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2020년 여름호(「그런 생활」 이야기를 포함해)

<문학동네> 여름호 소설에 관해서는 아래에 짧게 감상을 남기고, 아무래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쓸 수밖에 없겠다.

나는 공교롭게도 가을호 원고 한 꼭지를 청탁 받았고, 여전히 고민 중이다.

작가론 성격의 원고가 아니었다면 진작 거절했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

동시에 이제는 사과나 반성 정도로 무마될 수 없게 되었다.

일단 문학동네는 왜 공지가 어려웠다는 것인지, 수상 취소 요구와 관련해 심사위원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

사태의 정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설명했는데 수상 여부에 변동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비판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이 가능성이 크겠지만) 사태를 축소시키거나 왜곡해 전달했다면 문학동네는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가 요구했던 수정 사항에 대한 공지는 이제 사실상 필요없게 됐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젊은작가상 수상을 취소, 해당 작품집의 간행을 중단하고, 배부본을 회수하는 일이다. (이건 창비의 소설집도 마찬가지)

거기에 계간지 가을호를 결호 처리 해야 한다. (역시 창비도 마찬가지)

뒤늦었고 미진하지만 이 정도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또 출판사의 ‘입장문’만을 발송하고 실제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실망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 같다.

작년에 <그런 생활>을 읽고 내가 남긴 글을 봤다.

만점을 줬던 소설이고, “‘C누나’의 알찬 상담에 감탄”했다고 써 있었다.

애정하던 작품을 이런 식으로 잃어버리는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그래서 그냥 작품을 읽고 감상을 남기는 이 일마저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지금 이 바닥에서 작품을 쓰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야지 싶다.

여름호에는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 김초엽, 오래된 협약

김초엽 작가의 인장이 정확하게 찍힌, 김초엽다운 작품.

과학소설에 대해서는 늘 말하기가 어렵지만, 어쨌든 이런 SF휴머니즘이 신선하게 읽히는 건 사실이다.

다소 낭만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스케일’에 비해 인물의 관계나 메시지는 좀 소박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흥미로운 고민을 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여럿 있다.

‘오브’의 땅, ‘벨라타’에 거주하는 ‘노아’와 연구원으로 이곳을 방문한 ‘이정’의 이야기인데, <인지 공간>이나 <브라운 모션>은 같은 이전 작품들의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지금’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행성이 사실은 거대한 존재와의 ‘약속’을 통해 존속되고 있다면?

신을 상상하고 믿어 왔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이나 약속, 그러니까 ‘협약’을 맺고 우리가 ‘인류세’를 살고 있다면?

우다영 작가의 최근 작품도 떠오르고, 억겁의 시간과 무한대의 공간 속에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이런 종류의 설정이 흔하다면 흔한 편이고, 조금은 박력이 느껴지는 서사를 김초엽에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2. 서장원, 이 인용 게임

그러니까, 2인용 게임.

제목이 다소 아쉽지만, 아무튼 문지문학상의 후보작으로 선정돼서 <소설 보다>로 실려 나올 예정이다.

인물도 관계도 상황도 전혀 다르지만 데뷔작이었던 <해가 지기 전에>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오래된 연인,이라기보단 인연에 가까운 ‘나’와 ‘노영’의 이야기이고, 요양원에 가 있는 ‘노영’의 ‘엄마’, 그리고 소아암으로 일찍 세상을 뜬 오빠 ‘준영(민영)’, 호주 워킹 홀리데이의 ‘줄리아’와 ‘패트릭’의 이야기가 여기 끼어든다.

잔잔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아주 교과서적인, 전형적인 한국 단편을 읽는 듯 했다.

권여선의 단편들도 많이 떠올랐고, 그래서 좋았고 또 아쉬웠다.

‘나’가 왜 청혼을 거절했는지 결국 알 수 없어서 그 부분이 궁금했고, ‘패트릭’의 일기장 이야기, 특히 ‘나’가 돌려주기 위해 ‘줄리아’의 집 근처를 들렀다가 결국 그걸 버리게 되는 이야기가 소설의 ‘희미함’ 같은 매력을 다소 반감시킨다는 생각도 했다.

3. 이희주, 사랑의 세계

<환상통>의 작가답게, 말 그대로 ‘사랑의 세계’에 관해, 그 미묘한 서로에 대해 흥미롭게 쓰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많았다.

‘나’를 비롯해 ‘소영’과 ‘서연’, ‘마이’와 ‘류짱’, ‘나나미’까지 너무 많은 인물들이 얽혀 있다는 점, “락스 냄새”로 이어지는 수영장의 추행 목격과 도쿄의 지금을 무리하게 연결시키는 점 등이 그랬다.

‘나’의 캐릭터 자체는 매력적이었는데, 서술의 톤이 좀 들쭉날쭉했던 것도 있다.

냉소를 가장한 위트를 좀 더 구사하거나 아예 비뚤어지는 게 어땠을까.

전반적으로 길고, 또 산만하다는 점도 단점이고, 각자의 열등감, 패배감, 콤플렉스가 결합된 인물들이 다소 올드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소설에서 말한 “육욕의 시간”에 대해, “아름다운 건 다 징그러워”라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집중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4. 편혜영, 홀리데이 홈

역시나 편혜영스러운 작품.

근작인 <뼈의 중량>이나, <리코더>, <어쩌면 스무 번>, <호텔 창문>, <화요일은 지나갔어> 등의 감각을 공유하면서(써놓고 보니 어느새 소설집 분량이 또 모였네) 삶을 ‘관찰’하고 있다.

이 시선이 좀 아쉬운데, 작품에서도 ‘이진수’의 삶이 아내 ‘장소령’을 통해 서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감이 나에게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홀>이나 <소년이로>의 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좀 심드렁하게 읽히는 측면이 있다.

작품 속 ‘이진수’의 폭력이나 이를 지켜보는 시선이 새로울 게 없었고, 특히 결말에서의 ‘박일병’과의 조우, 또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예감만을 남기는 방식이 다소 뻔했다.

앞서 이희주의 작품이 길어서 지치게 만든 측면이 있다면, 이 작품은 너무 짧아서 또 미진한 느낌이다.

물론 이 계열의 근작들이 다 모인다면 또 조금 느낌이 다를 테지만, 아무튼 <홀리데이 홈>(제목도 썩 매력적이진 않다)은 아쉬움이 크다.

2 Responses

  1. Umbrella

    김봉곤 작가 관련 사태가 정말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김봉곤 작가를 정말 좋아했던 독자로서, 한 편으로는 터질 수도 있었던 일이 이제야 터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김봉곤 작가 본인에게도, 문학동네와 창비에게도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지 않도록 방지할 만한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비야 정말 옛날부터 실망만 거듭해온 곧이기에 그렇다쳐도, 문학동네에는 나름 기대하던 바가 있었는데 주니어 평론가들 관련한 이슈도 그렇고 여러모로 씁쓸합니다… 어째서 처음에 입장문을 트위터에만 게시했는지 (김봉곤 작가는 지금도 인스타에 입장문을 안 올리고 있지만….) , 김봉곤 작가는 왜 처음에 인스타그램에 달린 댓글을 삭제했는지, 너무 당연한 자충수인 것 같아서 이해가 잘 안 가네요. 가장 납득이 안 되는 지점은 어째서 이것을 공지하기가 힘들었는지였는데… 년초에 이상문학상 관련 사태 때 문동과 연관이 있는 작가들이 많이 목소리를 냈음에도, 정작 문동 또한 출판사가 응당 독자에게 했어야 할 명시에 관한 변명만 일삼아 ‘고인 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사태를 접했을 때 너무 분노해서 김봉곤 작가의 인스타에 장문의 댓글을 남겨놨는데, 갈수록 댓글 양상이 한예종 출신 소설가들은 특혜를 받았다는 둥,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논리로 흘러가는 것도 보면서 착찹해졌어요. 그럼에도 한편으론 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 ‘불친절한’ 현재의 입장 표명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닌지… 문단이란 것이 결국 그런 것인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 문학동네 신인상에 퀴어 소설을 투고하면서 김봉곤 작가가 편집자로 있는 그곳에서 등단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작업하면서 김봉곤 작가가 나오는 유튜브도 틀어놓고 글 썼는데 기분이 되게 묘하네요… ㅠ

    덧) 저번에 신경숙 관련 글에 달린 대댓글을 이제야 봤어요. 평론가님 설명을 들으니 어떤 맥락으로 그런 생각을 하신 건지 와닿았습니다. 저는 사실… 신경숙 작가를 ‘여성’이기 이전에 ‘문단 권력’으로 생각했던 측면이 강했던 것 같은데 색다른 접근이었다고 생각하고… 평론가님이 신경숙 작가에게 가진 애증(?)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창비에 관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번에 김봉곤 작가 관련해서 쓴 입장문에서도 묘하게(?) 창비 쪽 문장이 다소 권위적인 것처럼 보였는데 기분 탓일까요…? 정말 미운 출판사입니다.
    덧2) 저때 당시에 댓글을 남길 땐 다소 격앙되어 있어서 말씀을 못드렸는데 저는 작년에 평론가님께 부끄러운 졸고(sincerely)를 보냈던 습작생이에요. 항상 글 잘 읽고 있어요…! 당시 평론가님께서 해주신 따뜻한 피드백 덕분에 용기를 얻어 계속 글을 쓰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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