쓺, 2019년 상반기호 / 대산문화, 2019년 봄호

열심히 하겠다고 해놓고 또 이렇게…

여름호 나오기 전에 읽은 걸 한 번 정리해야겠다.

 

쓺

 

<쓺> 상반기호를 읽었다.

반년 간 잡지라고는 하지만 이 많은 기획을 어떻게 다 소화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고, 금방 읽을 수 있는 글들도 아니어서 천천히 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영문의 근작을 경유해 정지돈이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플롯”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을 했는데, 나름 재미있게 읽었고, 참여한 작가는 총 6명이고, 정지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이게 ‘만사가 귀찮은 플롯’의 은유인가 싶기도 하고.

소설은 3편이 실려 있다.

 

1. 김덕희, 식은 볕  ★★★☆

35세 ‘상진’의 (반복되는) 하루를 그린 소설.

무언가에 쫓기는 악몽을 늘 꾸다가 잠에서 깨면 알람이 울리기 전이고,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 속에 오늘이 회사의 창립기념일임을 알고 느긋하게, 그러나 소득없이 휴일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30대 초중반 청년 남성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인가 방심하고 읽다가 “중고가전” 전화번호를 저장하는 장면에서 반전되는데, 이후 스타벅스 장면, 버스 장면으로 속도감 있게 전개되다가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다시 ‘창립기념일’의 하루가 이어진다.

흔하다면 흔한, 뻔하다면 뻔한 구조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매끄럽게, 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게 읽혔다.

결국은 ‘소설’ 쓰기로 나아간다는 걸로 읽히기도 하는데, 그것도 단순하게만 그려지지는 않았고.

계속되는 상상이 어떻게 현실(일상)이 소설(텍스트)가 되는지 그럴 듯한 서사였고, 과거나 미래따위 없이 ‘현재’에 갇힐 수밖에 없는 소설의 운명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모든 해석의 가능성들이 직장인-청년-남성-연애 이런 문제로 귀결되는 느낌.

다시 말해 오히려 여러 디테일이 소설의 가능성을 감쇄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실험적으로, 조금 더 모호하게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2. 김봉곤, 일산 아래  ★★★☆

누가 읽어도 김봉곤의 작품.

지나간 연애(라고 하긴 좀 어려울 거 같고)의 기억을 더듬으며 한 시절을 끝내는 이야기.

경주 출신이었던 ‘일언’과의 만남과 편집자로서 시인을 모시고 시상식장인 경주로 향하는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서술된다.

발광하는 욕망과 칠흑 같은 절망이 글과 몸에 동시에 배어 있는 감각은 여전한데, 이번 소설은 그게 좀 단순하게 ‘경주’라는 지역으로 엮이기만 한 것 같다.

(Y선생님과의 메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그랬다.)

다소 흔한 로맨스 같다는 느낌도 들었고, 이 작가의 서사가 약간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주에서 다시 만나 잠깐 동안 아침을 함께 보내는 장면이 킬링 포인트일 텐데 좀 약하다는 생각도 들고.

다만 경상도 출신 남성 특유의 감수성과 대화 같은 것은 좋았고, 게이 서사에서 유독 지역성이 강조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기는 했다.

경주에서 있었던 시상식은 아마도 동리목월문학상일 텐데 실제로 경험했다고밖에 볼 수 없겠고, 살짝 Y선생님 캐릭터를 비튼 거 같은데 재밌게 읽혔다.

 

 

3. 염승숙, 거의 모든 것의 류  ★★★

나는 염승숙의 로맨스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아쉽다.

작년 봄이었을 텐데, <문학들>에 실렸던 ‘충분히 근사해’도 좋았고 <현대문학>에 썼던 ‘작가와 그의 문제들’도 나쁘지 않았다(이건 로맨스는 아니지만).

그런데 이 소설은 ‘하진’과 ‘류’의 만남과 헤어짐이 좀 작위적인 데다가 불필요한 문학적 과잉 같은 것도 좀 있었다.

‘하진’이 얼마나 어렵게 20대를 보냈는지, 그러니까 직장으로부터 모욕과 멸시를 당하면서 버텨왔는지, 엄마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그렇게 그 시간들을 지나 ‘류’를 어떻게 발견하게 된 것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류’ 역시 마찬가지여서 소설을 쓰려다 실패하고, 번역으로 어렵게 생활을 영위해나가면서, 이혼하고 아들조차 제대로 만나지 못해 무척이나 외골수가 된 그가 어떻게 ‘하진’ 쪽으로 마음을 쓰기 시작하는지 공감이 안 됐다.

인물들의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고, 소설의 톤이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이 둘의 관계가 설득되지 않으니 ‘하진’이 ‘류’를 생각하며 보내는 안녕의 메시지도 심드렁하게 읽힐 수밖에.

 

 

대산문화

 

늘 그렇듯 <대산문화>에는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 이장욱, 행자가 사라졌다!  ★★★

‘행자’라는 애완용 뱀이 사라진 이야기.

아빠, 엄마, ‘나’, 남동생 규, 할머니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이 지내는 공간에서 갑자기 뱀 ‘행자’가 사라지는데, ‘범인’이 누구인지를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추리소설만 읽고 있는 ‘나’가 나름대로 추리해 나간다.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사연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소개되고, 마지막에는 ‘행자’인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할머니의 처지나 상황은 뱀인 ‘행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국 ‘행자’를 겹쳐 보는 것에서 이 소설의 의미가 발생한다고 생각은 되는데, 뱀을 찾지 못했고 그 뱀은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으며 당신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결말이 소설을 좀 소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나’가 지금 어설픈 추리소설을 흉내내고 있다는 알리바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근사한 결말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2. 임솔아, 눈과 사람과 눈사람  ★★★★

이 작가가 상당히 고통스럽게 이 소설을 썼으리라 짐작한다.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지 않았다면,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더라면.”이라는 문장으로 소설은 출발한다.

피해자와 연대해 사건을 공론화하고, 모임을 조직하고, 운동을 해나가던 사람들이 모종의 오해와 갈등으로 와해되는 이야기라고, 범박하게 요약은 할 수 있겠다.

피해와 가해, 연대와 이기심 사이에서 말들은 조심스럽고 사태의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고 연대의 과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 즉 눈과 사람이 합쳐 눈사람이 되듯이, 누군가가 만들다 포기한 눈사람을 힘을 합쳐 끝내 완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일들, 문단 내 성폭력 사태나 미투 운동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무척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소설이고,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거기에 부채감까지 불러일으킨다.

<참고문헌없음> 때의 일이 우선 떠오르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거니와 이런 내부 갈등, 고발 같은 일들은 수없이 반복되고 일어나니까 특정 사례를 굳이 대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연대와 운동이란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 일인지 보여주면서도 ‘이게 맞다’는 확신과 단호한 태도가 이 소설에는 있고, 그게 마치 ‘나’를 비롯한 다섯 명의 입장만 대변한다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결국 그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 같기도 하다.

단순하게 이상적인 연대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차이를 인정하고 동시에 내가 가진 확신과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 할일을 하는 것.

‘지원’이 다시 개들과 산책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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