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19년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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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을 읽었다.

시 지면에서 이문경 시인의 작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처음 보는 시인 같고, 비등단 투고작이 아닌가 싶은데 정말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읽는 타이트한 시랄까, 박력과 뚝심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었다.

여전히 경단편(?)이라고 할 수 있을 40매 내외의 짧은 소설이 다섯 편 실려 있다.

이제는 꽤 익숙해졌는데도 작품이 아쉽다고 느껴질 때 아직도 ‘길이’를 생각하게 된다.

 

1. 박선우, 느리게 추는 춤  ★★★☆

등단 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고 아마도 여섯 번째 정도 되는 소설일 것이다.

다소 희귀하다고 할 수 있을, 주로 여성 화자를 등장시키는 남성 작가인데 이번 소설처럼 약간 아쉬움 지점이 보이면 아무래도 남성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는 하다.

소설은 이제 막 이별을 경험한 ‘나’가 여러 이별 후유증을 겪으면서 ‘너’에게 건넬 마지막 한 마디를 찾는 이야기이다.

‘나’가 여성이고 ‘너’가 남성인 연인 관계였음은 (짧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 즈음에야 명확해지는데, 그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다소 평범한 이별 소설로 읽혔다.

헤어지는 순간을 묘사하는 부분, 망가진 일상들, 엄마와 갈등이 일어나는 에피소드, ‘너’와의 첫 만남의 순간 등 소설의 전개가 좀 진부한 면이 있고, 아마 이 소설의 결말에서 특히 호불호가 갈릴 듯한데, ‘너’에게 마지막으로 욕을 시원하게 해줄지, 이유를 묻는 질문을 던질지 고민하던 ‘나’가 결국 “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라는 깨달음에 다다르는 마지막 장면이 좀 많이 아쉽다.

이 분량 안에서는 ‘너’에 대한 ‘나’의 감정의 폭을 깊이 느끼기에는 좀 어려울 수 있다는 면이 있기는 해도 이 소설은 다소 신파나 K-멜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박선우 작가의 그간 작품들이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아마 곧 첫 소설집을 묶어내지 않을까 싶은데 같이 놓고 함께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다.

 

 

2. 서수진, 월컴 투 아메리카  ★★★☆

웹진 <비유>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의 작품.

분량에 걸맞은,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주한미군이었던 남자친구 ‘에디’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유미’가 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고초를 겪는 내용.

미국의 입국 심사 과정이나 인터뷰 장면 등의 디테일이나 리얼함을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조금 ‘극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단점이 ‘도식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지나치게 극적 구성, 구도에 몰두했다는 생각도 들고.

작품의 속도감이나 장면 전개 등은 좋았지만 ‘유미’나 ‘에디’에 이입하여 이해하기는 조금 난감했다.

‘유미’가 어떤 시선이나 편견을 극복하고 투쟁하겠다는 마음으로 ‘에디’를 만난 것도 그렇고, ‘에디’ 역시 ‘유미’를 일종의 ‘아시안 트로피’로 여기는 것도 그랬다.

판타지 소설을 써보겠다는 ‘에디’에게 ‘유미’는 그저 대상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고, 이 소설에서 ‘유미’는 마치 그런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그저 끌려다닐 뿐이고.

‘유미’의 상황과 달리 오히려 부부임을 증명해야 하는 아랍인 부부와의 대비도 도식적으로 읽혔는데, 그렇다면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공항 직원이 이제 나가도 좋다고 말하며 “웰컴 투 아메리카”를 외쳤을 때, ‘유미’가 그 자리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장면까지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유미’가 조금 ‘급전’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3. 손보미, 크리스마스의 추억  ★★★★

이 작가는 이 분량에도 이 정도로 풍성한 이야기를 뽑아내는구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바꿔 말하면 더 풍부하게 읽고 싶은데 짧아서 아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올해 베스트 중 하나일 <밤이 지나면>의 분위기와 톤, 인물이 그대로 이어진다.

물론 10살 여아인 것만 동일하고 시공간적 배경과 관계는 조금 다르긴 하다.

어쨌든 10살이었던 ‘나’의 특별한 경험들을 지금 시점의 ‘나’가 꼼꼼하게 돌아본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리고 짐작건대 또 기대하건대 이 10살 여아의 이야기들이 지속되고 모인다면 아주 멋진 세계가 탄생할 것 같다.

이제는 확신에 가득 차서 ‘추억’을 회고하는 ‘나’의 시선이 표면적으로는 이입을 방해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사를 풍성하게 만들고, 동시에 어쨌든 10살이 ‘나’의 눈에 보였던 풍경들은 여러 의심과 폭로를 조금씩 불러일으킨다.

성탄절 이브에 성당에 간 딸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 사람들은 네가 태어났을 때조차 아무런 관심도 없었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다시 ‘나’를 죽은 남편의 조부모 손에 맡겨야만 했던 편모 여성의 그 복잡한 마음과 그 해의 일들은 10살이었던 ‘나’가 엄마의 나이 정도가 되었을 때라야만 이해 가능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4. 장희원, 고요와 향연  ★★☆

소설의 도입부는 나쁘지 않았는데, 죽은 ‘아내’의 옛 제자였던 그 ‘청년’이 으레 그렇듯 어렵사리 연락이 되고, 그 집을 찾을 때 설마 했던 방식으로 이야기가 가고 말았다.

비올라를 전공한 아내가 젊었을 적 레슨을 하던 시절에 그 제자와 ‘사랑’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것의 진실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함께 연주한 음악을 통해, 그러니까 ‘향연’의 관계로 그 깊이를 증명하는 방식, 그리고 그걸 다시 남편인 ‘수암’의 고요와 대비시키는 방식이 너무 작위적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잠든 청년이 깨지 않도록 집을 나와 아내와의 해변 산책길을 걷던 ‘수암’이 “진공의 상태” 같은 고요함을 느끼고 아내의 모습을 보는데 이게 ‘수암’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안이한 결말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소설의 인물에게 관계를 부여하고 그 깊이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에 관해 조금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5. 조갑상, 원작과 각색  ★★☆

전반적으로 이 작가의 전작 <병산읍지 편찬약사>와 거의 흡사하다.

역사 다시 쓰기, 실화와 픽션에 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고, 또 결국은 소설의 목표가 이념이나 사상의 투쟁, 정치성에 있어서 이야기 자체의 흥미가 반감되는 측면도 있다.

다만 <조선사상범검거실화집>이라는 책은 너무나 흥미로웠다.

일제 공안당국이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후 그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만든 1936년의 책이라니, 당장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2 Responses

  1. sayu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댓글을 답니다.
    저도 손보미 작가님의 크리스마스의 추억 좋았어요. 분량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풍성하다는 말씀에 공감했어요.
    가을호 자음과 모음 (SF 비평의 서막)에 관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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