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2019년 겨울호

 

문사 겨울호를 읽었다.

사실 읽은 지는 좀, 아니 꽤 됐는데 해가 바뀌는 동안 쓸데없이 바빴다.

하이픈 특집은 이른바 중견 작가 재조명인데, 21세기를 전후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최근 2-3년 사이에도 단행본을 펴낸 작가를 대상으로 작가론과 에세이를 실었다.

물론 빠진 작가가 꽤 있지만 이 작가들의 이력을 일별하면서 현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의미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된다.

본책에 실린 양윤의 평론가의 SF 비평, 조효원 평론가의 ‘문학의 미래’에 관한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시에서는 유독 장시가 많았는데, 김근, 양안다, 조시현 시인의 작품이 좋았다.

소설은 다섯 편이 실려 있다.

 

 

1. 김엄지, 벽 배 배꼽  ★★★

한동안 작품 활동이 없다가 최근에 조금씩 재개하는 듯하다.

(<예지> 시리즈는 8 정도까지 나온 것 같고.)

김엄지 작가의 스타일이야 잘 알려져 있고, 이번 소설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인상은 없다.

벽을 대여한다는 남자를 만나는 설정이 핵심이자 ‘벽’이라는 모티프가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벽 배 배꼽 순서대로, 춥다고 생각했다”는 마지막 문장에 다다라서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와 모텔에 같이 갔던 일, ‘여자’에게 계속 연락을 하며 기다리는 일, 술을 마시고 국밥을 먹으며 방황하며 마주하는 풍경들 등이 ‘나’가 경험하는 거개의 일인데 그 일련의 과정, 또 내면에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여러 풍경들이 쓸쓸하고도 기묘한 방식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이 이 이야기와 어떻게 조우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지에 지배된 사람은 미쳐 살기 십상”이라는 ‘여자’의 말이 어느 정도 힌트가 되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밋밋하다.

 

 

2. 김혜진, 3구역, 1구역  ★★★

이제 김혜진이 “나는 교회 앞 골목에서 너를 처음 봤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하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예상이 된다.

이른바 ‘너’ 시리즈는 대여섯 편 이상을 쓴 것 같고, 레즈비언 여성의 삶과 재개발(부동산) 문제 등을 포함한 계급의 격차를 엮어내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장편 <9번의 일>도 그렇지만 사실 김혜진 작가에게 노동과 계급이라는 문제는 초창기부터 핵심이었다.

<딸에 대하여>의 김혜진이 아니라 <중앙역>과 <어비>의 김혜진을 아는 독자라면 오히려 익숙한 이야기들일 것 같다.

문장웹진에 발표한 <이남동 터미널>이 부동산 투기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고(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45111) 엔솔로지 <광장>에 수록한 작품이 거주 공간의 변화로 인한 커플의 갈등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번 작품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광장>의 작품은 당연히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로 읽히는데, 김신식 평론가는 해설에서 ‘남자’와 ‘여자’라고,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미스 리딩을 했다.)

아무튼 이 소설은 본격적인 레즈 커플의 갈등을 다루지는 않는다.

동네의 길고양이를 돌보다가 우연히 만난 ‘너’에게 조금씩 호감을 갖게 되는 ‘나’의 이야기이고, ‘너’를 알아가면서 서로가 얼마나 다른 ‘계급’과 ‘구역’에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이다.

다소 도식적인 배치이고, 또 최근 김혜진 작품에서 반복되는 구도이다 보니 그다지 흥미롭지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나’가 보이는 변화, 즉 ‘너’를 조금씩 혐오하게 되고 ‘너’에 대해 점점 실망하면서 거리를 두려 하지만 속절없이 끌리는 이 마음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에피소드로 로맨스적 긴장을 느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만 이 ‘너’ 시리즈를 엮어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 때 좀 더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될 수 있도록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3. 정영수, 두 사람의 세계  ★★★

로맨스 이야기를 했으니까, 사실 정영수는 지금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고 읽게 되는 이성애 로맨스 작가다.

게다가 제목이 ‘두 사람의 세계’라니, <우리들>, <내일의 연인들>, <기적의 시대> 같은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70년대에 여공이었던 ‘이영선’과 공구 상가에서 일하는 ‘하남영’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현재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아들 ‘나’에 의해 재구성되는, 또 이토록 뻔한 이야기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뻔하다’는 말은 사실 이 소설이 의식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자들의 인생을 망치는 ‘유해한 남자'”를 만나 어쨌든 “빠르게 정상 가족의 모습을 갖춰”가며 말년에 다다르는 그 불행과 질곡의 한국적 서사들.

거기에는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과 가정 주부로 매몰되는 아내와 예기치 않게 생기는 아이가 있으며, “더는 같이 못 살겠다”가 반복되는 아주 익숙한 패턴이다.

이 뻔한 이야기를 ‘나’의 시점으로, 또 이들의 이혼과 결별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그러나 사실은 방관하는 것에 가까운) ‘나’의 역할을 보여줄 때 조금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나’의 톤이랄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목소리가 분명히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궁금한 것은 ‘영선’과 ‘남영’이 아니라 ‘나’와 ‘지수’, 이 “두 사람의 세계”이다.

서로의 가족의 형태와 행태가 이토록 다를 때, 이 둘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며 살고 있을까, 혹은 이 ‘두 사람의 세계’에서 ‘나’는 도대체 뭔가, 하는 질문들.

결국 이혼을 위해 법원을 찾아가지 않은 엄마를 두고 “이제야 그들의 인생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는 것을, 이제 그 두 사람의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비로소 그들이 직접 선택한 서로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문장으로는 대답이 부족해 보인다.

 

 

4. 서이제, 사운드 클라우드  ★★★

연이어 발표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형식주의자임을 알게 됐다.

등단작이 영화의 신 넘버를 활용했었던 것 같고, 최근에 스도쿠 숫자를 서사소로 쓰는 경우도 봤었는데 이 소설 역시 음악의 형태, 기기 같은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당연히 ‘SoundCloud’라는 플랫폼을 생각해도 좋고.

이런 형식적 시도는 결국 그게 얼마나 소설의 이야기와 호응하느냐가 핵심인데, 그 지점에서 늘 조금 아쉽다.

마치 시디나 카세트테이프를 듣던 시절처럼 일종의 ‘루저’ 감성에 젖어 있는 ‘나’와 ‘수철’이 등장하는데 의도한 것이겠지만 확실히 올드하다.

박민규나 김중혁, 김홍이나 임국영 같은 작가의 스타일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도 있고.

이 혼종과 혼합이 음악을 듣는 여러 방식, 음악이(정확히는 사운드가) 묶이는 방식과 연결되어 흥미롭게 읽히는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꽤 산만하고.

결국 ‘에어팟’의 시대에 ‘레코드 가게’와 ‘미도리’가 웬 말인가, 하는 것이 나의 감상인데 그 정도 재미 이상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각주를 사용하는 방식도 좀 의아한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 의도한 바가 있다고는 생각된다.

그런데 이 ‘가장된 올드함’의 매력이 그렇게 크지가 않다.

 

 

5. 장희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할 때  ★★★★

데뷔한 지 딱 1년이 된 작가의 작품.

등단작인 <폐차>와 <우리의 환대>, <고요와 향연>, <외출> 등 전작들의 여러 모티프와 분위기가 잘 조합된 소설 같다.

시골에서 ‘아무도 없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그(여정의 아버지)’가 ‘나’와 ‘재희’를 초대했고, 그 초대에 응했던 하루의 이야기이다.

친구인 ‘여정’이 몇 년 전 사고로 죽게 되었다는 것이 곧 드러나면서 ‘그’의 유폐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밝혀진다.

소설은 이들의 만남과 남겨진 사람들의 쓸쓸함을 묘사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비가 내리는 농가의 풍경, 적막하고 황량한 마음들, 각자 어떤 것이 허물어져 버리고 희미해진 채로 견디고 있는 모습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여정’의 죽음을 흙 속에 파묻혀 잠든 듯 누워 있었던 ‘깨끗한’ 상태로 복원해내면서 지금 이들이 마주하는 풍경들, 즉 살처분 되는 돼지나 으깨지는 참외나 곪아터진 자두 같은 것들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혹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을 태우는 ‘그’의 모습 같은 것.

누군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은 결코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묻혀서 썩거나 태워서 날려버린다고 해도 흔적은 반드시 남고 남은 사람들은 그걸 감당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그 당연한 사실을 아주 공들여 그려내고 있고, 하얀 점 하나가 하늘에 나풀거릴 때 그게 폭설의 시작이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혹은 그 하얀 점이 “저 멀리서 무언가 타고 있다는 작은 흔적”일 수도 있겠다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고 있어서 여운도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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