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0년 봄호

창작과비평187호_표지_입체

 

창비 봄호를 읽었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대부분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그 대안에 관한 것이어서 동떨어져 읽히지 않았다.

다만 지난 2개월 정도 사이에 세계는 너무나 심각하게 ‘전환’되어서 이 글들의 진단이나 예측, 모색과 사유 같은 것들이 급격하게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는 다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어쩌면 코로나 이후라는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시 지면에서는 신해욱, 안미옥의 시가 당연하게도 좋았고 이다희의 시가 눈에 띄었다.

봄호에는 늘 대산대학문학상의 수상작이 지면에 실리는데, 올해는 독특하게도 희곡을 제외한 시, 소설, 평론, 동화 등 4개 부문의 수상자가 모두 서울예대 문창과 재학생이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고, 결과를 받아본 당사자 및 관계자들은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역설적으로 심사가 공정했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무튼 대산대학문학상은 상금과 더불어 ‘해외문학기행’을 제공하는데, 사실상 MT가 아니었을까 싶긴 하다.

(파리로 떠나 아틱 라히미를 만나고 온 자세한 이야기는 <대산문화> 봄호에 실려 있다)

이기호 작가의 장편 <싸이먼 그레이>는 연재를 마쳤는데, 말미에 “1부 끝”이라고 되어 있어서 적지 않은 부분이 추가되어 단행본으로 만들어질 듯 하다.

단편은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하여 총 5편이 실려 있다.

 

 

1. 박사랑, 서울의 바깥  ★★★☆

장편 <우주를 담아줘> 이후 첫 단편인 듯 한데, 다소 아쉬웠다.

‘나’가 ‘T팰리스’로 과외 시범강의를 위해 들어서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제목이 ‘서울의 바깥’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취업, 면접, 공무원 시험, 인서울, 쇼핑, 직구, 지하철, 등등.

계급과 지역의 격차가 얼마나 아득한지, 조금 안정적인 삶이 되어보겠다고 아등바등대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공정과 정의를 가장한 차별이 얼마나 적나라한지 등에 관해서는 좀 더 날카로운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다.

지하철 한 번 타보지 않아서 시에 등장한 사당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스무살짜리 타워팰리스의 과외 학생과 그 아이를 강박적으로 챙기는 ‘어머님’, 그리고 그 계급에서 한참 먼 곳에 자리한 ‘나’를 대비시키는 정도로는 기시감을 지우기가 어려워 보인다.

인물들의 계급에 따른 속물성이나 구차함을 드러내는 방식이 상당히 낯익었지만 후반부에 나름의 전복적인 시선이나 매력적인 장면이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결말도 좀 심심했고.

첫 소설집에서도 그런 측면이 좀 있었지만 워낙에 이 작가가 진성 국문빠(?)여서 문학 지문에 관한 과외가 이루어지는 장면의 디테일은 인상적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작가 본인의 과외 경험도 상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당 작품에 관한 정확하고도 깔끔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좀 더 활용했더라면(본격 과외소설 같은) 어땠을까 싶다.

 

 

2. 은희경,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

역시나 장편 <빛의 과거> 이후 첫 단편인 것 같다.

은희경의 작품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읽었고, 장편은 늘 아쉬움이 있었지만 단편만큼은 정말이지 완벽에 가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단점이 크게 느껴졌다.

일단은 두 여성 인물의 관계, 즉 30대 직장인인 ‘승아’와 ‘민영’이 일주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인데 최근 얼마나 많은 소설에서 여성들 간의 관계를 다루었나 생각하면 너무도 익숙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이 둘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예전’과도 다르고, 서로의 ‘사회’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이 충돌을 그려내는 작품이 정말 얼마나 무수히 많았던가.

거기에 직장을 그만둘 작정으로 충동적으로 친구가 살고 있는 뉴욕행을 결정하고 그곳에서 ‘실생활’을 목격하는 종류의 이야기라면 두 인물이 겪을 일들은 사실상 뻔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희경은 그 뻔한 이야기를 말 그대로 ‘하드캐리’하는 능력을 보여주는데, 문제는 세대적으로 이 작가가 다소 나이브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감할 수 있고, 적확한 묘사가 이루어지는 부분도 적지 않지만 대체로 이 세대의 인물들을 그려내는 방식이 스테레오타입에 가깝다.

인스타그램과 스타벅스가 아니라면 이들을 그려낼 수 없는 것일까.

1세계의 ‘후진성'(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은 서양 특유의 관계에 대한 이질적인 감각 같은 것을 부각시키는 작위적인 문장들도 꽤 여러 번 반복된다.

두 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병치되다가 겹쳐지는 방식도 썩 효율적이지는 않아 보였고.

어쨌든 소설의 핵심은 마지막 장면에서 나누는 대화, 그 중에서도 “그럴 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소설 속에서 ‘민영’이 ‘엄마’와 함께 우연히 명품 브랜드의 옷 가게를 들어가 옷을 입어보고, 감탄하고, 결국은 그 옷을 사지 않은 채로 가게를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은 정말이지 소설의 교과서 같은 묘사였다.

 

 

3. 이장욱, 유명한 정희  ★★★★☆

소설가로서의 이장욱의 특기는 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고, ‘하루오’, ‘정귀보’, ‘변희봉’ 같은 이름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소설 역시 ‘정희’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제일 유명한 정희”, ‘박정희’로부터 시작해 내 친구 ‘곽정희’와 원래 이름이 ‘정희’였던 ‘나’에 관한 이야기.

유신시대의 ‘묵념’, ‘서거’ 같은 풍경을 지나 ‘사관학교’를 거쳐 ‘교회’와 ‘신경정신과’를 지나 ‘광화문’의 ‘태극기’ 행렬까지 이르는 동안 ‘나’는 ‘정희’를 그때그때 조우한다.

어쩌면 ‘나’가 만나왔던, 혹은 ‘정희’의 사촌이자 조카인 친구를 통해 들어왔던 ‘정희’는 모두가 다른, 유령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소설의 큰 흐름은 결국 ‘태극기 부대의 기원’처럼 읽힌다.

그냥 그 정도로 읽었다면 별다른 인상은 받지 못했을 테고, 이승우나 권여선에게서 재현된 여러 인물들과 견주어보는 정도로 읽었을 듯 하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은 ‘정희’라는 이름이 주는 묘한 젠더리스의 느낌, 그리고 ‘나’와 ‘정희’의 유년기의 기억 같은 것을 생각하면 이 소설을 다분히 ‘퀴어적’으로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와 ‘정희’는 모두 결혼에 실패했다는 이력이 있다.

‘나’의 경우는 확실히 우울과 허무의 기저에 ‘곽정희’가 있는 것 같고, ‘정희’의 경우 어쨌든 ‘사랑’이라 말하며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시작하니까 둘 사이에 간극은 분명히 있지만 디나이얼, 클로짓 이런 단어들이 마구 떠오르는 것을 멈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면 너무나도 인상적인 결말을 마주하게 되는데,

“두 정희가 함께 머리를 물속에 넣고 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때 ‘나’가 여전히 물통에 머리를 담그고 있던 ‘정희’에게 했던 말, “너는 망령이 들 거야.”

그 감정은 뭐였을까. ‘나’는 그것은 “갑자기 내 몸속에서 솟아오른, 완강한, 명백한, 살의였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이 소설에서도 종종 언급되듯 프로이트적인 ‘충동’이 아니었을까.

 

 

4. 임솔아, 그만두는 사람들  ★★★★☆

너무나 좋은 소설이다.

<자음과모음>에 발표한 <희고 둥근 부분>도 좋았지만 이 작품은 정말이지, 임솔아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루섬’이라는 곳에 와 있는 ‘나’와 한국전쟁 때 간호장교로 파견 와 이 섬에서 ‘가든’을 꾸미며 남은 생을 보낸 ‘사바나’, 우연한 기회에 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게 된 ‘혜리’가 소설의 주된 인물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하게도 “그만두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라지는 사람들, 고립을 자처하지만 또 그 기갈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미술계의 ‘재연’에게 자신이 겪은 문학계의 ‘일들’을 고백하는 ‘나’의 모습은 임솔아가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 보여준 고민의 핵심이며, 윤이형 작가가 절감한 절망의 모습이기도 하다.

“관두자,라는 마음에, 더 해보자,라는 말을 하는 것. 그거 말도 안 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이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간다는 걸 알고 있는데.”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필드에서 무력과 절망을 느끼고 그만두는 일, 또 그런 마음을 억누르면서 타협하고 버텨내는 것이 곧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일, 무엇보다도 살아 있기 위한 방법을 찾는 일, 이런 일들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고, 그만두었지만 그만두지 못한 일들의 연속에서 ‘나’가 ‘혜리’와 공유하는 삶의 방식은 서로의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에 있는 ‘나’가 스웨덴에 있는 ‘혜리’에게 “린드그렌 작가의 집을 찾아가달라는 부탁”을 하거나 반대로 ‘혜리’가 을밀대의 물냉면을 먹어 봐 달라는 요청을 하는 일들.

그렇게 서로 부탁할 일들을 궁리하고 사소한 것들을 생각해내려는 노력 속에 왜 ‘나’가 이곳에 와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혜리’가 떠난 후 할머니의 손에 맡겨진 강아지 ‘뭉치’를 찾아가보는 일이 그것인데,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도 괜찮은 선택”이라 여긴다.

그러니까 ‘영원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생각.

밥을 먹고, 안부를 전하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보잘것 없고 사소한 풍경들 속에서 천천히 어떤 것을 기다리는 일.

그렇게 일단은 ‘살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희망도 절망도 없는 게 아닐까.

 

 

5. 남의현, 오래된 청소년 길미와 선생님들  ★★★

대산대학문학상 당선작.

아무래도 데뷔작은 단점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잘 모르겠다.

현실과 환상 그 어디쯤에서 묘한 시공간을 창출해 더더욱 묘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금경포’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자신이 ‘오래된’ 사람이라고 여기는 ‘길미’와 관광 해설자 ‘올저’, 배를 운전하는 ‘나’가 주를 이룬다.

이 세 인물이 맺게 되는 관계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인물들이 ‘길미’에 대해 갖게 되는 애정 혹은 집착이 분량이 꽤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어렵다.

‘어소’라는 공간과 그곳에 있는 ‘프랑수아 아모리’의 사진 같은 소재 오직 ‘길미’를 오래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것으로 여겨질 뿐,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여자’를 포함해 등장하는 인물이 모두 여성인데, 아마 의도했겠지만 이를 별로 활용하지 않은 점도 아쉽게 느껴졌다.

‘H왕’과 ‘H’라는 표기를 왜 통일하지 않았는지 의아하고, ‘실로’, ‘당연하게도’ 같은 표현도 너무 자주 보인다.

문장이나 표현을 반복해 곱씹으면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데 그것이 어떤 감각을 쌓아가지 못한다고 느꼈다.

아직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였고, 불필요한 사건도 꽤 있어 보인다.

‘올저’가 감옥에 가고 ‘김경’으로 교체된 것, ‘축구부원’ 에피소드, ‘나’의 이혼과 법정 장면 같은 것들은 좀 곁가지로 느껴졌다.

과감하게 덜어내고 압축적으로 더 밀도 높게 썼더라면 어땠을까.

이 작가는 김남숙 쪽일까, 김수온 쪽일까, 다음 소설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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