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20년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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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 2020년 1호를 읽었다.

디자인이 굉장히 화사해졌고, 판형도 좀 달라졌다.

예전의 약간은 부담스럽던 ‘길이’가 줄어 일반적인(?) 문예지 사이즈(신국판보다는 조금 큰?)가 됐다.

실려 있는 글들도 대체로 좋았다.

생태, 기후, 환경 등에 대한 여러 필자의 글, 현장의 목소리들 같은 건 <문학3>이이서 이렇게 모아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동물권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고민들이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이라영 님의 글을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시 지면도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성보현 님은 투고로 실린 듯 한데 시도 좋았지만 소설을 쓴다면 훨씬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소설은 여느 때처럼 40매 내외의 단편 네 작품이 실려 있는데 공교롭게도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1. 기준영, 유미  ★★★

상점 ‘유미’에 관한 소박한 단편.

‘유미’는 가게 이름이기도 하지만 여기 사는 “암컷 누렁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장인 ‘도신’이 운영하는 가게를 자주 들르는 ‘가영’이 하루 봐 주기로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기준영의 단편에서 기대하게 되는 이상한 종류의 긴장감이 없어서 아쉬웠다.

무해하고 선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 각자의 상처나 사연을 터치하지 않은 채로 관계를 맺는 모습이 썩 매력적이지가 않았다.

‘사려 깊은 따스함’이랄까, 소설 전반에 그러한 정서가 깔려 있는데 모든 인물들이 이를 잘 수행하고 있어서 ‘더’ 읽어낼 여지가 별로 없기도 하다.

인물의 내면은 물론이고 ‘아이’가 남긴 메모, ‘남자’의 시계를 찾는 과정 등이 ‘말해주기’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간편하게 전개시키고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분량이 적어서 오히려 더 설명적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아마 올해 세 번째 소설집이 나오지 않을까.

 

 

2. 김숨, 깃털  ★★★

일곱 명의 여자가 화실에서 드로잉을 하면서, 발화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서두는 흥미로웠다.

김숨다운 출발이다 싶기도 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도입부가 떠오르기도 했고.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신은 ‘깃털’을 그리고 싶다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를 지켜보며 마음 쓰는 ‘나’, 또 ‘나’와 함께 살게된 이혼한 ‘언니’.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이 인물들은 서로 독백하듯 대화를 나누고 ‘깃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모호한 개연성과 문학주의적 구성이 다소 과잉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깃털’에 대한 기억이나 중심 소재로서의 의미 등을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아 보이고, 그 ‘여자’가 여러개의 주저흔이 있는 인물이며 갑자기 사라져버린다는 설정이 관습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최근작에서 김숨이 보여주는 서사 전략들, 여성들의 말, 여자들의 증언 같은 것을 어떻게 ‘받아쓸’ 것인가에 관한 고민이 여전히 보이는데, 볼륨이 좀 있을 때 훨씬 풍부하게 읽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3. 이민진, 풀에 빠진 사람들  ★★★☆

되게 독특한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데뷔작인 <후일담>과 <장식과 무게>, <RE:>까지 작품들의 결이 꽤 달랐는데, 이번 소설도 그렇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관계를 깊이 사유하면서 플롯상의 특이점을 마련한다는 정도?

이 작품의 이야기는 단순한 편이면서도 복잡한 고민을 하게 한다.

대학 축제 때 갑자기 자신을 노란색 대형 풀장으로 밀어버린 여자애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얘기, 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래 기억하는 ‘나’가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여전히 그 ‘이야기’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

즉 ‘사랑’에 대한 오래된 환상이랄까,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또 낭만적인 어떤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고 바로 그 이유로 ‘나’가 이제는 이름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노란색 간이 풀장(pool)이자 충만감(full), 끌어당기는 힘(pull), 어리석음(fool)” 같은 방식으로 끌고 나갈 작정이었다면 좀 더 과감하게 써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차라리 시공간적 배경을 좀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레퍼런스로서의 소설이라면 정말로 너무나 많은 텍스트가 쌓여 있어서 이 정도 임팩트로는 인상을 남기기 어렵다는 생각도 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이 소설은 마치 알랭 드 보통이 지배했던 이천년대의 ‘사랑’ 서사 같기도 하고.

다만 ‘이야기 속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4. 정용준, 두부  ★★★★

정용준스러운 소설이랄까.

‘개’와 ‘엄마’, 그리고 죽음과 고요가 함께 있는 소설이다.

이제 그만 살기로 작정한 엄마와 여행을 떠난 아들의 이야기, 였던 <사라지는 것들>의 후속 같기도 했다.

반려견 ‘두부’와 산책을 나갔던 엄마가 갑자기 죽었으니까.

아무튼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실종되었던, 또 엄마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든 목격했을 ‘두부’를 다시 찾게 된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부’는 ‘승희’라는 이름으로 어떤 남자들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고, 그들은 순순히 ‘두부’를 돌려주지만 ‘이모’와 이모의 딸 ‘윤서’는 우리 ‘두부’가 아니라고, 다시 돌려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쨌든 ‘두부’는 ‘두부’이고, ‘엄마’의 죽음을 확인해야 할 가족이므로 이들은 엄마의 납골당으로 향한다.

그 입구에서 ‘두부’는 끝내 들어가지 않고 ‘나’는 결국 ‘두부’를 ‘승희’로 돌려준다.

그 사이 ‘늙은 남자’는 죽었고.

이 과정이 아주 군더더기없이 그리고 적당한 속도와 여백으로 진행되어서 걸릴 것 없이 읽혔다.

무엇보다 ‘승희’를 데리고 있던 두 남자의 관계를 열어둔 것이 좋았다.

한 ‘남자’와 그 ‘남자를 꼭 닮은 늙은 남자’는 부자(父子)일 수도, 형제일 수도, 연인일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연인으로 읽기로 했다.

그리고 손주가 돌아온 줄 알았다는 그 ‘승희’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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