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꼰대들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글을 쓴다.

며칠 전 김금희 작가의 이상문학상 관련 일에 김명인 평론가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봤다.

요즘은 워낙 작품을 써서 잡지사나 출판사에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시장의 반응에 울고웃는 시장순응주의가 만연한 ‘소작가시대’인지라 이런 작은 어깃장의 소식도 신선하게 들린다.

우리가 사는 근대세계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싸움을 거는 일이고 작가는 세상에 어깃장을 놓고 싸움을 거는 존재다. 그 싸움은 단지 작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작가란 작품으로도 작품 바깥으로도 늘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또 싸워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자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게 안 되니까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말이 떠돌게 된다. 근대문학이 끝났다고 하는 말은 싸움꾼 작가가 다 죽었다는 말인데 이를 두고 번연히 작가들이 있고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 하는 동문서답들이나 하고 있는 현실이다.

작가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글 속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30년 전쯤 워딩에 실소가 나왔다.

‘시장순응주의’, ‘소작가시대’, ‘근대문학의 끝’, ‘작가는 어깃장을 놓고 싸움을 거는 존재.’

참으로 고고한 원로의 고견이지만 내게는 ‘요즘 작가들은 싸우질 않아’ 소리로 들린다.

지금 작가들이 무슨 작품을 쓰고, 어떤 것과 대결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채로 일갈의 욕망은 도저하다.

이 세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투쟁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고 지금 세대의 문학은 투정으로 보인다는 것도, 그래 이해하자.

문제는 뭘 읽기는 읽고 일침을 날리느냐는 것이다.

2019년에 발표된 주요 제도권 문예지의 단편소설은 약 400여 편이고, 출간된 단행본은 약 160권쯤 된다.

도대체 얼마나 읽고 한국문학의 지형을 내려다보고 계시길래 “싸움꾼 작가가 다 죽었다는 말”을 하실 수가 있나.

 

신준봉 기자가 쓴 “순수문학 작가들이 인정하는 SF작가 김초엽”이라는 기사도 마찬가지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28778)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훌륭하다는 것과 ‘소설가가 뽑은 올해의 책’ 선정, ‘오늘의 작가상’ 수상 등은 별로 관련이 없다.

‘문학전문기자’가 한국문학을 거의 따라 읽지 못하고 호명되는 이름만 겨우 쫓아가니 이상한 방식으로 작품을 ‘인정’하게 되는 모양새다.

구병모, 김희선, 조남주, 백민석, 최정화 작가가 작년에 출간한 책을 읽었을까?

(문예지 단편까지는 기대도 안 한다)

그랬다면 “SF도 문학이다” 같은 말은 적어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분히 기자의 감성 독서 에세이에 가까운 글에 관해서 더 폄하하고 싶지는 않고.

 

<황해문화> 겨울호에 실린 글을 쭉 살피다가 오길영 평론가가 쓴 「합당한 수상작인가?―김세희 소설집 『가만한 나날』과 이소호 시집 『캣콜링』」이라는 제목을 봤다.

(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9283167)

안 그래도 문학상이 이슈인데 ‘합당한 수상작인가?’라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름 있는 문학상 수상작 두 권을 읽었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인 김세희 소설집 『가만한 나날』과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인 이소호 시집 『캣콜링』이다. 이번 글의 키워드는 문학상 수상작과 세태소설(世態小說), 세태시(世態詩)이다. 먼저 문학상에 대해. 한국문학공간에 문학상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많은 문학상의 수상자 선정에서 상의 고유한 성격이 거의 의미 없게 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신동엽’ 문학상이나 ‘김수영’ 문학상은 조금 다르게 보고 싶은 기대가 있다. 신동엽과 김수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결기와 저항의 방식을 모색한 시인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이번 수상작들이 신동엽과 김수영의 문학정신에 걸맞은 작품들인가? 결론을 당겨 말하면, 선뜻 그렇다고 하기는 힘들다. 왜 그런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글이 착목하는 지점이다. 둘째, 세태소설, 세태시의 문제. 나는 두 작품을 읽으며 문득 오래전 임화가 제기한 ‘세태소설론’이 떠올랐다. (405쪽)

도입부부터 아주 주옥같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과 함께 서서히 분노가 차오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학상 수상작이라니 내가 한 번 읽어 봤다’, 이 얼마나 전형적인가.

내가 바로 ‘문학’이고, 나의 넓고도 깊은 문학적 감식안을 통해 상을 받았다는 작품을 내 한 번 친히 보았다, 는 것인데.

왜 젊은 여성 작가의 책 2권을 골랐으며, 문학상은 신화가 된 남성 시인 2명의 이름일까.

너무도 투명해서 이후의 글을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요는 이거다.

김세희의 소설집은 “무력한 이 시대의 세태소설”이고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대개가 다루는 대상의 폭이 좁”으며 “대상의 폭이 좁은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조망하는 작가적 시야가 문제”라는 것.

이소호의 시집은 역시나 “일종의 ‘세태시'”인데 “직설법이 주는 힘이 사태의 표면만이 아니라 심층을 울리는지는 의문”이며 “언뜻 보기에 여러 페미니즘 쟁점을 도발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이 시집이 제기하는 페미니즘 쟁점들은 이미 알려진 것들에서 얼마나 더 깊이, 멀리 나아갔는”지, “이 시집에 새로운 페미니즘적 감각의 충격이 있는”지도 의문이고, “내 생각에 그 답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수상작들은 김수영과 신동엽의 이름에 걸맞은 작품들인가?”라고 이 글을 끝내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신동엽과 김수영을 신화로 삼을 수 있다고는 하자.

그런데 이 작품들이 ‘합당한 수상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간의 수상작 중 어떤 작품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고, 1938년에 쓰인 임화의 ‘세태소설론’ 고작 하나를 가져 와서 작품의 의미를 따지는 비평적 태만과 무능은 어쩌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비평가라면 이 작품들에 대해 다른 평론가들이 어떤 논의를 했는지, 어떤 “사태를 더 예각화하는 사유”를 발견했는지 DBPIA에 검색이라도 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

김세희와 이소호에 관해서라면 참고할 글이 적지 않은데, 그런 건 찾아볼 생각도 없이 상을 받았다니 작품을 읽고, 심사평을 읽고, 인상을 찌푸린 채 임화의 세태소설론만 펼치면 ‘합당한 수상작’ 운운할 수 있는 것인가?

거기에 ‘가오’가 떨어지게 눈치는 왜 보시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 작품들이 보여주는 20~30대 세대의 일상생활의 팍팍함을 다른 세대 독자인 중년의 남성 비평가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407쪽)

단편소설을 논하는 임화의 설명에 기대어 우리시대의 젊은 여성 시인의 시를 논하는 것이 무리로 보일 수 있다. (414쪽)

남성 비평가로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판단이지만 내 판단은 부정적이다. (418쪽)

 

한때는 문단의 권력에 거리를 둔 소장 비평가였던 분들이 이렇게 저열하고도 나이브한 방식으로 현장에 돌을 던질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꼰대’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다.

대학의 정교수 자리를 안락하게 차지하고 앉아서 ‘에헴’하며 한 마디씩 던지면 그걸 받아줄 페친들은 여전히 많은 것 같고, 유독 한국문학에 관해서라면 읽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세대나 젠더를 문제삼아 공박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만약 당신이 여전히 한국문학에 뜨거운 관심을 갖고 있다면 제발 좀 읽기나 하고 쓰시고, 읽지 못했다면 당연하게도 가만히 계시는 게 맞다는 말이다.

 

 

 

 

 

 

8 Responses

  1. 김명인

    “꼰대평론가” 김명인입니다. 누구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누가 일려줘서 님의 블로그를 접하게 됐습니다. 제 페북글이 꼰대질로 읽힐 소지가 크다는 걸 인정합니다. 제 비평이나 글쓰기의 문체 탓이기도 하고 또 분명히 연공서열을 앞세운 훈계조의 느낌도 없지 읺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요즘 직품을 안 읽고 요즘 작가들이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모른다는 말씀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전에 단정짓고 매도부터 하는 일종의 ‘확증편향’의 결과물로 읽히는군요.
    저는 지난 수년간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찾아 읽어왔고 지난 학기 대학원 수업에서는 아마도 님 또래들인 20-30대 대학원생들과 윤이향, 김애란, 김금희, 황정은, 조해진, 장강명, 최은영, 박민정, 박상영, 김봉곤, 김세희, 정세랑, 천희란, 조남주 등의 최근작들을 정독하는 수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젠더 퀴어 등 다양한 제재들 속에서 그들이 어떤 새로운 싸움을 어떤 새로운 언어와 감각으로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지 매우 흥미롭게 관찰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고무받고 많은 기대를 품게 된 바 있습니다. 충분치는 않더라도 조만간 이 독서의 결과를 글로 발표할 생각이기도 합니다.
    김금희. 최은영, 이기호 등 세 작가의 이번 행동은 어쩌면 그러한 기대감을 더 확인시켜준 증빙 같은 것이었고 제 페북글은 그러한 확인의 기쁨을 표현한 격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작가들이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싸움을 걸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작가들에게 가장 어려운 싸움인 출판지본과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더 주목할만한 것으로 제 관심을 끌었던 겁니다.
    제 페북글이 혹시나 ‘요즘 작가들은 안 싸운다’는 저같은 꼰대비평가의 확증편향의 결과로 읽혔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님 역시 ‘저 꼰대들은 요즘 작가 직품들을 읽지도 읺고 제멋대로 꼰대질한다’는 확증편향을 가진 것은 아닌가 싶어 섭섭하군요.
    서로가 편견보다는 이해가 더 필요한 듯합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의 개인 공간에 불쑥 찾아와 이렇게 긴 글을 남기는 게 혹 불쾌하시다면 이 글을 삭제하셔도 좋습니다.

  2. 김명인

    노태훈 선생께
    노태훈 선생께
    빠른 댓글을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새로운 만남이고, 흔치 않은 세대간의 대화라 생각하니 어느 정도 설레는 마음도 생기는군요. 우리 대학원생들(여기에는 아마 노선생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양재훈, 선우은실 같은 노선생 세대의 소장비평가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들과 수업 안팎에서 대화를 적지 않게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지도교수-제자 관계가 그들에게 보다 솔직한 자기생각의 표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에 늘 아쉽고 목마른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렇게 대놓고 ‘꼰대’라는 소리를 하는 젊은 목소리를 들으니 시원하기도 하고, 또 무람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우선 제 페북글에 대한 간단한 변명으로 운을 떼겠습니다. 그 글은 사실 그날 아침 포털기사를 우연히 발견하고 매우 짧은 시간에 한달음에 써서 올린 매우 거친 글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 포스팅이 여러 매체에 다발적으로 인용되어 저도 조금 당황했지요. 하지만 빨리 쓴 거친 글이므로 요즘에는 많이 바뀌어가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문학과 문학장에 대한 저의 어떤 오랜 선입견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것은 사실이고, 노선생께서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읽어내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시장순응주의, 소작가시대, 싸움꾼 작가가 다 죽었다 등의 표현들이 매우 거슬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선생은 “30년 전 쯤 워딩”이며 “‘요즘 작가들은 싸우질 않아’ 소리로 들린다”고, 또 “지금 작가들이 무슨 작품을 쓰고 어떤 것과 대결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채로 일갈의 욕망은 도저하다”, “뭘 읽기는 읽고 일침을 날리느냐”고 역시 일갈을 날리셨지요. (그나마 제가 전혀 요즘 작가들을 모르고 읽지도 않는다는 데에 대해서는 제 댓글을 통해 어느 정도 편견을 거둔 것으로 알겠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30년 전 쯤은 아니지만 아마도 20년 전부터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져왔고 비슷한 말들을 해 왔습니다. (제가 이라는 2000년대 초반의 한국문학장의 모습을 스케치한 글을 쓴 게 2002년이고, 라는 주류문단 비평엔솔로지에 신경숙에 대한 비평들의 문제들을 지적하며 참여한 것이 2003년이니까요) 저는 이른바 80년대 급진비평가군의 일원으로서 90년대 초중반에 80년대적인 혁명적 열기의 급속한 냉각과 더불어 한국문학이 역시 급속하게 탈정치화, 왜소화되어가는 것과 또한 그와 반비례하여 급속하게 상업화해 가는 것에 대해 깊은 환멸에 빠져들었고, 그 환멸 이후 문학장에서 점점 이탈하면서 위와 같은 오랜 선입견을 내면화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포스팅에도 그 흔적이 불쑥 개입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포스팅의 심층맥락은 ‘요즘 작가들이 싸우지 않는다’는 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싸워줘서 반갑다’라는 데에 있고, 그 전제 아래 작가란 작품 내외에서 싸우는 존재라는 ‘낡아빠진’ 워딩은 그러한 반가움의 다른 표현이자 김금희를 비롯해서 용기를 낸 몇 작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뜻으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의지와 다르게 표현이 거칠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뒤이어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 종언론을 다시 불러와서 ‘싸움꾼 작가 다 죽었다’는 말을 한 것은 요즘 작가들을 두고 비난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당시에 주류 메이저 상업문학지 편집진들의 대부분의 반응이었던 “한국문학이 어디가 어때서?” 하는 반응에 대한 오랜 분노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그 포스팅에서 문학사상사만이 아니라 메이저출판사의 출판관련 관행에 대해서도 점검이 필요하다는 말과 연관해서 이번 ‘사태’도 그저 문학사상사만의 돌출행동으로 치부하며 한국문학장 전체의 상업주의와 관련된 내적 위기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한 ‘메이저’들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표출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저는 요즘 작가들이 작품 내적으로도, 또 외적으로도 확실히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3~4년 여 동안 저는 대학원 수업을 통해 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한국소설들을 계속 읽어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시기 동안의 한국소설은 90년대 중반까지는 여전히 80년대적 자장 속에서 후일담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었고,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10여 년 동안은 매우 뚜렷하게 개인화, 쇄말화된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세계에 깊이 침잠했으며, 2010년대부터는 확실히 이러한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치열한 싸움의 세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는 평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기저에는 2008년의 용산참사와 2014년의 세월호 사건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80년대적 의미의 ‘좌경적 투쟁’과는 전혀 질이 다른 투쟁, 즉 신자유주의체제 이래 삶의 전면적 식민화에 대한 성찰을 동반한 투쟁으로서 이제는 보수화되고 하나의 기득권적 클리셰가 되어 버린 이른바 계급적 정치투쟁 등과는 다른 보다 급진적인 차원의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투쟁의 사상적이고 생활적인, 혹은 신체적인 근거에는 페미니즘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2010년대의 우리 문학은 신자유주의가 만든 황폐한 정글을 토양으로, 페미니즘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차별과 위계구조 전체에 대한 강력한 반문(反問)을 문화사상적 토양으로 삼아 새롭게 급진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며 저는 이러한 가능성에 힘입어 이제는 거의 손을 놓아버린 상태에 가깝던 제 비평을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대학원생들과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읽었다는 것은 요즘 젊은 것들이 무슨 생각 하는지 한번 알아볼까 하는 한가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노선생이 말한 “제가 생각하는 지금 한국문학의 현장을 읽는다”는 의미와 아마도 그리 멀지는 않은 시도였을 겁니다. 저는 정확히는 아닐지 모르나 “한국문학의 근본적인 변화”를 어느 정도는 감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 대한 노선생의 선입견이나 오해가 어느 정도 풀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노선생이 매우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바 현재 한국문학장이 ‘시장순응주의’가 만연하는 ‘소작가시대’라는 말은 ‘남성-중견 작가’들에게만 해당된다는 진술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습니다. 현재의 한국문학장이 아비투스나 이데올로기나 전 영역에서 작가 비평가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남성-중견작가군’의 헤게모니 아래 있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과연 90년대는 물론 2000년대 이후, 혹은 최근까지 이른바 ‘비남성-비중견’ 작가군들이 이런 헤게모니의 자장에 어떤 의미있는 균열을 내 왔는지는 좀 의문입니다. 물론 최근 문단내 미투운동에 문단의 많은 ‘마이너’들이 참여했고 그것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켜 오고 있음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은 회의적입니다. 문학이 과거와 같은 ‘상업적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일종의 마이너문화가 되고 파이가 점점 작아지는 현실에서 작가건 비평가건 많은 문학지망생들과 이른바 신인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왜소화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런데 어떤 작가들이 시장순응주의를 거스르고 ‘소작가’의 위상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있는지 저는, 아마도 과문하여 잘 알지 못합니다. 90년대 이래 한국 문학의 순응주의와 비평의 왜소화가 문학장의 상업주의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는 대개 젊은 신인들에게 더 집중적으로 강제되고 구현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중견 작가군들은 순응주의와 소작가주의를 강제하는 입장에, 비남성-비중견 작가군들은 그에 동원되어 종사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 현실이고, 이것은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제는 어느새 중견이 되어버린 어느 비평가의 ‘칭찬하는 비평’이라는 말이야말로 이런 한국문학장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증거라고 봅니다. 노선생이 “한국문학의 제도와 시스템에 순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시기 전에 이 시스템에 복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누구인지 꼬집어달라”고 주문했는데 저는 비록 이를 ‘남성-중견작가군’으로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그 사실을 비판하고 폭로하고 경고했으며, 그 때문에 지금까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나서주면 안 될까요?
    물론 저도 부분적으로는 분명히 그 ‘남성-중견작가군’의 견고한 지배구조에 일조해 온 것이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왜 ‘부분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였는가 하면 저는 정치적 급진주의가 지배적이던 80년대에는 비교적 주류적 입장에 있었지만 90년대 이후 이른바 ‘탈정치화’의 시대에는 점차 비주류로 기울었고, 2000년대 초반 주례사비평 논쟁 이후엔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주류의 자리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신경숙 표절 사건과 고은-최영미 사건 이후로는 이제 완전히 탈문단화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른 맥락에서, 말하자면 문학이념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남성-중견작가군’에 속하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겠습니다. 근대문학 자체가 ‘남성-근대’의 창안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근대 자본주의세계와 영합하든 맞서 싸우든 그것은 여전히 ‘남성-근대’의 영역이고, 한때 맑시스트 비평가를 자부했던 저야말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게다가 노선생이 여러 차례 말했듯 대학교수로서 안온하게 자리를 보존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가만히 있어도 청탁이 오고, 여러 심사자리에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멀게 되어버린 사람인 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노선생은 저에게 또 이런 주문을 했습니다. “여성이나 퀴어의 문제를 여전히 노동과 계급, 혁명의 하위 범주 정도로만 여기고 ‘성 정치’로 폄하하려는 시도에 앞장 서 반기를 들어 달라”고. 또 “지금 세대의 고민을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고 사소한 일상성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다고 판단하는 동년배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달라”고 말입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저는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퀴어 경향이야말로 한국문학, 나아가 근대문학 전체에 대한 의미있는 전복의 시작으로 보인다는 입장이며 2000년대 이후 작가들의 일상성의 내용에 중대한 질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당연히 또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그 주문을 실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는 요즘 주류 매체 어느 곳에서 과연 “여성이나 퀴어의 문제를 여전히 노동과 계급, 혁명의 하위 범주 정도로만 여기고 ‘성 정치’로 폄하하려는” 글이나마 게재해 줄까 의심스럽네요. 자본의 속성상 여성이나 퀴어를 말하는 문학이 장사가 될 것 같은 상황에서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지도 모를 그런 글을 과연 실어줄까요? 혹시 제가 만일 지금 준비중인 젊은 페미니즘 문학의 의의를 진단하는 글을 써서 보낸다면 메이저 잡지 쪽에서 어쩌면 ‘분위기를 타고’ 제 기고를 받아줄지는 모르겠군요,
    노선생의 주문이 아니더라도 저는 나름의 방식으로 내 동년배 꼰대들의 문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해 나가고 있고, 또 그럴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제 신체와 언어에 어쩔 수 없이 각인되어 있는 ‘꼰대성’과도 계속 싸워 나가겠습니다. 반면에 비록 이번처럼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필요하다면 젊은 세대들에 대한 비판과 고언 역시 아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부족하고 또 그런 문제제기들을 받아 실어주지도 않으며 또 어떻게 게재된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떤 반향도 없는 이 한국사회의 이상한 침묵의 문화가 문제이긴 하지만요.
    노선생의 격한 반응을 접하면서 저는 확실히 지금 2~30대 젊은 세대들에게 우리 같은 5~60대, 특히 진보연하는 자들에게 대한 매우 강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누구 탓을 하겠습니까. 신자유주의와 공모하여 이른바 민주화를 또 하나의 기득권으로 흡수하여 한국사회의 하위 8~90%와 다음 세대를 경제적 문화적으로 착취한 죄가 엄연하니 할말이 없지요. 그런 분노와 거부감이 아마도 우리 젊은 세대들을 움직이는 강한 추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프레임만으로 윗세대에 대한 적대성에 갇혀있는 것도 언제나 좋은 일만은 아니겠지요. 제가 “요즘 젊은 것들” 어쩌구하지 않으려 노력하듯, 노선생 세대도 저 “꼰대들”하고 확증편향을 되풀이하지 않을 때 한국사회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건 순수한 궁금증인데,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은 저와 같은 세대에게는 익숙한 일종의 ‘재단비평’ 혹은 ‘입법비평’ 과 같은 계몽적이거나 나쁘게는 훈계적으로 들리는 비평 문체, 혹은 방법에 대해서 매우 거부감을 가진 것 같더군요. 저는 비평의 핵심은 언제나 비(批)와 평(評), 즉 해석보다는 비판과 평가라고 배워오고 그렇게 써 온 사람인데 요즘 비평은 그런 면에서 매우 온건하고 심약해 보입니다. 저는 그것을 비판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현재의 한국문학장의 관습이 빚은 폐해라고 보는데 노선생의 글을 보니 한편으로는 그런 계몽적 화법과 진술이 지닌 반대화성에 대한 어떤 성찰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노선생의 생각이 궁금하군요.

    글을 쓰다보니 길어졌습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많이 남아있는데 말이죠. 아무튼 덕분에 이런 생각들을 다시 곱씹어보고 정리하여 전해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혹시 괜찮다면 이 댓글을 조금 달리 정리해서 제 페북을 통해서나 다른 매체를 통해 따로 공개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럴 때엔 노선생의 신상에 관해서는 어떤 정보도 유출됨이 없이 또 어떤 불이익도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만.
    앞으로도 다른 기회에라도 계속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김명인

    긴 답신 감사합니다.
    더 나누어야 할 말들은 많지만 어쨌든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저로선 이제서야 작품들을 겨우 따라잡아 읽은 정도로서 동시대 비평들은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그 점은 부끄럽군요. 조금 더 읽고 더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동시대 평단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말씀 하신 대로 60대 꼰대세대로서 이른바 기성세대가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려하지 않고, 또는 못하고 여전히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작태들이 계속되지 못하도록 제 나름의 가능한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쪼록 건강 건필하십시오.

  4. 라스트오브어스재밌어요.

    뭐야….5252
    멋지잖아 이 분들
    2들의 ’52’를 가슴에 받들겠다구!

    작성자님의 독자층의 변화를 근거로 대중영합적이라며 오늘날의 문단을 비판하는 의식을 정밀타격하는 주장은 공감됐어요. 김명인님의 진심이 담겼지만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흐름을 뒤쫓아가는 의식도 공감됐습니다. 솔직히, 한국문학이 글로벌시대에서 글로벌 컨텐츠들을 공급받는 시대에서 어떤 경쟁력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있다!’라고 답하기엔 무리가 있는게 현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대중영합주의에 편승하지 않고 고고히 세상과 맞서는 태도를 유지해서가 아니라, 그냥 현시대를 쫓아가지 못하고 뒤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읽혀집니다.

    여기 이 멋진 분들처럼 멋들어진 말들과 ‘아비투스’처럼 고급진 언어로 표현을 못하지만! 쨌든 ‘장권력 갖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해먹다가 이꼴났다! 그런데, 그 자들이 중년-남자들이다!’ 가 한줄 요약인 것 같슴돠! 그런데 사실이게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닌것 같긴 한데 문단 특성상 갈라파고스적인 성향이 다른 분야들에 비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결과를 도출해낸 요인이라 느껴져요. 상업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장르소설은 계속 시장에서 시대와 숨을 쉬면서 발전해왔지만 문단은 시대와 함께 숨을 쉴 수 있는 접촉점이 적었던 것 같아요. 못쓴다고 망하나요. 시대의 요구나, 시대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고 밥그릇을 잃나요. 문단내에서의 문단내에 의한, 문단을 위한 평가로 지금껏 살아오지 않았나요. 그렇다고 중년-남자들이 장권력을 갖고 그렇게 주도했기 때문에! 중년 남자들은 다 나뻐!!! 같은 주장은 납득이 안됩니다. 김명인님이 중년-남가 아닌 자들은 그럼 문단에 기여한게 뭐가 있냐?라는 반론으로 붕괴됐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생물학적인 것을 기준으로 오늘날의 문단에 대한 실태의 책임을 묻는 것은 납득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정말, 지금까지의 동일한 조건에서 중년-남자가 아닌 생물학적 베이스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장권력을 갖었다면 바뀌었을까?….요?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문단이 현 시대와 싸우기는 커녕 현 시대조차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는것 같은데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다. 그럴 환경을 구축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이런 실태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너무 구조주의적라고요? 사회현상은 사회구조에서 나옵니다. 그 분야에서 그런 성향이 나오는 것은 그 분야가 그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어쨌든 다행이네요. 더 이상 과거와 달리 소설이 매체파워로 힘을 얻지 못하는 상황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이 시대에서 글로벌 콘텐츠들속에서 유의미해야한다는 것을 제발 깨닫지 못하고, 자기 수준들이 시대를 쫓아가고 있지 못함을 자각하지 않아서 각성하지 않길 빕니다. 제발 이대로 손안에 작은 권력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거리다가 전부 사라지길. 제발, 계속해서 장르소설을 대중영합주의라며 비판하길. 소비지상주의 사회에 대한 개탄과 레디컬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구분못하고 20대 여성작가면 우선, 상부터 주길. 문학만이 시대와 싸울 수 있다는 고고한 생각을 끝까지 지켜주고, 그 경건성의 위대함에 찬미를 받치며 노을을 바라보시길. 제발 콘솔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을 절대 하지 말고, 웹소설과 웹툰, 영화, 드라마를 보지 마시길. 제발 나는 문단이 이대로 입도뻥끗 못할 정도로 자멸하여. 시대와 함께가는 새로운 부대에 새로운 술이 담길 수 있길.

    1. 이름이 없는 한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 ㅋㅋㅋㅋㅋㅋㅋ 작가 지망생으로서 이 글에 관심을 가져서 댓글을 신중하게 읽어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이 왜 이렇게 웃길까요 ㅋㅋㅋㅋㅋ 그만큼 문학이 너무 고고한 예술로 인식 되는 거겠죠 ㅋㅋㅋㅋㅋㅋㅋ 슬프고도 웃기네요. 전 예술에 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파격적이든 실험적이든 형식의 미를 갖추었든 예술다운 그 ‘무엇’이 있다면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든, 형식의 파괴로 새로운 생각을 도출하든, 완전히 새로운 걸 들고 나와서 세상을 바꾼다든가요. 하지만 그런 예술일수록 대중과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죠. 대중들이 문학을 즐기면 좋겠지만 문학이 점점 어려운 걸로 인식 되어가고 있어서 그게 아쉬워요. 문학은 절대 어려운 게 아닌 건데 말이죠. 사람 사는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엄연한 인간의 창작물인데 말이죠. 그렇지만 그걸 어렵게 인식하게 만드는 데에 우리나라의 교육(좋은 대학 들어가려면 독후감은 하나 두 개씩은 기본으로 썼어야 했고), 몇몇 작가들의 엘리트주의, 문학의 대중과의 멀어짐 등이 포함된 것 같아요. 무조건 문학을 읽으라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런 점들 덕분에 문학이 더 대중과 멀어지지 않았나 싶어요. 비록 전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 문학이 더 대중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면 더 대중한테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자신만의 벽을 세우지 말고 더욱 진솔하게 다가가고 고귀한 품격은 이제 내려놓을 때가 되었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시대인데 그걸 버리는 것 같아요. 댓글들을 보고 나서 저의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솔직하고 건설적인 피드백 바라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스트오브어스님 제가 웃음을 터뜨리게 한 공로로 당신한테 글로나마 다이아몬드 조개를 드립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