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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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 겨울호를 읽었다.

리뷰 지면이 상당히 강화되었다.

열 편 가까운 글이 실렸고, 시집 8권, 소설책 11권을 묶어서 다루고 있는데 대상작 선정에 꽤 고심한 게 느껴졌다.

문태준, 진은영, 안태운의 시가 좋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유원의 시는 요즘 들어 좀 급격하게 ‘늙어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하이픈의 주제가 ‘재현-현재’인데 요즘 문단의 키워드가 ‘재현’임은 분명한 것 같다.

리뷰 쪽에 오한기, 김숨 소설에 관한 글은 사실 ‘재현’ 쪽으로 옮겨서 읽을 때 더 흥미가 있을 것 같고.

하이픈의 글들 중 평론가들의 글은 (나를 포함해) 고만고만하게 읽혔고, 역시 뒤편의 작가들 글에 관심이 갔다.

한유주와 백민석, 박상영의 글은 그 고민의 깊이와는 별개로 너무나 명쾌하게 그간의 행보를 설명하는 글이어서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뿐 더 물을 것이 없었고, 장강명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모르겠다.

“혹시 한국 문학의 생산 구조 자체가 어떤 영역을 재현하는 능력을 잃어가는 건 아닐까? 이런 가운데 ‘그들만의 문학’이라는 비판이 힘을 얻는 것 아닐까?

한국 문학장의 관심사가 특정 영역에 치우쳐 있지는 않은가? 한국의 자영업자가 7백만 명이고 대부분이 고사 직전이라고 하는데 그런 현실은 한국 소설에서 충분히 재현되는가? 자영업자 문제가 성 소수자 이슈만큼 한국 문학장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가? (이는 한국 문학이 성 소수자 이슈에 대한 관심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님을 밝혀둔다.) 한국 문학은 남한 정부의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자세로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언급하는가?”(174쪽)

이런 문장들을 써놓고는 이라크 수용소 이야기를 하며 본인이 소설로 그것을 쓴다면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을 드러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 ‘사회 현실파’ 소설 왜 안 쓰냐는 얘기겠지. 본인은 쓰는데.

최근 <현수동 빵집 삼국지>(문학동네, 2018년 여름호)나 <사람 사는 집>(대산문화, 2018년 겨울호)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방식.

(북한 인권 얘기는 <팔과 다리의 가격>일 테고)

출혈 경쟁에 내몰린 자영업자들(<빵집>)과 재개발로 인해 철거민으로 투쟁을 시작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집>)를 그리면서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세계’를 보여주겠다는 것.

취재의 방식으로(실제 신문 시사의 형태도 넣어가면서) 사태가 단순한 것이 아님을 드러내겠다는 것이고 익히 장강명 작품에서 꾸준히 시도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작가는 ‘무엇’을 재현하는지에만 골몰하지 ‘어떻게’ 재현할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것 같다.

이를테면 철거민과 용역의 충돌을 그 법적 근거, 투쟁 조직의 구조와 변화 같은 걸로 설명하고, 쉽지 않은 문제임을 보여주면서 ‘여기도 사람이 있다’ 수준으로 끝내는데, 그러면 도대체 뭘 고민하고 소설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철거민이라고 그 주장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부도덕’한 사람도 있으며, 용역이라고 다 악한이 아니라 ‘합리적인 판단’도 한다는 식으로 소설을 쓰면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인가?

이런 소설은 작가 본인이 ‘저도 재개발 문제를 소설로 써본 일이 있습니다’ 한 마디 할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강명은 한국의 소설가들이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 혹은 그것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만약 한국 소설에서 장강명이 말하는 소재들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연하게도 그러한 문제에 관해 말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이지 현실의 여러 일들에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한국 소설에 이미 그런 작품은 제법 있다.)

성 소수자 이슈를 자영업자 문제와 결부시키는 저 문장과 한국 문학장을 마치 다 지켜보고 있다는 포즈를 취하면서 ‘여성’의 문제는 단 한 차례도 거론하지 않는 태도는 이 작가의 젠더적 스탠스를 계속 의심하게 만들어서 더는 아무런 기대를 갖지 못할 것이 분명하고.

마침 이번 <대산문화>에 실린 작품을 읽는 바람에 괜한 소리를 너무 길게 써버렸는데, 장강명이 과연 믿고 읽을 수 있는 작가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섰다.

다음 <악스트> 특집이 장강명인 듯 한데, 이 판단을 바꿀 수 있을까.

 

문사에 소설은 3편밖에 실리지 않았다.

요즘 늘 그렇듯 뒤쪽의 작품은 짧은 소설이기도 해서 좀 빈약해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문지’스러운 소설들이고 모두 ‘죽음’과 ‘실종’을 다루고 있어서 같이 읽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1. 백가흠, 나를 데려다줘  ★★★☆

어머니의 유산으로 강남의 낡은 아파트 두 채를 가진 채로 직장에서 해고되어도 돈 걱정 없이 허무와 권태와 싸우는 ‘나’의 이야기.

여기에 몽유병 증세를 겪고 있다는 설정이 추가되고 ‘나’가 경험한 일들은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는 환각처럼 처리되기도 한다.

그저 어딘가를 ‘다닌다는 것’, 혹은 ‘다녀온다는 감각’만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결국은 몽유병의 증상이 ‘나’의 삶 전체로 확대되어 읽히게 되고, ‘아버지’의 실종(죽음), ‘그(정재호)’의 실종 같은 것들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미스터리가 증폭된다.

방점을 찍는 것은 집안의 화분에서 발견된 ‘두개골’인데, 이게 효과적인 설정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의 삶이 그저 붕 떠 있는 것처럼만 보이다가 이제 ‘나’를 둘러싼 실종과 환각 같은 것들이 ‘살인’이라는 행위를 의심하게 되는 지점으로 이어지는데, 어디까지 읽어내야 할지, 또 결국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가 않는다.

결과적으로 소설이 애매해진 느낌이고, ‘나’가 40억이라는 ‘헐값’에 아파트를 팔아버리고 요트를 사겠다는 결심을 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왜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일종의 부조리극 같은 걸 의도한 거라면 조금 더 ‘극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2. 이민진, 장식과 무게  ★★☆

어떤 걸 의도했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마치 ‘페르굴라’처럼, 혹은 가우디의 “장식은 성격 판단의 기준이다”라는 말처럼 삶을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

즉 남편과 아이의 죽음 이후의 이모 ‘정우신’의 삶은 조카인 ‘나’를 통해 “채색되었고, 채색되고 있고, 채색될 것이”라는 것.

이모는 실종되었지만, 그래서 남은 가족들은 결국 그 부재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처리해버리지만 ‘나’는 “모든 판단과 결말을 유보”하겠다는 것.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동원되는 ‘정보’나 ‘레퍼런스’들이 꽤나 많고, 건축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지돈이 떠오를 수밖에 없고, 이 작품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성의 문제라기보다 각각의 ‘다른’ 이야기들이 별로 흥미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고,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명하면서 “거기서 197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났다”고 잘못 쓰는 것은 너무 치명적이다.

다음 문단에 “역사적 사실보다 그럴듯한 거짓말” 운운하는 대목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남영동을 설계한 것이 김수근인지에 대한 것이므로 저 문장은 오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핵심은 ‘페르굴라’이고, (사전과 그림까지 동원했지만) 이 소재가 ‘이모’와 ‘나’의 삶과 조응한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패착인 것 같다.

이 작가가 <후일담>이라는 작품을 2년 전쯤 발표한 적 있고, 서사 자체는 거의 잊었지만 반지하의 공간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이 남아 있는데, 아마도 ‘공간’과 ‘건축’에 관한 관심이 큰 것 같기는 하다.

 

 

3. 진연주, 바깥의 높이  ★★★

짧은 소설이기도 하고,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므로 할말이 많지가 않다.

앓던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그 어머니를 안고 바닷가로 간다는 것(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지만) 정도가 전부다.

몇몇 이미지와 장면은 좋았다.

추운 겨울, 들창, 야경꾼 소리, 어머니의 손, 냉기, 그리고 “무 꼬리가 길구나. 올겨울은 혹독하겠어.”라는 말 같은 것.

그런데 정말로 그것뿐이라서 이 소설을 다시 곱씹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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