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9년 가을호

문학동네100호+특별부록_입체

 

문학동네가 100호를 맞이했다.

1994년 겨울호를 시작으로 25년 간 이 잡지, 출판사는 한국문학의 중심에 섰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또 여러 관점에서 평가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문학동네가 한국문학의 질적,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틀림없을 것 같다.

100호답게 별권으로 많은 문인들의 에세이를 실었다.

찬찬히 읽어볼 일이지만 짧은 글들이어서, 그리고 대체로는 문학에 대한 ‘애정 고백 ‘이어서 관심이 크게 가지는 않았다.

계간지를 들여다보면 얘깃거리가 꽤 있다.

우선 편집위원의 변화.

신형철 평론가가 빠지고 강지희, 김건형, 인아영 평론가가 합류했다.

머리말에도 나와 있지만 ‘페미니즘 리부트’에 대한 호응과 응전의 차원이라고 생각된다.

101호부터의 변화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지켜보기로 하고.

‘김승옥문학상’을 문학동네가 주관하기로 하고, 첫 수상자로 윤성희 작가를 선정했다.

김승옥문학상은 작가의 고향인 순천의 지원을 배경으로 한 것인데, 아마 한두 해 전부터 운영이 제대로 안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문인의 이름을 딴 지역 후원의 문학상은 의외로 적지 않은데, 대체로 그 운영이 관행적, 폐쇄적인 경우가 많다.

최소한의 공정성과 원칙, 상의 권위 등을 유지하면서도 ‘문학상’을 운영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던 순천시와 김승옥의 전집을 펴낸 문학동네가 협업을 결정한 모양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동네의 문학적 지향(그런 게 있다면)이 김승옥이나 박완서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젊은작가상이 등단 10년 미만이라는 다소 애매한 기점을 설정하고 있어서 중견 작가에 대한 나름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상의 신설 혹은 재개는 긍정적인 편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문학동네는 ‘문학동네 신인상(시, 단편소설, 평론)’, ‘문학동네 소설상(장편소설)’, ‘젊은작가상’, ‘김승옥문학상’으로 라인을 정리한 것인데, 이렇게 보면 ‘김승옥문학상’이라는 이름이 조금 이상하긴 하다.

그냥 젊은작가상을 확대해서, 유명무실해진 ‘이상문학상’을 대체하는 쪽으로 갔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젊은작가상의 취지와 브랜드를 포기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아무튼 ‘김승옥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들이 전부 여성 작가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신인상도 발표되었다.

가장 치열한 공모답게 시는 1,084명, 소설은 735명, 평론은 43명이 응모했다.

같은 시기에 창비, 중앙일보 등의 신인상 공모도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볼 때마다 놀라운 숫자다.

시 수상자인 한여진 시인의 시는 첫 눈에는 다소 평범해 보였는데 다시 읽어 보니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다면 좋은 시를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설은 아래에 감상을 쓰기로 하고, 평론은 으레 그렇듯 뽑지 못했다.

이로써 계간지의 신인 평론가는 창비가 유일해졌는데 좀 아쉽기는 하다.

그 외에도 읽어볼 글이 많다.

권여선 작가, 유계영 시인에 대한 글, ‘문학동네’ 편집위원의 ‘회고와 전망’, 김건형 평론가의 글 등을 대체로 공감하며 읽었다.

작품은 “100호 기념 젊은작가 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9명의 시인, 7명의 소설가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어떤 기준인지 잘 모르겠다.

소설 쪽의 경우 젊은작가상 다관왕인가 했지만 아닌 거 같고, 대상 수상자들인가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문학동네 픽’으로 지면을 꾸리진 않았을 거 같은데 아마도 짐작건대 반려, 펑크 등으로 뭐라 적시하기가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작품들이 다 좋았다.

시가 특히 그랬다.

실려 있는 모든 시가 다채롭게 좋았던 적은 잡지에서는 처음 있는 일 같다.

굳이 꼽자면 역시 백은선이고, 내가 알던 황유원도 다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실려 있는 여덟 편의 소설을 읽자.

 

 

1. 전하영, 영향  ★★★★

신인상 수상작이다.

일단 최근 읽었던 등단작들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고 해도 될 듯 하다.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여성 영화 감독 ‘미진’의 지지부진한 현재와 일상을 그리는 소설인데, 무척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최근 영화계 여성 감독의 약진을 생각해보면, 또 마치 한국영화가 여성 감독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독립영화 일부의 현상이고 상업영화는 여전히 남성 감독의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진’의 삶이 단순하게 다가오지만은 않는다.

어쩌면 심사평에서처럼, 이 소설이 ‘여성 예술가의 일상’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깊이를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패배하고, 예술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인물은 대체로 남성이었으니까.

그러니 자꾸 선이나 보라는 엄마, 딸이 당연히 교수가 될 줄 알았던 엄마를 생각하며 “미진의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전화번호를 들이밀며 매 순간 미진이 여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도록 만들었지만,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딸의 성별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쓸 때, 잠깐 멈추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유학 시절의 이야기, ‘톨 라테’ 같은 디테일, 아마도 대림동 정도로 추정되는 중국인 거리에 하염없이 카메라를 대고 있는 미진의 모습, ‘정화’나 ‘제이미’ 같은 인물도 좋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닌데, 이토록 복잡한 인물이 차이나 타운은 왜 이렇게 단순하게 바라보는지 의문이 든다는 것.

그 시선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뻔해서 그렇다.

소설의 도입부나 결말도 그랬다.

더 이상 팔 게 없다는 말 혹은 상황을 보여주기 위한 기능만 할 뿐, 도입부는 이 이야기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하며 결말은 다소 비약이 느껴진다.

결국 마지막 기대 혹은 희망 같았던 ‘제이미’를 만나지 못하게 된 그 순간에, ‘미진’은 오하이오의 하늘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둘러싼 억압과 굴레를 벗어나리라는 암시를 주는데 너무 간편한 선택이 아닐까.

다만 심사평으로 미루어보건대 같이 투고한 소설 역시 이 소설의 연작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하니 단지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기대는 있다.

 

 

 

2. 기준영, 사치와 고요  ★★★☆

최근 읽었던 소설 중 가장 ‘이상한’ 소설이다.

나는 기준영의 단편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그건 디테일하면서도 뭔가를 숨겨 놓았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두세 편의 작품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미주’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반쯤은 정신이 나간 사람’에게 갑자기 칼에 찔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여성이 경험하는 폭력과 불안에 대해 말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남자친구와의 이별, 엄마의 죽음, 직장(어린이집)을 그만두는 장면이 순식간에 이어지더니 지인의 소개로 어떤 집의 ‘보모’로 들어가게 되는데, 예상과는 너무도 다른 전개였다.

이후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미주’가 연락을 주고받는 엄마의 옛 친구 ‘세리 이모’는 물론이고 그가 맡게 된 아이 둘, ‘계은’과 ‘훈’까지.

‘미주’가 간 집은 그 외양이나 분위기도 그렇지만 아이들의 반응, 부인(할머니), 아이들의 부모 등도 심상치는 않다.

그건 단지 이 남매의 친엄마가 죽었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거의 연고가 없는 ‘미주’를 ‘훈이 어머님’은 왜 이렇게까지 신뢰하면서 보모로 들인 것일까,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계은과 훈의 친엄마의 ‘죽음’과 ‘미주’가 겪은 사건을 연결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보면 이 집의 다소 기괴한 분위기, 세리 이모의 메시지를 계은에게 읽게 하는 마지막 장면 등이 단지 ‘평화로운 애도’처럼만은 읽히지 않는다.

다시 들여다 봐도 여전히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하여, 정말 이상한 소설이다.

 

 

 

3. 김금희,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

김금희의 서사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읽었다.

2000년을 전후해 20대에 진입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김금희를 이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재현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시공간으로, 그 인물로 데려다 놓는 느낌이다.

일산의 라페스타 쇼핑몰의 원미우동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나’의 20대 초반의 기억을 돌아 다시 현재로 이르를 때의 그 능수능란함은 정말이지 타고 난 재능으로밖에는 설명을 못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방식의 이야기는 김금희가 너무도 잘 쓰는 영역이어서 어떤 플러스 알파를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수는 있겠다.

소설 속 몇몇 장면에서, 또 어떤 설정에서 갸우뚱 할 지점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옵세’라는 말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전율을 느끼면서 읽었다.

나도 잊고 있었던 2000년대 초반 대학의 기억, 풍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와 ‘장의사’와 ‘김조교’의 20대 초반 이야기는 이제 한 아이의 엄마이자 대학의 강사가 된 ‘나’의 현재로 돌아오는데, 나는 이 지점을 김금희의 변화로 읽었다.

그러니까 이른바 80년대생이 90년대나 2000년대를 회고하면서 그 시절을 다소 낭만화하는 측면이 없지 않고, 이것을 90년대생 이후의 세대의 빈곤과 무기력을 이해하는 알리바이로 작동시키는 문제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

나아가 2010년대생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아이’가 건네는 ‘안녕’이라는 말을 통해 그 시절의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 즉 각자의 시대를 특권화하지 않으면서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에 관하여 김금희는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계절의 <기괴의 탄생>도 어떤 측면에서는 그랬다고 생각되고.

2017년까지의 소설을 모은 <오직 한 사람의 차지>가 최근에 나오기는 했지만, 나는 그 이후의 김금희가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4.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  ★★★★

박민정이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이야기의 도입부를 읽은 느낌이다.

‘후암동 옛집’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천천히 펼쳐지는데 그간 이 작가가 지속해 왔던 고민들, 역사와 현실, 가족과 여성 같은 것들이 ‘공간’ 감각과 더불어 서사화 되려는 듯 보인다.

1982년의 후암동 집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나’의 아버지의 가계로부터 줄기를 뻗어 나간다.

“비정한 어머니에 홀아비인 큰형에, 그리고 어찌된 사정인지 홀몸으로 애를 배고 있던 여동생이 있었지만 아버지를 믿을 만한 남자라고 생각”했던 어머니의 첫 시댁 방문을 시작으로 고모의 딸인 ‘강수진’, 그리고 결국 입양을 가버린 두 자매 ‘강장희, 강장선’, 아들이라는 이유로 남겨졌고 보살피며 키워진 ‘강장훈’까지.

이 단편은 다시 한국을 찾은 야엘(장희)을 중심으로 이 가계의 기억을 다시 복원하는 이야기이지만, 여기에서 그칠 것 같지는 않다.

다분히 ‘한국적’인 어떤 상황들에 대해, 공간으로 형성되는 어떤 기억들에 대해, 그리고 버려진 여자들에 대해 박민정은 얘기해 볼 작정인 듯하다.

기대감은 충분하지만 이 작품 한 편의 완성도로 보자면 조금 아쉬운 측면이 있고, ‘나’가 보여주는 서울 토박이로서의 어떤 공간적 ‘무지’가 꼭 필요한 설정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연작 성격의 장편 분량의 이야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5. 백수린,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  ★★★☆

다소 평범하고 무난한 작품이 아닌가 싶은데, 이 소설이 작가와 어떤 ‘거리’를 설정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중학교에 입학한 여학생인 ‘나’가 겪게 되는 일상, 관계, 경험 등이 주 서사를 이루는데 인물이나 사건이 전형적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모범생인 ‘나’와 대비되는 ‘다미’의 경우 너무도 익숙한 ‘날라리’의 전형이며 이들이 맺는 관계나 사건도 그러하다.

즉 ‘나(유나)’, ‘선주’, ‘다미’ 이런 여성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읽히고, 또 현재의 ‘나’가 ‘다미’와의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이 다소 손쉬운, 또 단순한 윤리 감각의 획득처럼 보이는데, 이럴 때 이것이 일종의 ‘위선’을 폭로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정말로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들”의 세계로, “가볍고 경쾌한” “행복에 가깝게까지 들리던 목소리”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전체적으로는 공감되는 지점이나 문장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은 모범생이었던 ‘나’가 이제 서울 명동의 회사 차장이 되어서 “축 늘어진 개의 성기”를 보며 다른 세계를 살았던, 또 지금도 살고 있을 ‘다미’를 안온하게 회상하는 이야기로 읽히지 않나 싶다.

때때로 백수린의 소설은 안착한 사람들이 안전한 방식으로 안위를 걱정하는 윤리적 스탠스 이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조금 더 과감한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사족이지만 어쩔 수 없이 <벌새>의 은희와 이 작품의 ‘유나’를 비교해 보게 되는데, 다른 측면들은 다 제외하더라도 첫 입맞춤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유나’가 모종의 강박과 분위기에 의해 남자아이와 입을 갑자기 포개는 것은 ‘은희’가 남자친구(‘지완’이었나…?)와 작정하고 아파트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서 키스를 해보는 장면, 그리고 서툴게 혀를 집어 넣고 우물쭈물하다가 침을 뱉는 장면과 견주었을 때 확실히 좀 평범하게 읽히는 측면이 있다.

어쩌면 이 소설에 대한 아쉬움은 상당 부분 <벌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6. 강화길, 음복  ★★★★★

강화길이 <화이트 호스>를 통해 일종의 선언을 하고, <오물자의 출현>으로 그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면 이번 소설 <음복>은 확실히 이 작가의 하나의 성취이자 절정으로 느껴진다.

소설의 첫 문장은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마지막 문장은 “참…… 시시하지?”이다.

‘세나’는 ‘정우’와 결혼했고, 결혼 후 첫 제사에는 참석하자는 동의하에 시댁에 와 있다.

치매 증세가 있는 ‘할머니’, 이 집의 악역 같은 ‘고모’, 그리고 수식이 필요 없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그곳에 있다.

하지만 소설의 핵심은 그곳에 없는 사람들에 있다.

이 제사의 주인공인 ‘할아버지’, 베트남 참전 후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끔찍하게 괴롭힌 사람.

그리고 ‘정우’와 동갑이자 고모의 딸인 ‘정원’, 약대를 졸업하고 집안 행사에는 일절 참석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모르는, 아니 몰라도 되는 ‘정우’와 고모와 시어머니를 통해 이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는 ‘세나’가 함께 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채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너와 나로 인한 너. 무심코 생각하면 나를 닮은 모습으로 불쑥 떠오르는 너. 그래서 나를 겁나게 했던 너. 어떤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게 만들었던 너”에게 들려주는 ‘나’의 목소리임을 알게 되는데, 즉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딸’이 자라는 “드라마”, 그 “복”을 비는 하루로 이 제삿날은 변모하고 이윽고 그것은 하나도 시시하지 않은, 절박하고 간절한 ‘선택’이 된다.

소설의 모든 장면들이 인상적이지만 특히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줘”의 방식으로 가족 내 여성들이 공유하는 까다로운 ‘비밀’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 탁월하다고 느꼈다.

‘세나’만이 아니라 ‘고모’와 ‘시어머니’, 거기에 자신의 ‘엄마’의 이야기까기 엮어내는 방식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해서, 또 날카로워서 나는 박완서나 권여선의 소설에서 느꼈던 종류의 감탄을 강화길에게서 느꼈다.

너무도 일상적인 여성의 내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끔찍한 비밀과 고통을 폭로하는, 이 무시무시할 정도의 장악력과 그 디테일이 당대성을 획득할 때 이렇게 인상적인 단편이 만들어진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 당연히 베스트.

 

 

 

7. 김봉곤, 러브 라이프  ★★★★

에로스와 파토스로 들끓던 김봉곤이었는데, 이렇게 잔잔하게 좋은 소설도 쓰는구나 싶다.

‘인하’와의 부산 여행을 중심으로, 엄마와의 통화, ‘한재씨’로 흔들리는 ‘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말이지 그냥 ‘러브 라이프’이다.

‘인하’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나’의 어떤 면은 절대 채워주지 못하고, 그것은 ‘한재씨’의 등장으로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엄마의 말마따나 ‘사랑하는 친구’가 아닐까, 인하는.

미래를 꿈꾸는 그들의 대화는 단지 게이여서 공허한 게 아니라 함께 미래를 ‘설계’하기에 ‘인하’는 너무 순진해서 ‘나’는 ‘한재씨’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인하’의 순정(?)을 확인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김봉곤의 말맛과 꽁냥꽁냥은 여전하고, 딱히 흠을 잡을 데가 없는 소설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너무 잘 아는 김봉곤이어서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

의미는 충분히 알겠지만 제목이 다소 평범해 보이고, 도입부도 전체 이야기를 읽고나면 좀 붕 뜬다는 느낌이 있다.

 

 

 

8. 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  ★★★★

늘 같이 호명되고, 어쩔 수 없이 곁에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번 소설은 나란히 놓인 데다가 이야기가 비교될 지점이 많았다.

김봉곤과 마찬가지로 내가 아주 잘 알던 박상영의 소설이었다.

그러면서도 여러모로 전작과, 특히 <우럭 한 점, 우주의 맛>과 대조적인 지점이 있었고.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그들의 사정에 늘 영향을 받는 ‘나’의 모습은 박상영 소설의 한 전형인데, <우럭>이 ‘엄마’였다면 이 소설은 ‘아빠’가 그 대상이다.

소설은 사라진 두 남자, 아빠와 ‘원모’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약’을 하다가 강제추방을 당하게 된 ‘원모’와 오십억 빚에 도망다니는 ‘아빠’는 ‘나’로 하여금 굉장히 복잡한 마음을 유발하도록 만드는데, 결국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결말로 향한다.

아쉬운 것은 이 소설이 결국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집안을 망하게 하고,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좋은 사람, 혼자서만 그저 자유로운 남성의 한 전형이자 사실상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인물이 아들에 의해 이토록 이해받는 모습은 좀 납득하기 어렵다.

특히 <우럭>에서 엄마가 게이인 ‘나’를 ‘치료’하려들었고,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신의 육체조차 소모되는 인물인 것에 반해 ‘나’의 아빠는 젊은 시절의 ‘꿈’을 이해받고 게이 아들인 ‘나’를 또 이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여기에 ‘원모’에 대한 ‘나’의 동정에 가까운 애정까지 더해지면 아, 이것은 ‘남자’를 너무도 사랑하는 이야기구나 싶어진다.

소설은 어쨌든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와 같은 아득하고 희미한 지금의 삶을 그리는데 ‘아빠’에 대한 ‘나’의 공감은 확신에 가까워서 이 낙차가 다소 의아했다.

이 소설은 <대도시의 사랑법> 이후 아마도 첫 신작인 것 같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했어서 이번 작품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작가의 인터뷰에서 대구의 수성못 10대의 범죄 이야기(?)를 장편으로 기획하고 있다고 읽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박상영의 단편은 계속 이 ‘영’의 세계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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