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20년 봄호(젊은작가상 이야기를 포함하여)

또 ‘포함하여’ 운운 글을 쓰니 좀 민망하다.

아무튼 여름호가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해서 얼른 봄 얘기를 끝내야 되겠다는 마음도 있고, 특히 문동 여름호 소식이 들리기 전에 업로드 해야 덜 민망할 것 같기도 하다.

연초에 이상문학상 사태가 있었고, 연이어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관련해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다.

원래 나는 문학상에 관심이 아주 많은 편이었는데 ‘선인세’나 앤솔로지 출판 관행, 계약 관계 등에는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 문단에는 문학상이 꽤 많은 편이데(어떤 조사에서는 수백개인 것도 봤다), 상이야 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문학상이 공정한 심사를 거쳐 합리적인 방식으로 수여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대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출판된 단행본에 주는 상이 아니라 문예지 등을 통한 발표작에 주는 ‘단편문학상’이다.

한국문학을 이른바 순문학이라고 지칭하고 때로는 제도권문학이라 명명할 때, 그것은 명백히 ‘등단-수상-출간’의 루트를 도는, 이 시스템 안의 문학을 말하고, 그게 ‘한국단편소설’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시스템 속에서 매해 400여 편 남짓 단편소설이 생산되고, 그 중 약 10%의 작품 정도가 독자를 곧바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구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방식의 문학상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김승옥문학상, 문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진건문학상 등이다.

각각의 문학상에 대해 열심히 떠들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지금은 ‘젊은작가상’에 대해서만 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010년부터 시작된 문학동네 주관 ‘젊은작가상’은 현재 독자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참여도 여러 차례 했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운영되는 문학상은 결코 없다.

한 해 동안 비평가들이 꾸준히 소설을 따라 읽고 논의를 거쳐 작품을 추린 뒤, 본심 과정에서 일곱 편의 수상작을 뽑는 구조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또 이런저런 말들을 듣다 보니 문학동네가 너무 ‘쉽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가 젊은 비평가들을 주니어 시스템 속에 동원해 상당한 노동력을 이른바 ‘착취’했다는 얘기(김대성, 장은정 등)도 그렇고, 그간 계약 관계도 전무했다는 말도 흘려 들을 일이 아닌 것 같다.

보통 젊은 비평가 4명 내외로 구성되는 문학동네의 리뷰팀은 한 해 동안 그 많은 작품을 실제로 다 ‘읽는다.’

그리고 수상작 선별을 위해 동원되는 3명 정도의 추가 예심위원들 역시 한 번 추려지기는 했지만 짦은 시간 내에 그 작품들을 또 다 ‘읽는다.’

나는 대부분의 문학상들이 후보작이 되는 대상 작품을 다 읽는지조차 못 믿겠는데 젊은작가상은 정말로 확실하게 ‘읽는다.’

이 ‘읽음’ 행위에 대해, 또 그 선별 과정을 어느 정도의 노동으로 보고 얼마의 페이를 책정해야 할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작품을 구해서 읽는 일(도서관에서 찾거나 구입하거나 스캔하거나 다 비평가들이 한다), 읽고 논의하여 선별하는 일, 수상작이 결정되면 해당 작품론을 쓰는 일 등까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본심위원들보다 ‘대우’가 더 좋아야 한다는 생각 정도?

순전히 추측이고 알 수 없지만 본심에 참여하는 중견급 이상의 작가, 평론가의 경우 얼마의 심사료(+심사평 고료)를 받을까?

예심 비평가들이 20편 내외를 골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내준 PDF 파일들을 열심히 읽고 한 차례 모여 수상작 7편을 뽑는 일에 어떤 대우를 받을까?

나는 이참에 젊은작가상의 ‘본심’을 없애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예심 비평가들은 스무편 정도의 후보작을 추릴 때 상당한 진통을 겪는다.

어떤 작품을 넣고 뺄지 얼굴을 붉히는 일도 허다하다.

그런데 본심으로 가면 그 스무편은 그냥 사라져 있다.

대부분 젊은 비평가들의 예상과 꽤 다른 수상 목록이 전달되고, 선정되지 않은 예심 추천작들은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젊은작가상’인데, 등단 10년 미만 작가들로 엄격하게 제한을 해놓고 독자들에게 젊은 작가들을 소개한다는 명목인데, 생각해보면 ‘어르신’들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나 싶다. (나도 요즘에야 새삼스럽게 든 생각이지만)

만약 본심 과정을 그대로 둔다면, 그것이 나름의 ‘필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예심에서 선정된 스무편의 목록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인세’와 ‘계약’ 관련해서도 조정이 필요하다.

그간 젊은작가상은 계약서따위가 없었다(고 한다).

‘아니, 그럼 어떻게?’ 싶지만 내 경험을 떠올려 봐도 ‘계약’을 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장은정 평론가의 말대로 환대와 호의, 다정함으로 무장한 문학동네 특유의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나도 그간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었던 젊은작가상조차 작가들과 계약을 맺지 않고(정확히 말하면 계약서를 쓰지 않고), 상금을 ‘선인세’로 집행했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아마도 올해는 부랴부랴 계약서를 쓴 모양이긴 한데, 상금 700만원이 선인세라는 조건은 변화가 없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 젊은작가상은 그 해 5,500원의 특별보급가로 판매된다.

이 경우 인세는 550원, 그걸 다시 7로 나누면…

인세라고 하기에 좀 미미한 금액이고 계산도 복잡하겠지만 그걸 상금으로 처리해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선인세를 넘겨 책이 팔렸다는 출판사 측의 언급을 상기할 때, 이렇게 문학동네는 약 5천만원을 아끼는 셈이 된다.

또한 젊은작가상을 통해 독자를 만난 신인작가 대부분은 문학동네와 책 계약을 하게 되고, 그렇게 얻는 상징 자본은 사실상…

나는 한국문학의 젊은 목소리를 독자에게 소개하고자 한다는 문학동네의 선의가 기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출혈을 감수하고 특별보급가로 판매한다는 식의 워딩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11회를 맞이한 젊은작가상은 이제 ‘젊은’ 문학상은 아니니 조금 쇄신도 필요하지 않을까?

다양한 대안도 떠오르는데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내가 가진 ‘젊은작가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나마 한국문단에서 이 정도의 신뢰와 권위를 지닌 문학상이 모범적으로 운영되기를 바라는, 그래서 완벽하게 마음을 맡기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 있는 젊은작가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까스로 문동 봄호를 보자.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툼한 볼륨이고, 읽을거리가 상당했다.

김비 작가, 김화진 편집자의 산문도 무척 좋았고 황인찬 특집이나 김미정 평론가의 비평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주란의 일기야 말할 것도 없고, 계간평, 시, 소설평 지면도 소위 ‘리뷰’를 훌륭히 대체하는 듯 하다.

아무래도 여성x장르x서사 특집란이 제일 관심이 갔고 모든 글이 내가 정말로 쓰고 싶지만 결코 쓰지 못할 글들처럼도 읽혔다.

강지희 평론가의 글은 장류진을 경유해 강화길, 최은미, 손보미 등으로 이어지는데 매 작품, 매 문장마다 공감하며 읽었다.

안서현 평론가의 글을 최근 여성 서사의 또 다른 경향 하나를 적실하게 짚어주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체공녀 강주룡>, <줄리나아 도쿄>, <진주> 등의 성취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좀 회의적이기는 하다.

백지은, 박인성 평론가의 글을 읽으면서 확실히 장르적 열기가 여성 서사의 가시화에서 동력을 얻고 있다는 생각도 했다.

소유정 평론가의 글 역시 아이돌-팬덤/팬픽 문화가 반영된 문단 문학의 한 흐름을 잘 보여준 것 같은데, 이희주의 <환상통>에서 출발해 박사랑, 김세희, 조우리에 이르는 일련의 경향 역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에서는 역시 조시현 시인이 좀 독특했고, 김혜순의 시가 처절했다.

장편연재는 천운영, 한강 작가에 더불어 최은영 작가도 시작되었는데 <주간 문학동네>와 어떻게 변별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아껴 놓긴 하겠지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단편은 총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정말로 멀리 돌아왔다.

1. 김현,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

소설을 꽤 자주 발표하고 있다.

자모에도 소설 한 편을 발표했는데 유튜브 낭독으로 들을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3SNHOcdbg)

아무튼 이 소설도 재밌게 읽었다.

‘사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방식 자체가 나쁘지 않았고, 다소 나열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사연’이 다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하면 그럴 듯 했다.

처음 ‘신운선-숙자씨’ 커플로부터 ‘신태현 씨’ 정도로 이어질 줄 알았더니 끊임없이 확장되는 이야기여서 다소 갈피를 잡기가 어렵기는 했다.

소설을 매조지는 것은 놀랍게도 ‘생체 내장 스피커’를 지니고 있는 ‘우르술라 씨’인데 “요 며칠 자신이 이 행성에서 채집해 가야 할 사연이 도대체 얼마나 더 남은 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임무 때문에 비통한 심정”이라 설명된다.

씨를 뿌린다거나, 숙주, 고자 선별, 바뀌는 눈동자 색, 이런 이야기가 말미에 갑자기 등장하는데 좀 당황스럽기는 해도 이 지긋지긋한 사연의 나열 끝에 나름 산뜻한 기운을 가져다 주기는 했다.

2. 최윤, 소유의 문법

전반적으로 능숙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자폐로 생각되는 장애 아동인 ‘동아’ 때문에, 또 은사의 호의로 어떤 전원주택에서 생활하게 된 ‘나’와 ‘아내’의 이야기이다.

자신들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이 배려와 은혜에 의해 시작된 시골 생활이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노출되기 시작하는 서사는 특별하달 게 없다.

다만 그 속도가 아주 매력적이기는 하고 어쨌든 이른바 후일담의 형식이니 장편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폐쇄적인 시골 공동체의 모습이라든가, 떠밀리고 도망친 사람들이라든가 기시감이 드는 묘사가 많았다.

은사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의도로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이때 ‘소유’라는 개념이 인식되는지 다소 모호한 것도 사실이고.

앞서 문사에 실린 소설에서도 그렇듯 ‘동아’라는 캐릭터가 다소 소재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점도 걸리기는 한다.

3. 최진영, 유진

최진영을 따라 읽은 사람이라면 <겨울방학>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조카 ‘이나’를 돌봤던 그 겨울에 ‘나’는 ‘이유진’이라는 언니를 기억해낸다.

그 스무살 시절의 달뜬 기억들과 그때는 알지 못했던 상처들, 이제는 사라져버린 사람들.

누구에게나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삶’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이 소설은, 최진영은 계속 보여준다.

최근에 더욱 각광받고 있기도 하지만 ‘언니’에 대한 소설의 좋은 레퍼런스 같기도 하고, “너는 작가가 될 거야”라는 문장에서 자전적으로 읽어 볼 여지도 있어 보인다.

각주를 활용하는 방식도 ‘소설가’인 ‘나’를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4. 한유주, 눈과 호랑이와 고양이가

그냥 너무 좋은 소설이라는 말만 써 두고 싶다.

소설을 말하는 사람, 즉 서술자의 힘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소설이고.

뒤의 한정현 작가 소설과도 좀 대비되는 측면이 있지만 소설은 받아 쓰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작가가 서술자를 통해 ‘만들어 가는 일’임을 한유주는 보여준다.

“한 여자가 눈이 내리기로 예정된 거리에서 걷고 있었다”로 시작해 “그 바람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사력을 다해 펄럭이고 있었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는, 새삼스럽게도 모든 존재가, 시간이 살아 있다.

5.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줄리아나 도쿄> 이후 한정현 작가는 상당히 인상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 근대 퀴어-트렌스젠더 약사(略史) 같은 것인데 매번 흥미롭게 따라 읽고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만 언급하는 것은 사실상 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대여섯 편의 작품을 연작 성격으로 써냈고 아마 곧 단행본이 나오게 될 것이다.

이 작업은 다소 레퍼런스에 기대고 있다는 느낌, 소설이 어떻게 또 무엇을 재현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논쟁적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들이 한데 묶였을 때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는 예상에는 이의가 없다.

개별 단편으로 읽을 때는 갈피가 쉽게 잡히지 않는 부분도 많았는데 단행본 작업이 그걸 해소해 주리라는 기대도 있다.

6 Responses

  1.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 별점을 포기하셨던 이유를 보고 납득은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네요. 점수로 계산되는 폭력성보다 선생님의 호오가 읽혀서 좋았는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대학 강단에서 수업 들었던 학생입니다. 늘 계간지 시즌이면 언제 글 올라오려나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여름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2. 잘 읽고 있습니다!

    매번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눈으로만 보다가 다른 분들의 댓글처럼 포스팅에 대한 감사의 말과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남깁니다 🙂

  3. 랜덤독자

    우연히 구글링 하다 들어온 일반 독자인데요!
    요새 집에만 있으면서 한국문학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는데 좋은 참고가 되고 있어서 감사 말씀 드립니다. (재미있어요.)
    한국 현대문학은 또 부글부글하는 동시대성이 매력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한국 사회 자체가 상당히 동질적인 측면이 있다보니 다양성에 있어서는 약간 아쉽기도 하고요…! (더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대문학의 역사를 따라오신 분들의 맥락에선 꼭 필요한 서사들이 선택된 거겠죠?
    무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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