쳐보려고’ 폐쇄병동에 강제로 입원시켰던, 지금은 암 투병 중인(동시에 아들과도 여전히 투쟁 중인) ‘엄마’의 이야기를 이 작가가 엮어서 쓰는데 재미가 없을 리가 있나.

처음에는 ‘형’과 ‘엄마’를 교차해서 다루는 방식이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오년 전, 나는 그를 엄마에게 소개하려 했었다.”(181쪽)는 문장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모든 게 설득됐다.

지금껏 읽었던 박상영 작품 중 가장 슬프기도 했다.

결국은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나’ 역시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는, 그래서 그냥 ‘나라서 미안하다’는 결말은 단순히 자조적이라고 해버릴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깊은 체념 같았다.

게이 서사가 줄 수 있는 서사적 긴장감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세대론’적이랄까, ‘계급적’이랄까, 묘하게 이야기가 얽히는데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중편 분량인 만큼 이 만족감이 볼륨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게 되는데, 결국 길어서 좋았다는 거니까 별로 중요한 건 아닌 거 같고.

여전히 ‘나’는 작가 자신과 많이 겹치는데, 이제는 이 ‘박상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까지는 실제 작가와의 거리를 이렇게 저렇게 가늠해 보는 것이 의미 있는 독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이 작가의 소설 속 ‘박상영’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인물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같은 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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