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사태와 비평의 일(장은정 평론가에게 답하며)

처음에는 당혹스러웠고, 차츰 화가 나다가, 종내에는 허무해져서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기 어려울 것 같다.

김봉곤 사태와 관련해 비평의 책임을 묻는 의견이 많았고, 장은정 평론가로부터 직접 질문을 받기도 했다.

김봉곤 사태를 비평이 ‘방조’했는지, 비평이 그 ‘원인’이었는지를 섣불리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문단 시스템에 복무하는 비평의 행태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런 생활>이 젊은작가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김봉곤 작가가 문학동네의 편집자이기 때문에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도 명백하게도 그 일이 실수가 아니었음이, 창작 윤리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이 밝혀졌으므로 책임은 분명하고 반성도 필요하다.

그러면 문학 비평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경고했어야 할까.

이것은 비평가가 작품을 읽고 작가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어야 한다거나 인용의 결함을 지적했어야 한다는 식, 혹은 비평가 자신의 오판이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형태로 귀결될 일이 아니다.

비평가들은 김봉곤에 대한 상찬만이 가득했고, 비판과 자성이 부족했다고 반성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평이 흘러 넘쳤으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문학장에서 당사자성과 1인칭, 자기서사, 재현의 윤리, 윤리적 재현 등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를 떠올리면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비평가들이 ‘1인칭 글쓰기’에 대해 각자의 의미를 부여해왔다.

우리가 돌이켜 봐야 할 것은 그 논의들이 일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상찬으로 이어졌다는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다소 가혹하게 대부분의 작가들을 몰아붙였다는 사실이다.

특정 사례는 들지 않기로 하겠지만 ‘재현의 윤리’나 ‘당사자성’을 무기로 비평의 담론을 형성해나가고, 작가들에게 은연 중에 ‘더 고백해’, ‘네 이야기를 써’, ‘우리는 네가 궁금해’, ‘네가 겪은 더 끔찍한 이야기를 해 봐’라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내밀한 자기 고백에 환호하면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대체로는 여성인 작가들에게 늘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던, 피해자의 위치에 있는 당사자성에만 날카로웠던 그 글들을 반성해야 한다.

아무튼 이 사태를 계기로 나는 비평가의 다소 과대한 자의식이 또 다시 적잖이 불편하고, 내가 장은정 평론가에 대해 제기한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비평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일단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봉곤이라는 ‘스타’를 만들기 위해 비평이 복무했다는 논리는 김봉곤이 아니라 문학 비평을 너무 ‘올려치기’ 한 얘기다.

비단 김봉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문단의 비평은 그게 문학성이든, 독자든, 판매든,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누누이, 몇 번씩 말하지만 한국문단의 비평가들은 <82년생 김지영> 같은 사례를 자신의 논의에 끌어들일 때 그 정치적 올바름과 문학의 미학성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비평이 그 작품의 ‘유통’에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지금 한국 문단의 비평가들은 진단과 성찰과 일갈을 하기 전에 일단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자족적’인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이 부끄러움부터 해결해야 한다.

사실 장은정 평론가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비평의 갱신에 대해서 나는 의견이 다르다.

“오히려 비평은 섣부르게 삶의 윤리를 말하기보다 더 문학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썼던 것은 문학 비평이 삶이나 현실에 대해서는 발언해서는 안 되고, 텍스트 비평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이런 생각이 “김봉곤 사태를 만들어낸 원인이라는 판단”에도 동의할 수 없다.

나에게는 장은정 평론가가 주장하듯 “작가중심주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언급이야말로 아주 소수의 작품이나 작가를 토대로 현실에 대한 개입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비평적 글쓰기의 관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장은정 평론가는 “작가-비평(가)”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는데 그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일종의 “기획-비평(가)”로 곧바로 건너뛸 것이 아니라 “전문-비평(가)”의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시기별로 비평의 단계를 돌아볼 때, 지금만큼 작품을 ‘덜’ 읽은 적이 있나 싶기 때문이다.

또한 비평이 작품에 대한 ‘선호’를 드러내는 방식에 대한 반감이 지금만큼 ‘더’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장은정 평론가가 “설계”, “현장-스코어”, “장치” 같은 말로 비평을 수식하고 문학의 구조와 제도를 문제삼으면서 그 이상의 비평을 기획하는 방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지향이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평론을 쓰는 이른바 수동적 비평에 대한 폄하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문학지상주의’ 운운했던 것은 문학을 최상의 가치로 취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학이, 혹은 비평이 실제 작품이나 작가를 경유하지 않고 담론으로만 기능하면서 그 의미는 비대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썼다.

실제로 장은정 평론가는 <우리의 2010년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 글에서 소설을 해설하거나 가치 평가하는, ‘소설 비평’을 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윤이형의 <우리의 2010년대>)의 한 대목을 인용한 것은 이 소설이 2010년대라는 시간을 정확히 ‘비평’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이 인용이 이 비평에서 하나의 ‘장치’가 되어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소설이 현실을 “정확히 ‘비평'”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아가 그래서 그 작품이 “비평에서 하나의 ‘장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런 방식이 ‘문학주의’의 관점에서 비평의 ‘최대화’를 기획하고 있으며, 작품을 비평의 도구로 축소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모든 것을 할 수 없고, 비평 역시 마찬가지라고 늘 생각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비평의 역할에 대해 무심하고, 재미도 없는 일을 이력을 채우기 위해 수행하고 있다고 힐난할 때, 우리가 물을 수 있는 것은 “왜 읽지 않아?” 정도이지,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가 아니다.

3 Responses

  1. Umbrella

    평론가님, 기운이 많이 빠져 보이시네요 ㅠ 본 포스팅 뿐만 아니라 트위터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논의들을 주의 깊게 보고 있어요. 몇 마디 슬쩍(?) 얹기도 했구요. 김봉곤 작가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저는 트위터를 하지 않았는지라, 문학평론가의 글을 강의 시간에, 또는 어떤 작품집 뒤편이나 문예지 이외의 공간에서 확인한 것은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처음 블로그에 들어왔을 땐 통찰이 일반 독자라고 하기엔 무척 예리하다고 생각하며 포스팅을 쭉 봤지요. 평론가께서 직접 블로그에 문예지를 매 계절마다 읽으며 코멘트를 단 다는 것에 놀랐어요. 제가 아는 문학평론가의 모습과 달리 무척 접근성 높은 곳에서 작품에 대한 소감을 작성한다는 것에… 저는 평론가님이 부디 지치지 않고 계속 곳곳에 글을 작성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올해엔 문학판에 참 많은 일들이 벌어져서 기운이 빠질 수 있지만… 그것이 지금껏 경직된 이곳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일개 습작생의 글을 선뜻 봐주시겠다고 답해주실 때부터 늘 감사하고 있었고, 제겐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교수님 이외’의 문학평론가시니까요.

  2. YU

    안녕하세요, 평론가님 블로그를 애독하는 독자입니다. 한국 문학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최근에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서 평론가님 글을 접하게 됐네요. 배움이 부족한 지라 평론가님 글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간극에서 오는 즐거움까지 즐기며 매번 열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평론의 역할을 무어라 논할 만큼 많이 읽고 아는 독자는 아닙니다만, 적어도 평론가님 글을 통해 한국 문학의 시류를 파악하고 문학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있다고 생각해요… 평론의 역할은 몰라도, 평론가님의 글은 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항상 잘 읽고 있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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