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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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101호를 읽었다.

몇 년 전 1세대 편집위원들이 물러나는 쇄신이 있었지만 101호부터 시작되는 변화가 더 큰 것 같다.

김건형, 인아영 등 젊은평론가의 합류와 디자인, 체제의 변화 등도 중요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신형철 평론가가 전면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이 세대의 담론들, 즉 신형철의 ‘윤리’와 김홍중의 ‘진정성’ 같은 걸 문제 삼으며 출발한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나로서는 여러 가지 복잡하면서도 뭔가 개운치만은 않은 생각들이 들지만 앞으로 문동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지켜보면 될 일이다.

특집 자체가 <페미니즘과 퀴어, 문학의 새로운 광장>이기도 하고, 새롭게 편집위원으로 합류한 두 평론가가 쓴 글이 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각자 전개해 나갔던 기존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오히려 아카이빙에 가까웠고), 이제는 조금 각론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은교 평론가의 은희경론이었다.

은희경에 대한 이전의 글들을 싹 지워내도 좋을 만큼, 아예 은희경이라는 작가를 새롭게 읽어내도 좋을 만큼 좋은 글이었다.

덕분에 <빛의 과거>에 대한 개인적인 회의도 조금 걷어낼 수 있었다.

배삼식 작가, 박민정 작가, 허윤 평론가가 함께 한 대담도 좋았다.

<1945>를 읽지 않은 상태여서 큰 관심이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본’이라는 문제와 겹쳐지면서 흥미롭게 따라 읽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파친코>의 첫 문장처럼 이런 이야기는 좀 더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박민정 작가가 일본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에, 아주 산뜻하게 놀랐다.)

인아영, 강동호, 김건형, 박혜진, 정소연 등 5명의 참석자가 ‘독자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나눈 대담은 다소 아쉬웠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독자’는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 사람들인데, 그게 단순히 SNS나 블로그에 리뷰를 남기는 영향력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듯하다.

그 독자가 가진 ‘스피커’가 얼마나 큰 지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반응’을 보이는 리뷰어로서의 독자가 아니라 독서 경험을 통해 다시 무언가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 아닐까.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실제 독자들의 모임이나 낭독회 등 각종 문학행사의 성황, <글리프>, <센티멘탈> 같은 소위 ‘덕질’ 잡지, 팟캐스트나 유튜브의 활기 같은 것 말이다.

나는 한국문학의 독자가 최근 ‘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하고, 당연히 그 ‘팬’들은 가만히 컨텐츠를 향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대담에서는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독자’에 관한 진전된 논의가 별로 없어서 좀 맥이 빠졌다.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은 강희영의 <최단경로>가 수상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언제쯤 손에 잡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이 심사에는 또 하성란 작가의 이름이 보이는데, 나로서는 정말 이 무감각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이제는 그냥 포기한다.

한강 작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새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작별>이라는 단편이 떠오르고, 이 소설에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던 당시의 ‘한강’이 ‘직접’ 등장한다면 아주 아껴서 충분히 읽어야 할 작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봉곤 작가가 쓴 일기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재미있게 읽었고.

이제야 비로소 좀 소설을 봐야 할 텐데, 무려 8편이나 실려 있다.

청탁 당시에는 아직 단행본을 출간하지 않았던 신인 작가에게 신작을 받은 지면이다.

이렇게 모아 보니 확실히 자기 색깔을 가진 작가가 좀 도드라져 보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1. 김남숙, 이상한 소설  ★★★★☆

이 작가에 대한 외면은 좀 심각하다.

물론 취향에 문제이기도 하겠거니와 초창기의 작품들은 나 역시 여러 비슷한 계열의 작가를 떠올리기만 했던 정도였는데 최근 발표한 <제수>와 <염소와 나> 같은 작품은 무심히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이 작품은 자모 2017년 여름호에 짧은 소설로 발표했었던 <여름의 무게>를 개고한 것으로 보인다.

치과에서 치기공사도 간호조무사도 아닌 정말 보조 인력으로만 근무하는 ‘나’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정도의 설정만 유지하고, 꽤 많은 이야기를 붙였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종수’ 같은 인물, ‘나’와 ‘종수’와의 관계 역시 김남숙 소설의 전형이다.

나는 이 소설의 핵심을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뚱뚱해졌다”라는 문장에서 찾으려고 한다.

왜 ‘종수’는 ‘나’를 “채, 책임감”이라고 말을 더듬으며 “내가 마치 무서운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만지면 지독한 병이라도 옮는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일까.

왜 ‘원장’은 그토록 개인적인 시간을 ‘나’와 가지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만 변태처럼 주절거릴까.

왜 ‘나’는 “토니라는 이름을 가진 치과 원장이 같이 일하는 간호조무사인 나와 대형 틀니를 딱딱거리면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단순하게 심한 과체중을 앓고 있는 ‘나’의 결핍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좋겠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이 소설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너무도 많다.

병원의 직원들이 다 모여 “땀을 뻘뻘 흘려가며 내장탕을 먹고 있”는 점심시간의 풍경이라든가, 멀리서 ‘종수’의 주유소를 바라보며 구경하는 ‘나’의 모습 같은 것들은 꽤 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이야말로 정말로 ‘이상한 소설’이어서 결말이 다다르면 어처구니없게도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평온한 안심을 설명할 길이 없다.

 

 

2. 김유담, 멀고도 가벼운  ★★★

‘엄마’의 오촌지간이었던 ‘보배 이모’와의 기억을 더듬는 장면은 좋았다.

다만 ‘억척스러운’ 삶을 살았던 ‘엄마’나 ‘이모’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지금의 ‘나’와 견주는 서사가 좀 도식적이고 식상했다.

‘나’의 서울 중산층 남자친구 ‘은호’가 보이는 지방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다소 작위적으로 형상화된 듯 하고, ‘나’ 역시 ‘이모’와 ‘보배’의 현재를 확인하는 결말 부분이 너무 우연적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모’가 뉴질랜드로 가 “능숙한 솜씨로 트랙터를 몰려 너른 들판을 누비고 있었다”는 장면은 어설픈 미련이나 흔적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서 꽤 후련했다.

 

 

3. 김지연, 그런 나약한 말들  ★★★★

이 작가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일들을,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어 이제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아주 날선 지점을 포착해낸다.

퇴사 후 고향으로 돌아올 무렵 ‘선생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정은’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선생님’은 ‘정은’과 같지만은 않았다는 것 역시 동시에 드러낸다.

이 간극을 보란듯이 알려주는 것은 친구 ‘혜수’이고 다소 박하다 싶은 ‘혜수’의 태도는 이들의 사연을 통해 해명된다.

이 과정이 너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또 그 강약조절이 능숙해서 ‘선생님’과 ‘정은’의 다소 애매한 관계마저도 흥미롭게 읽히게 만든다.

‘혜수’와 ‘정은’이 나누는 대화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퀴어적’으로 이 소설을 읽을 때 훨씬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족이지만 이 작가는 ‘선생님’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4. 김홍, z활불러버s  ★★★☆

재밌게 읽었다.

유사종교, 유사의학에 대해 ‘정소려’, ‘이미라’, 박선생’ 등 흥미로운 인물들을 통해 ‘썰을 푸는’ 능청스러움이 좋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재밌게 가지고 노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늘 김홍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지만 박민규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은 어쩌면 시효가 다한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과 함께.

시위 현장의 노랫소리에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각주에 달고 천연덕스럽게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를 슬쩍 넣은 것, “정소려가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한국형 활불 시범사업 우선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설정, <그것이 알고 싶다>나 영화 <사바하>를 아무렇지 않게 갖다 쓰는 부분 등은 좋은 첨가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족이지만 이 작가는 힙한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 같다.)

 

 

5. 이미상, 그친구  ★★★☆

이야기의 톤이나 인물 설정 등은 지난 해 젊은작가상을 받았던 <하긴>과 흡사하다.

짐작건대 이 작가는 90년대 정도에 대학의 마지막 운동권 무리였던 사람들의 ‘지금’에 관심이 큰 것 같다.

고집스러운 자기 신념에 지적 환멸과 사상적 존경이 공존하고, 우상과 쓰레기가 한 데 모여 인정투쟁을 벌이는 그 와중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부모가 되고, 기성세대가 되는.

“운동권 남자들은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니까. 아내를 그친구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니까. 동지의 대체어로서의 그친구. 그렇게 부르는 한 자신은 아직 젊고, 아직 투사니까.”

그리하여 “추문 끝에 살아남는 건 남자들”이라는 사실까지.

하지만 결국 ‘규’와 ‘지경’의 선택에 설득되지는 못했다.

아마 설득이 아니라 그 반대의, 즉 여전한 환멸과 조소가 그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이야기가 ‘대체 왜 그러고 사니’ 이상으로 읽히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유니크’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6.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

이 작품으로 올해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읽으면서 낯익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지수’와 ‘해수’ 두 자매의 관계나 갈등, ‘지수’가 소모임에 나가면서 가지게 되는 고민들과 ‘희진 언니’와의 이야기들은 최근 자주 강조되는 여성 연대의 지난함을 서사화하고 있다.

익숙한 톤에, 분위기에, 인물들, 갈등의 양상 등 겹쳐지는 작품, 작가가 꽤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이 어쨌든 ‘임신중절’ 문제에 관해, 또 그것을 둘러싼 ‘생명’과 ‘핏줄’이라는 피할 수 없는 논의들에 관해 본격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만약 강화길의 <음복>이 없었다면(젊은작가상 대상을 받기도 했지만), 이 작품이 말을 거는 ‘당신’의 존재가, 그리고 “당신이 없는 그곳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도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분명 굳건할 것임을”이라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무척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같이 읽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

그토록 첨예하고 날이 선 논의들 속에서도 결국 그냥 행복하고 싶다는 마음 역시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세계가 어떤 식으로 바뀌든 “당신이 이해하는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이 소설의 메시지가 일견 단순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복잡한 고민들을 통과해 지금-여기에 도달한 인물-당사자라면 그것이 비록 ‘납작해’ 보이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소설은 결국 낙태죄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도 생각한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쓰이지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현실을 통해 소설도 한 발짝 나아간다.

 

 

7. 장류진, 펀펀 페스티벌  ★★★

이 작가는 이제 작정하고 ‘디테일’에 올인하기로 했나 싶을 정도로 세목이 도드라진다.

대기업 합숙 면접의 풍경을 그리는 장면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찬휘’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기술이 도저히 ‘더’ 할 수는 없을 정도로 느껴졌다.

잠깐의 멈춤도 없이 한달음에 달려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되고.

그러나 약간 올드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장류진 소설에서 올드함이라니, 이런 말을 쓰는 나조차 당황스럽지만, 단순히 이 합숙 면접의 풍경이 5년 전이라는 데서 오는 시차가 아니라 어떤 감각의 거리가 소설에서 느껴졌다.

그러니까 아주 거칠게 말하면 5년 전에 써 놓은 ‘펀펀 페스티벌’의 합숙 면접 풍경에 올 연말 ‘이찬휘’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앞뒤에 끼워 넣은 듯한 느낌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제 서른을 앞둔 ‘나’가 ‘이찬휘’가 초대한 송년회를 빠져 나와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아이스크림 할인매장”과 “코인노래방”에 각각 오백원씩을 쓰면서 마지막 날을 보내는 모습이 너무 디테일에 매몰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이찬휘’의 어떤 격차에 관해, 그 양가적인 감정들이 또 무척 K스럽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이지만 오래 남을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더군다나 장류진의 작품이라면 이제는 기대치가 좀 높아진 것도 있다.

 

 

8. 조우리,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  ★★★☆

장류진의 작품 뒤에 운전 연수를 받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니 우연치고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류진의 <연수>(역시나 젊은작가상을 받은)와는 말 그대로 도로연수를 받는다는 설정만 공유할 뿐 상황이나 분위기가 꽤 다르다.

도입부가 흥미로웠다.

갑자기 ‘마라탕’을 끓이는 ‘엄마’의 모습과 그 계기가 된 ‘금자씨’를 언급할 때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 궁금했다.

운전을 절대 양보하지 않고 동승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연인 ‘상미’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나(윤주)’는, 인력사무소의 차를 얻어탈 때의 불쾌함 때문에 ‘엄마(명숙)’과 ‘금자’는 운전을 배우려고 한다.

소설의 제목이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이고, 결말이 “혼자서만 애쓰면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번갈아 핸들을 잡는 게 아닐까”로 가고 있으니 일단은 여성이자 퀴어로서의 연대와 확장에 관해 말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백발의 남자”인 운전연수 강사를 인력사무소 ‘최실장’과 비슷한 유형의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이었다.

‘최실장’의 태도는 ‘명숙’과 ‘금자’에게 어떤 계기로 작동한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지만 운전연수 강사의 경우 차라리 그 반대의 인물로 설정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 깔끔하게 복장을 갖추고 깍듯이 인사를 했던 강사가 결국 “이런 시발 진짜”를 내뱉고야 마는 전형적인 무례한 중년 남성으로 그려질 때 오히려 이 소설이 겨냥하고자 했던 지점이 다소 도식적으로 읽혀서 여러 매력이 좀 반감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다시 읽어 봐야겠지만 일단은 ‘상미’와 ‘나’의 관계를 ‘엄마’는 같이 사는 친한 친구 정도로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 긴장감도 좀 더 활용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4 Responses

      1. 서윤호

        괄호표시를 했는데 제목이 지워졌네요… 저는 베개와 영향력을 언급했습니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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