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와 신경숙

트위터에나 짧게 쓰려다가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여기 쓴다.

신경숙 작가가 창비 홈페이지에서 장편 연재를 시작한다고 한다.

작년 여름호 계간지에 이미 중편소설 하나를 실으며 복귀가 가시화 됐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왜 하필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비슷한 비판을 하게 되겠지만 무엇보다 창비의 처사에 실망이 크다.

표절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은 없었지만 “작가로서의 알량한 자부심이 그걸 인정하는 것을 더디게 만들었다”는 말로 어쨌든 자신이 끝내 그것을 ‘시인’하게 되었다면, 소설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백분 생각해 보자면 소설을 쓰지 못했던 최근 몇 년간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수 있고, 지난 허수경 시인의 이야기처럼, 아버지께 이 작품을 드리고 싶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갈급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반쯤 썼”다는 작가를 이 자리에 불러내 완성을 종용해 보겠다는 창비는 지금 그들이 신경숙을 더 궁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당황스럽게도 나는 창비가 이제 판단력의 마지노선조차 잊은 집단처럼 느껴지는데,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는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책 값은 13,000원.

200만부라면 260억.

잘 알려져 있듯 해외 판매량도 무시할 수 없고, 저자 인세를 제외하면 최소한 창비는 이 책으로 300억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추측된다.

그러니까 창비는 완벽하게 자본에 굴종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민망하고 우스운 모습으로.

창비가 그토록 고수하는 문학관, 이념적 노선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그냥 미안한 것이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벌게 해줬는데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까.

이토록 분명한 동정이라니.

작가를 가십거리로 다시 만들고, 자신들이 욕먹을 짓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창비는 ‘그렇게’ 한다.

그러나 절대로 고은에게는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그를 더 우습게 만들어서는 안되니까.

도대체 창비는 지금 부끄럽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신경숙을 욕보이게 하는 건 누구인가?

창비와 신경숙”에 대한 답글 2개

  1. 안녕하세요. 평소 평론가님 블로그 글을 즐겨 읽는 사람입니다. 글을 읽다가 평론가님이 너무 ‘지나치게’ 창비에 날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어 댓글을 적어요. 본문에서 쓰신 바, 창비가 자본에 굴종한 현상은 팔리는 작가니까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업이 자본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고 그것이 문학관, 이념적 노선보다 우선시 되는 건 어찌 보면 도리 없는 현상 아닐까요. (물론 간단히 보았을 때 말이에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은 제가 알기로 1999년에도 있던 것으로 아는데 세월에 비해 작가의 시인은 너무 진정성 없었고, 이후 창비에 글을 실으며 덧붙인 변 또한 솔직히 해온 것에 비해, 신경숙이란 작가의 이름이 가진 네임밸류에 비해 너무 간소한 사건처럼 처리되었다고 봐요. 창비 쪽에서 덧붙인 말 또한 너무 기득권스러운 변명에 감성팔이가 심했다고 보였고요. (이 부분은 평론가님의 이전 게시물을 보았을 때 어느 정도 동의하시는 걸로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체통을 지켜야하는 건 출판사가 아니라 작가 자신 아닐까요. 본문을 읽어보면 너무 창비 쪽에 날을 세워 필요 이상으로 신경숙 작가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 같고, 신경숙 작가가 행적에 비해 너무 쉽게 (창비를 이용해) 돌아온 것에 평론가님은 이윤 추구가 우선인 출판사는 이해 못하나 신경숙은 이해할 것도 같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계신 것처럼 읽힐 여지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금의 문단에서 출판사를 이윤 추구가 우선인 정도의 집단으로 간략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속된 말로 어느 쪽이 더 꼴이 우습냐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을 결정한 신경숙 작가 쪽이 아닌가 싶은 거예요.

    저는 평론가님께서 문학의 성역화를 경계하시는 걸로 아는데 이번 글에서 신경숙 작가에 관한 문장은 그녀의 사정을 그저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한 게 아닌가, 동시에 글을 쓴다는 행위를 너무 성스러운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신경숙 작가를 다소 지나치게 신뢰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앞서 말했듯이 저는 평론가님 블로그를 자주 보는 습작생이고, 동향을 배워간다는 자세로 보고 있기에 평론가님의 생각이 어떠신가 더 듣고 싶어서 댓글을 남겨봤습니다. 부디 글이 기분 나쁘게 읽히지 않기를 바라요.

    1. 의미 있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들에 저도 대체로 동의합니다. 우선은 신경숙 작가의 태도가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일전에 복귀를 결정했을 때도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밑바닥부터 다시 일어서겠다는 마음이라면 표절을 시인하고(설령 실수였다 하더라도) 반성하는 일이 우선이어야겠고 이후에 어떤 식으로 작품을 써나갈지 고민을 많이 해야겠지요. 제가 내막을 알지는 못합니다만 여전히 신경숙 작가가 일종의 귀족적 스탠스를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저는 창비가, 정확히 말해서는 창비의 의사결정권자 몇몇 분들이 아주 문제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신경숙 작가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동정어린 마음을 갖고 이렇게 작가를 챙겨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근거에는 창비가 정말로 이 작가를 정말 아끼고 염려한다고 보기가 힘든 면이 있어 보여요. 지금도 신경숙 작가는 ‘소녀 취향의 문학’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비윤리적 행위를 저지른 작가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비난에 노출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창비가 그걸 알면서도 이런 판단을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시 말해 제가 다소 거칠게 썼듯 많이 팔아줬기 때문에 챙겨준다는, 아주 궁색한 논리만 남게 된다는 것이고 그게 아닌 척 하기 위해 표절 자체를 옹호하면서 작가의 위상을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은 겁니다. 제가 고은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이를테면 박민규 같은 작가를 떠올리게도 되는데요. 물론 박민규 작가는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어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박민규 작가가 창비에 작품을 발표할 때를 생각해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르고 저는 그것이 ‘잘 팔리는 여성 작가’에 대한 일종의 혐오를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재생산에 지금 창비가 엄청나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아무튼 지금 제 생각은 그렇고, 말씀하신 대로 “신경숙 작가를 다소 지나치게 신뢰한다는 생각”에도 전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신경숙 작가가 뒤늦게라도 제대로 된 인정과 사과를 하고 작품 활동을 재개하기를 기대했었고,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이제 더 남아 있을 기대는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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