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t, 2019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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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나온 <Axt>를 읽었다.

2019년의 마지막 호여서인지, <Axt>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소설이 꽤 든든한 버팀목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했다.

‘메타’라는 키워드로 실린 리뷰 지면의 글도, 영화 <벌새>에 대한 이종산, 황인찬의 글도 좋았다.

한유주 작가의 인터뷰는 말할 것도 없고.

토니 모리슨에 대한 세 작가의 에세이도 집중해서 읽었다.

<빌러비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러고 보면 올해는 토니 모리슨이 세상을 떠난 해로 기억될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은 원래 실리던 3편 정도에서, “여성-서사, 고딕-스릴러”라는 기획으로 2편이 더 실려 있다.

불안을 형상화하는 여성-서사를 8편 정도 싣겠다는 계획인 것 같은데, 이런 테마, 장르적 제약이 얼마나 흥미로운 작품을 생산할지는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창비 겨울호에 실린 이승은의 소설이 이 주제에 아주 부합하는 작품인 듯하다)

대체로 이번에 실린 소설들은 아쉬운 편이었다.

 

1. 백가흠, 오아시스를 지나치면  ★★★

도입부가 신선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참선 혹은 고행 중인 승려의 모습은 흔한 것이 아니니까.

이야기가 진행되면 ‘일문’이라는 인물이 초점화자로 자리잡고, 그 옆에 ‘중각’, ‘현장’ 같은 승려도 함께 등장한다.

‘일문’이 신라 사람인 것이 밝혀지면서, 또 ‘혜초’를 찾기 위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이야기는 실체를 조금 입는데 문제는 그 순간부터 무척 ‘세속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일문’이라는 인물의 변화도 그렇지만, 서사 자체도 한 승려의 속화라는 결말로 달린다.

이 와중에 ‘아르파한’이라는 열여섯 소녀는 딱 예의 그 ‘뮤즈’ 클리셰로 기능할 뿐이다.

특히 ‘일문’이 자리를 비웠을 때 ‘중각’에게 ‘아르파한’은 모종의 추행 또는 폭력을 당한 듯도 한데, 너무도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뻔한 모티프여서 이야기의 질을 순식간에 떨어뜨린다.

(게다가 결국 ‘일문’은 ‘중각’을 살해한다.)

아무튼 그리하여 결국 모든 걸 버리고 혹은 완전히 새로워진 채로 다시금 길을 떠나는 ‘일문’의 모습은 숭고하지도, 신성하지도 않고 그저 ‘낭만적’일 뿐이어서 더욱 아쉬웠다.

 

 

2. 기준영, 들소  ★★★☆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또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이 다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디선가 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자신들의 둘째 딸 ‘이에스더’가 열여섯에 실종된 뒤 노부부로 늙어가던 내외가 ‘나(고푸름)’와 ‘엄마’에게 방 한 칸을 그냥 내어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약간의 치매 증세가 있지만 ‘나’는 주인 할머니와의 이런저런 기억을 쌓아나가고, 또 ‘길우’ 같은 친구를 만나 유년기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데, 역시나 오래가지 못한다.

노부부의 호의도 끝이 보이고, ‘길우’마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학예회 날,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작가는 여기에서 저만치서 달려오는 “들소”의 이미지를 등장시킨다.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보려는 쥐들이 등장하는 연극에서, ‘나무’와 ‘바람’의 역할이었던 ‘나’와 ‘길우’에게 무대로 등장하는 ‘들소’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엄마’가 그토록 강조하던, 당당하게 등을 편 사람, 쓰러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돌진하는 삶, 같기도 한데 잘은 모르겠다.

‘나’가 배역을 양보하겠다고 했을 때 ‘길우’와 나누는 대화, ‘길우’가 전해준 ‘행운석’ 같은 것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3. 도재경, 홈  ★★☆

이 소설 역시 상당히 낯익은 느낌.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며 계획적이고 친절한 상대방을 만나면서(특히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처지, 상황 혹은 ‘더 큰 어떤 것’들 때문에 그 간극이 점점 커져 일종의 파국을 맞이하는 이야기.

(당장 이번 <창비>에 실린 조해진의 소설만 봐도 그렇다.)

아무튼 ‘나’가 교제하고 있는 ‘영준 씨’와 실내사격장에 갔던 일로 소설은 시작하는데, 그 사격의 감각이 자신이 일하고 있는 게임회사의 게임 ‘레드 셀’과 겹치고, 자신의 아버지의 사연과도 겹쳐진다.

그것은 ‘베트남전쟁’인데, 조금 무리하게 이야기를 엮었다고 생각된다.

게임 유저의 상담을 받는 ‘나’가 ‘팜’이라는 인물로부터 전해듣는 이야기가 사실은(아니 환상이겠지만) 베트남 전쟁의 현장이고, 자신의 아버지 역시 월남전 파병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 또 그 아버지의 고향이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산골 마을’이라는 것은 학살과 살육의 트라우마를 너무도 직접적으로 강하게 환기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영준 씨’와 결혼을 앞둔 ‘나’에게 이토록 육박해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영준 씨’도 이라크 파병을 다녀왔다는 설정이 있는데, 그게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아 보이고.

지금 ‘베트남 전쟁’을 기억하는 일이, 또 전쟁과 학살이라는 끔찍한 일들을 되짚는 일이 당연히 무의미하지 않겠지만 이런 방식이라면 굳이 왜-지금인지 납득하기는 어렵다.

 

 

4. 최영건, 안과 완의 밤  ★★☆

‘여성-서사, 고딕-스릴러’라는 이름의 기획이라면 최영건의 <쥐> 같은 작품이 금방 떠오르고, 아무래도 큰 기대를 갖고 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이 아쉬웠던 것은 작가가 테마에 너무 갇혀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버려진 성(같은 건물), 오래전 “마을의 하나뿐인 유치원이자 미술관”이었던 공간으로 아마도 소녀 정도로 생각되는 ‘안’과 ‘완’이 ‘유령’을 만나려고 가는 모습은 이 소설의 모든 장점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설정 같다.

‘시간의 저편’이라는 문제, ‘유령’의 형상과 말들, ‘안이야’라고 부를 때의 그 중의성,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부정과 완성의 두 인물, 그리고 두 ‘여자.’

그런데 이것들 모두가 ‘유령’을 만나는 하룻밤의 모험과 감행 속에서는 제대로 의미를 부여받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안이한, 혹은 단순한 설정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아무래도 너무 주제를 의식한 탓일 거라 짐작해본다.

 

 

 

5. 지혜, 삼각 지붕 아래 여자  ★★★

주제를 의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앞선 소설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좀 답답했다.

일단 ‘매향 이모’, ‘칠영 아줌마’, ‘순지’, ‘고한자’ 같은 여성 인물들이 ‘나’의 유년기 기억 속에 등장하고, ‘나’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는, 정확히 말하면 ‘떠난 적이 없다’는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지칠 정도로 ‘묘사’가 너무 많다.

이 소설은 마치 ‘칠영동 매향이네’를 샅샅이 그려내기로 작정한 것 같다.

하지만 애써 다양한 어휘와 표현을 동원해 재현하는 일이 독자의 풍부한 ‘공간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쉴 새 없이, 현재와 과거를 계속 소환하면서 ‘칠영동’을 묘사하는 방식이 결국 ‘나’의 ‘귀환’을 더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판자촌에 살던 ‘한자’라는, 소위 ‘미친년’ 인물형의 역할과 영향이 사실 너무 뻔하고, 지금 이 집에 또 무언가가 있다는 설정도 주제를 너무 의식한 것 같다.

다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첫 장면에서처럼 반복되는 ‘칠영 아줌마’의 ‘인사’는 이 소설의 폭을 확 넓혀준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런 장면이 좀 더 많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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