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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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 여름호를 읽었다.

통권 99호여서 가을호는 100호 특집으로 풍성하게 발간될 듯 하다.

라캉의 <에크리> 발간을 기념해 관련 연구자의 글들을 특집으로 실었는데, 내 관심사는 아니어서 좀 심드렁하다가 에세이 식으로 쓰인 ‘라캉과 나’ 류의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김소연의 “표본의 사담”에 적힌 일련의 일들이 흥미로웠다.

황정은, 김봉곤의 대담은 웬만한 팬심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내밀한 대화여서 김봉곤 작가는 인터뷰조차 로맨틱하구나, 했다.

시에서는 정다운, 황인찬, 박은지의 작품이 좋았다.

창비에서 단편을 발표한 천운영 작가는 문동에서 <폐업일기>라는 장편 연재를 시작했다.

요식업계로 뛰어든 ‘진우’의 흥망성쇠를 다룰 듯한 이 소설은 적어도 디테일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소설은 김세희 작가의 ‘나의 이력서’를 제외하면 다섯 편이 실려 있다.

김세희의 <대답을 듣고 싶어>는 자전적 소설이면서 곧 발간될 장편 <항구의 사랑>의 에필로그 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별도의 단편으로 취급하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고, ‘민선 선배’에 관해서는 장편 쪽에서 자세할 테니 따로 언급은 굳이 안 해도 될 듯 하다.

다만 마치 신경숙의 ‘희재 언니’처럼, 여성 작가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언니나 선배라는 존재, 이 연대감에 대해서는 좀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우정과 사랑, 선망과 질투, 애정과 적대가 매우 복합적으로 공존하면서도 연인이자 동반자로서, 때로는 거의 가족에 준하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이 관계에 대해 그간 조명이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다섯 편의 소설을 읽었다.

 

1. 고종석,  ★

역시나 원조 ‘관종’다운, 고종석 특유의 ‘인정투쟁’을 발휘한 소설.

한국소설을 오래 읽어온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나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고종석에게 한 번 발을 담갔다가 뺐다.

그의 외부자적 위치, 정치적 스탠스, 문학과 언어에 대한 사유 같은 것들을 한때 흥미롭게 지켜봤지만 결국은 버티지 못했다.

이 작가는 원래 문단과 좀 거리를 두면서 ‘절필선언’ 같은 것도 하긴 했지만, 최근의 침묵은 건강상의 이유로 보인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96983.html)

아무튼 다행히 어느 정도 회복에 이른 것 같고(트위터도 다시 시작하고), 그 소식을 들은 문동과 문사가 공교롭게도 동시에 단편을 청탁한 듯하다. 아니, 고종석이라면 스스로 써서 보냈을 수도 있으려나?

어쨌든 두 편의 소설이 동시에 여름호에 실렸고, 일단 문동에 실린 이 작품은 명백히 실패다.

작가 자신의 삶과 문학적 여정을 돌아보면서 그걸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으로 쓴 것까지는 그래, 이해하자.

왜 소설 속 작가의 성은 여성으로 바꾸었고, 굳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을 요상한 방식으로 드러내야 했을까.

자조적인 스탠스를 취하지만 그 기저에는 다분히 조롱하는 듯한 시선이 깔려 있고, 여성이 된 고종석의 입을 빌려 ‘내 소설에 일종의 페미니즘이라 할 만한 것을 감추고 있다고 평가하는 비평가들이 있다’고 얘기하는 부분은 역겹기까지 하다.

‘그래 여성은 역사적으로 줄곧 약한 성이었고 차별 받아왔지. 나도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의식은 늘 가져왔어. 내 소설 속 여성 인물들도 대체로 불행한데, 나는 새로운 사랑의 윤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했어. 앞으로도 내 소설이 더 페미니즘에 경도하기를 바라고, 여성 인물들이 더 강인하고 행복하기를 바라.’

고작 이 따위로 요약될 이야기를 왜 여성 작가의 입으로 하는지?

게다가 그게 한국어라는 모국어를 가졌지만 영어와 불어를 읽고 제3세계적 자의식을 갖는, 경제 분야 기자출신으로 합리적 리버럴리스트인, 문단에서는 아무런 영향력도, 독자도 없는 작가이지만 여전히 육필로 원고를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나’의 서사에 왜 들어가야 하나.

그러니까 이 중년-남성-작가는 역시나 여성, 여성주의가 그냥 위트 있게 자조적으로, 가지고 노는 소재 수준으로밖에, 그 정도로 쉬운 문제로밖에는 생각이 안되는 것이다.

거기서 기본적으로 아웃인데, 아직도 ‘나’만이 균형을 갖춘 사고를 하고 있다는 자의식과 인정투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밝힌 대로 이 소설은 그저 “웃음거리” 이상 아무것도 아닌 작품이고, 그렇게 보면 정말로 지면이 아깝다.

본인은 “다 이루었다”고 했으니 앞으로는 트위터에 쓰시길.

 

 

2. 김애란, 숲속 작은 집  ★★★☆

김애란 작가도 꽤 오랜만에 단편을 발표한 것 같다.

(산문집이 곧 출간된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052971)

어쩌면 소설집 <바깥은 여름> 이후 처음인 것도 같은데, 여전히 김애란스러워서 다소 아쉬웠다.

사실 이 표현은 좀 이상하다. 김애란스럽다는 게 아쉽다니?

예전 같으면 김애란스러워서 너무 좋았어야 하지 않나?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백수린, 최은영, 김금희, 박민정 같은 작가가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는데 확실히 이런 구도의 소설을 읽어내는 감각이 좀 바뀐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남아시아 부근으로 추정되는 휴양지로 휴가를 떠난 부부 ‘지호’와 ‘나’의 이야기이다.

에어비앤비로 한적하고도 여유로운 숙소를 구했고, 그곳에서 한 달 가량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청소와 정리를 도맡는 현지 원주민과 미묘한 갈등을 겪는 것이 줄거리이다.

조금씩 흐트러져 있는 집안의 물건들은 이들 부부가 ‘팁’을 놓아 두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지고, 그렇게 팁을 주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격차가 있는 남편과의 갈등, 자신의 도움을 기다리는 엄마, 하루하루 연명하는 ‘메이드’ 등의 인물들이 겹쳐진다.

그것은 ‘고맙다’는 인사말로 가시화되는데, 팁을 둘 때 현지어로 ‘고맙습니다’를 쓰는 장면, 엄마에게서 온 문자 말미에 붙은 ‘고마워 우리 딸’, 남편이 굳이 번역기까지 동원해 집 주인인 백인 남성에게 ‘메르시’라고 말하는 장면 등 여러 차례 각각의 층위에서 등장한다.

이 구도가 다소 작위적이고 우연적으로 느껴졌던 건 소설 마지막 장면 때문인 듯 한데, 김애란 소설에서 일종의 ‘코드’라고 할 만한 사건의 해결과 동시에 여운을 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예전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김애란 특유의 섬세한 포착과 삶의 어떤 순간을 단면적으로 날카롭게 제시하는 건 좋았는데, 의외로 문장은 평이해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3. 이장욱, 복화술사  ★★★★

실제로 복화술이 어느 정도로 발달되어 있고, 복화술사가 어떤 일들을 하는지 전혀 모르지만 이 소설을 읽고 굳이 찾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충분히 흡족했다.

역시 이장욱의 장기는 메타픽션적인 것이고, 생각해보면 복화술이란 소설가의 스킬이기도 한 것이다.

“내 의도와 관계없이 튀어나오는 그것, 스스로 발생하고 움직이는 그것, 그 목소리”가 바로 알아서 말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소설의 인물 아닌가.

늘 다른 목소리를 끄집어냈던 복화술사의 이야기를 인터뷰하는 소설가로 소설의 구도를 설정함으로써 이 작품은 소설을 ‘듣는다’는 감각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소설가야말로 ‘분화술’을 사용하는 사람이고, 여러 다른 목소리를 동시에 활용하는 복화술사일지 모르고, “세상의 다른 곳에서, 당신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불러오는 능력”이 소설가의 일일 테니까.

오랜만에 이렇게 딱 떨어지는 소설을 읽어서 좋았고, 최근 이장욱이 20대 인물들을 일종의 관찰자로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이 좀 흥미롭다.

 

 

4. 손보미, 밤이 지나면  ★★★★★

최근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완벽했다.

너무나 예리하고 깊은, 대단한 소설이다.

여러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현명한 여자가 강을 건널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 미친 여자는 이미 강 너머에 있다”는 어느 나라의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 나간 여자”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그녀를 외면하고 눈을 감아버리게 될 때까지”로 끝나는데, 내가 여성이 아니라서 이 소설을 ‘덜’ 느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열 살이었던 해의 여름에 외삼촌 부부에게 맡겨 졌던 ‘나’가 동네의 ‘정신 나간 여자’를 만나 ‘납치’될 뻔한 이야기 정도로 그냥 기록해두자.

단편치고는 꽤 분량이 있는 이 소설은 그 해 초겨울의 ‘밤’을 외삼촌의 장례식을 계기로 다시 돌아보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 서술의 거리마저 더없이 적절하다.

‘나’, ‘외숙모’, ‘정신 나간 여자(그녀)’ 등 각각의 여성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활력을 가지고 있고(‘영예은’ 같은 인물마저도), ‘외삼촌’, ‘외사촌’, ‘아빠’ 같은 남성 인물들은 대상으로서, 서사에서 최소한의 임무만 딱 담당한다.

이 수동적이고 도구적이며 대상화된 남성 인물의 형상화는 꽤 통쾌하기까지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여성 서사’의 한 성취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손보미가 그간 보여주었던 감각과 깊이, 기법 같은 것들은 공유하면서도 전작들과는 작품의 질감이 조금 달라서, 손보미 소설의 한 정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매 장면이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인상적이고 풍부하다.

‘그녀’의 ‘빨간색 티코’를 타고 사실은 납치가 아닌 ‘도피’를 감행하는 ‘나’의 그 밤은, 빗길에 미끄러진 차에서 피를 슥 닦고 빠져 나와 공동묘지가 보이는 산 중턱에 앉아 그 차가운 겨울밤의 하늘을 바라보며 엄마 아빠의 ‘교통사고’를 생각하는 그 밤은, ‘나’는 밤을 무서워하지 않기 위해 지구 반대편의 낮을 떠올리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너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그녀’와의 밤은, “앞으로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모든 ‘여성’들의 “예지몽”일지도 모른다.

이 철저하게 아름다운 소설에 ‘밤이 지나면’이라는 제목은 다소 평범한 게 아닌가 싶은 것이 유일한 아쉬움.

 

 

5. 이민진, RE:  ★★★☆

등단작 이후 네 번째 작품 정도 되나 싶은데, 소설의 톤은 비슷한데 소재가 늘 다른 것 같다.

공들인 묘사를 통한 공간감의 획득, 사건을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으려는 태도 같은 게 좀 특징적이랄까.

‘영우씨’로부터 아주 오래된 메일의 답장의 형태로 메일을 받은 ‘나(유완)’의 이야기인데, ‘나’가 메일을 보냈던 사람은 ‘해니’였고 그들에게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나’는 소설 창작 수업을 같이 듣던 ‘해니’에게서 ‘영우씨’를 소개받는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처음으로 말들을 쏟아내는 만족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가고, ‘나’는 ‘해니’와 ‘영우씨’가 연인 관계임을 서서히 확신하게 되고, 어느 날 ‘해니’에게 나는 이미 알고 있고, 너를 다 이해한다는 식의 ‘아웃팅’을 감행한다.

그 일로 그들은 멀어지고, 4년 전 ‘나’는 ‘해니’에게 그 일을 사과한다는 메일을 보냈었고, 지금 그 답장이 ‘영우씨’로부터 “해니가 죽었습니다”로 전달된 것이다.

이 이야기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지금 ‘나’가 같이 일하는 ‘규정씨’의 영화 내레이션을 돕는 장면인데, 사실 썩 효과적으로 읽히지는 않았다.

또 소설의 마지막에 제시되는 ‘나’의 재답신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좀 건조해서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사의 겹을 만들고, 시간적으로 배치를 조금 달리한 것이 이야기의 집중도를 떨어뜨린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다시 소설을 복기하고 천천히 발췌하면서 더듬는 지금, 이 소설의 여운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아서 나쁘게 읽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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