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문학,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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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계간지가 사라졌다.

<21세기문학>은 이번 겨울호를 끝으로 종간했다.

대형 문학 출판사가 아닌 이상 개인의 후원으로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 의식은 계속 있어 왔던 것 같고, 편집위원들의 소회를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21세기문학>이 최근, 그러니까 혁신호였던 2013년 이후 계간 문예지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는 점이다.

마지막 호의 말미에는 그간의 ‘목차 색인’이 실려 있는데, 주욱 훑어 내려가면 그때 그 글이 떠오를 정도로 좋은 시, 소설, 비평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소설은 일별하면서 깜짝 놀랄 정도로 그동안 좋은 작품이 많이, 꾸준히 실렸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소설을 중심으로 봤을 때) 이제 전통적인 형태의 문예 계간지는 창비, 문동, 문사, 자모 이렇게 4개만 남는 듯하다.

여전히 종합 문학 잡지는 분기 단위가 적합한 속도라고 생각은 하지만 매체가 다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도 계절 단위의 ‘정통’ 잡지도 꾸준히 공존했으면 좋겠다.

시 지면의 작품들은 대체로 좋았는데, 이 잡지에 대한 애정과는 별개로 마지막 호에 실린 소설들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1. 강석경, 가멸사  ★☆

메이저 문예지에는 실릴 수 없는 소설이다.

“두 번 만난 적 있지만 얼굴을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동창 현우의 사촌 제수”와 ‘과장님’이라고 불리는 중년 시인 남성(정길)이 왜 이 산행을 시작하는지 우선 모르겠고.

그 두 사람이 만나 나누는 대화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진부하다.

묘사, 설정, 대화 모든 것이 과하고 올드하며, ‘정길’이 “졸고”라는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장면은 얼른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그냥 ‘무장사지 가는 길’인데 “가멸사”라는 의미 부여도 문학적 감흥이 전혀 없다.

 

 

2. 고민실, 골든컵  ★★☆

게임회사에 다녔던 여성(수연)이 생리컵을 사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시도하는 이야기.

“자기 몸에 맞는 제품을 찾으면 골든컵이라고 부른대요.”(98쪽)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범박하게 말하면 자기 자리를 찾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게임이라는 장르, 그리고 게임를 제작하는 조직에서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결국 어떻게 사라지는지 나름대로 보여주고는 있다.

그러나 소설의 사건들은 이를테면 페미니스트 성우를 해고했던 게임 회사의 실제 사건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여성 혐오를 남발하는 채팅창에 고작 “여자 있어요 (…)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105쪽)라고 반응하는 캐릭터라니.

이 이야기에 생리컵, 그리고 친족성폭력까지 소설에 등장하면 그러한 사건들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소설이 현실을 되받아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니 현실을 제대로 받아쓰기로 작정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더 세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수연’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소재, 또 ‘류’라는 인물을 통해 중층적으로 구성되지 못하고 파편적으로만 남았다.

이 작가는 <피의 연대기>를 봤을까.

생리컵이라는 소재에 대해 말을 얹을 계제는 사실 못되지만 소설 바깥에서는 이미 더 멀리 나아가 있는 것 같다.

 

 

3. 오수연, 홍수  ★★

아마도 1970년대, 홍수가 난 서울 한강변 빈민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추측건대 작가의 유년 시절이 핍진하게 반영된 것 같고, 1964년생임을 고려하면 소설의 ‘막내’ 정도로 생각된다.

디테일과 말맛, “각하”, “빨갱이”, “특별수사본부” 같은 시대의 풍경도 잘 알겠는데 지금 이 소설이 어떤 의미를 더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납득이 잘 안 된다.

계속 반복되는 문장 중 하나가 “이모, 아기를 울려요.”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도통 잡히지가 않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소설.

 

 

4. 이재은, 팔로우  ★★

제목에서도 연상되듯, ‘트위터’를 주 소재로 다룬다.

그런데 정말로 소재적으로 동원되었을 뿐이고, 감히 말하건대 이 작가는 트위터를 ‘모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의미한 스트리밍을 시작하는 배우 ‘김우치’와 그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트윗이 하나씩 사연으로 재현되는데, 청년 세대에 대한 인식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단순하기 그지없다.

겨우 이런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트위터라는 공간을 설정한 걸까.

56세 명품 조연 배우이자 은은한 트위터 셀럽인 ‘김우치’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생겨난 캐릭터일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지켜보는 김우치의 ‘상상’일까도 생각해 봤는데(배우니까), 그래도 별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5. 차현지, 무덤 산보  ★★★☆

익숙한 캐릭터에, 익숙한 설정에, 익숙한 목소리(톤)였지만 소설이 어쨌든 명확하게 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나쁘지 않게 읽었다.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했고 대신해서 인사를 전했다”(200쪽)가 결국 소설의 핵심이다.

온통 이혼하고 헤어진 사람들 틈에서 ‘석조 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나’가 결국 이렇게 “단호”해진다는 것.

완전하게 누군가와 헤어지는 일은 ‘털보 아저씨’처럼 무덤에서나 가능하다는 것.

“같이 산다는 건 뭘까”(201쪽)라고 또 묻는 것.

그러니까 ‘같이’가 아니라 ‘산다는’ 게 중요하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나’는 폭설이 내리기 시작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까.

그래도 결국 ‘석조 씨’의 집인 “오른쪽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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