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과모음,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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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모 겨울호를 읽었다.

‘소확행’을 키워드 삼았고, 실린 글들이 다 읽을 만했다.

텔레비전 예능의 흐름을 정리하면서 ‘소확행’의 현재까지 짚어가는 이승한의 글은 너무 그럴 듯해서 의심스러울 정도였고, 키워드에 맞춰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봉곤, 문보영의 에세이도 재밌게 읽었다.

이주란 소설에 관한 김미정의 글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쓰면 이주란을 좀 ‘덜’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최인훈에 관한 복도훈의 글은 헤겔주의자 최인훈을 옆에 끼고 한 시대를 살았던 문학청년이 부고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쓴 글 같았는데, 그 어떤 추모글보다 인상적이었다.

주민현의 시가 좋았고, 소설은 라인업이 화려한 것에 비해 조금 아쉬웠다.

 

 

1. 편혜영, 호텔 창문  ★★★☆

소설의 초반부가 매력적이고, 편혜영답게 안정된 문장, 특유의 톤 같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편혜영의 전작들이 많이 떠올랐고, 소설의 주제도 좀 낯익었다.

살아남는 것은 확률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화재’의 이미지로 이어지는 것.

일진이었던 사촌형이 물에 빠진 어린 ‘운오’를 구해내고 본인은 익사한, 그리고 그 형은 ‘의인’이 되고, ‘운오’는 19년 동안 제사에 참석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도 떠오르고, 이창동의 <버닝>도 약간 생각나고, 무엇보다 이 작가의 <저녁의 구애>가 겹쳐 보인다.

‘누구 덕분에’ 살아남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긴 하는데 그것이 형 친구 ‘그’를 만나 증폭되는 방식은 조금 작위적이다.

최근 편혜영의 독특한 단편들을 생각하면 특히나 좀 아쉬운 소설.

 

 

2. 박민규, 보다 부드럽게, 구스~  ★★☆

박민규 소설에 이 정도로 실망한 건 처음인 거 같은데.

최근 발표한 단편들에서 이 작가가 나름대로 젠더 문제를 고심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이 소설은 전혀 아니다.

정말 놀랍도록 한결같은, 박민규가 10년 전에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이 결연한 ‘순정 마초’의 서사는 왜 또 튀어 나왔을까.

인류의 원초적 욕망이 섹스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섹스로봇 이야기가 식상하다는 건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걸 아무리 요상한 방식으로 뒤틀고 버무려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걸 왜 모를까.

‘깨꼬닥’, ‘헤까닥’ 이런 종류의 말장난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이외수 쪽으로 또 한 발 다가간 거 같은데 얼른 발 빼시길.

 

 

3. 백수린, 시간의 궤적  ★★★★☆

아마도 이번 계절의 베스트.

작가의 개인적 체험이 꽤 녹아 있겠지만 섬세한 감정선, 물 흐르는 듯한 전개, 잔잔하고 적절한 결말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프랑스로 유학, 파견 와 있던 두 여성이 나름의 관계를 구축하고, 그 궤적을 통과해 이제는 멀어진 이야기.

요즘 이런 서사는 꽤 흔하지만 이 정도의 디테일과 ‘다른’ 삶에 대해 어떨 때는 섬뜩할 정도로 묘사하는 문장은 찾기 어렵다.

인물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의 변화, 살짝 어긋나는 순간, 그리하여 결국 어떤 결정적 장면에 다다르는 리듬도 좋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제목이 더없이 적절하고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너무 심심한 제목이 아닌가 싶다.

박선우의 <휘는 빛>, 최은영의 <일년>과 더불어 읽으면 더 좋을 소설.

 

 

4. 김혜진, 우리는  ★★★☆

‘너’ 시리즈로 이제 책을 한 권 내도 될 것 같다.

그간 쌓인 단편들의 종착역 정도로 읽혔는데, 이 소설 역시 레즈비언 인물의 이야기로 계속 읽어나가도 무방한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가 ‘너’와 연락이 끊어진 지 5년 만에 다시 만난 이야기이고, 그 후 몇 차례 식당 경영에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결국 ‘너’가 젠트리피케이션에 ‘투쟁’을 시작하는 장면에 다다르는 작품.

이미 이 작가의 일련의 단편들을 따라 읽어왔기 때문인지 아무래도 이 작품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커 보이진 않았다.

때때로, 또 동시에 항상 ‘나’를 힘들게 하던 ‘너’의 대책없는 모습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일을 크게 만드는 ‘너.’

그래서 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던 ‘나.’

<자정 무렵>(Littor, 2018.12)에서 ‘나’는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고,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 파국 이후일지 모른다.

철거를 앞둔 동네에서 자정이 넘어 길을 헤매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정확히 <자정 무렵>과 겹치는데,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너’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또 이 시리즈의 다음이 있다면 얼른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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