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0년 가을호

창비 가을호를 읽었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놀라웠다.

지난 여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6월초에 기획을 마쳤을 가을호에 그것이 반영되기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잡지가 나왔다.

수십 년 뒤에 한국문학 연구자가 2020년 창비 가을호를 본다면 유의미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창비’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가령 30년 전쯤의 창비를 들여다보면 당대 한국사회의 현장성은 물론이고 당시 발표되던 문학 작품에 관한 언급들을 곳곳에서 아주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냥 계간지 창작과비평만 읽고 분석해도 학위논문이 될 정도로, 창비는 이른바 현장의 문학이자 실천의 소산이었는데, 이제 그런 기대는 확실히 접어야 하는 것일까.

그 입장이 아무리 ‘문제적’이더라도 일단 논의에 뛰어들던 신경숙 사태 때가 마지막이었나 싶기도 하다.

고 박원순 시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김봉곤 사태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창비는 그토록 열렬히 비난하던 ‘비참여’를 스스로 감행하고 있는 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특집이나 기본소득 문제, 남북관계, BLM 운동에 리베카 솔닛의 글까지 중요한 이야기들이고 또 대체로 잘 읽기도 했다.

이남주 선생이 쓰게 된 탓도 있겠지만 적어도 머리말에서는 어떤 종류의 언급이라도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회피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창비가 문학잡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진보 진영의 기관지가 될 작정이 아니라면 분명한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겨울호에서 어떤 고민들이 잡지에 담길지 기다려 본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에 대한 인터뷰가 흥미로웠다.

지난 소설들에 꾸준히 실망했던 터라 거의 기대가 없었는데, 또 물론 중반부 이후 밀도가 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철도원 삼대>는 기억할 만한 말년의 작품이 될 것 같다.

나는 황석영이 <수인>을 내면서 소설가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나 보다 생각했고, 꽤 많은 작가들이 일찍부터 ‘거장’의 자리로 가 스스로를 문학적으로 정리하는 행태를 달가워하지 않았으므로 <철도원 삼대> 같은 작품이 다시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과하면서 노동과 쟁의의 역사를 그린다면 결국 이런 방식일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신금, 선옥, 여옥, 막음 같은 여성 캐릭터가 이야기를 더없이 생생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신동엽문학상에 주민현 시인, 김유담 소설가가 선정됐고 만해문학상 후보작 중에서는 최진영의 <이제야 누나에게>가 받게 됐다.

(자세한 심사평은 겨울호에 나올 테고 고 김종철 선생의 마지막 ‘평론집’이 특별상을 받았다.)

최진영 작가는 최근 소설집 <겨울방학>으로 통영시에서 주관하는 김용익 소설 문학상, 또 백신애문학상도 받은 바 있어서 다소 늦게 상복이 터지고 있는데 충분히 즐기셨으면 한다.

신동엽문학상에서도, 신인상에서도 평론 부문 수상자가 없다는 점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유독 비평에 관해서는 기준이 까다롭고 ‘격려’라는 관점이 별로 고려되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아쉽다.

신인상 소설 부문 수상작에 관해서는 아래에 감상을 남길 것이고, 시 부문은 총 979명의 응모자가 있었다는데 다소 “고요하고 단정한” 작품이 뽑혔다.

굳이 자세하게 쓰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기시감이 많이 느껴져서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 지켜 봐야 할 것 같다.

소설은 신인상을 제외하면 3편이 실려 있고 잘 알려져 있듯 몇몇 작가들이 수록을 거부한 결과이다.


1. 공선옥, 저물녘

오랜만에 단편을 읽는 것 같다.

작년 소설집 <은주의 영화> 이후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

(<은주의 영화>는 5.18문학상을 받긴 했지만 조금 더 주목해야 할 작품집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소설은 세대적으로 또 세태에서도 밀려난 두 노인의 이야기이다.

다들 자신을 할머니 취급하고 옛날 얘기라면 치를 떠는 시대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라고는 없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넋두리를 하는 이야기랄까.

윤성희가 최근 쓰고 있는 스타일과 흡사한데, ‘배롱나무집’ 이야기나 노년 인물의 솔직한 내면 같은 것들이 흥미로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코로나 정국의 여름이 배경이니 시차가 거의 없는 이 소설에서 아무래도 나는 주인공의 ‘딸’이나 젊은 층의 말들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냥 불쑥 옛 기억이 떠오르고 그 이야기를 때로는 뜬금없는 상황에서라도 꼭 하고 싶은 이 노년 여성의 재현이 어쩌면 다소 편견에 일조하는 측면도 있어 보이고.

작금의 시국과 노년-여성 혐오를 두루 다루려고 했음은 알 것 같았는데, 제목도 그렇지만 어쨌든 ‘저물녘’에 관한 이야기 정도로 읽혔다.

2. 임현,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

임현 작가의 단편도 꽤 오랜만이다.

작년에 핀 시리즈 <당신과 다른 나>가 있었고, 아마 단편 근작은 작년 봄에 <맹> 아니었나 싶다.

이 소설 역시 꽤 시의적이면서, 또 임현 특유의 윤리적 고민들이 담겨 있다.

아마 임현의 독자라면 ‘그게 진짜로 맞냐고, 그걸 눈으로 보았다고 해도 그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따져 묻는 방식을 기억할 것이고, 이 소설에서도 토끼처럼도 보이고 오리처럼도 보이는 하나의 그림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동일한 한장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리이거나 토끼일 뿐, 오리인 동시에 토끼인 것을 경험할 수는 없다”고 ‘나’는 강의를 하는데, “근데요, 이렇게 하면 그게 보이던데요”라면서 눈을 게스츠레 하게 뜨는 ‘오명조’를 만나는 장면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지없이 ‘나’ 옆에 있는 아내 ‘연재’까지, 임현 소설의 구도가 그대로 들어 있다.

아쉬운 점은 ‘나’가 대학의 시간강사로서 갖은 고용의 불안과 아내와의 에피소드, ‘오명조’와의 관계 등이 ‘오리와 토끼’ 그림 정도로는 유기적으로 엮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오명조’의 캐릭터가 좀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흔히 단편에서 자주 등장하는, 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지만 합리와 상식을 뒤흔드는 독특한 캐릭터로서 ‘오명조’는 다소 약하다는 생각이다.

‘오명조’와 짧게 나눈 대화 정도로, 또 발표조를 바꿔 주지 않았던 에피소드 정도로 소설의 축을 삼기에는 밀도가 좀 떨어진다.

특히 소설이 던지는 질문이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완전히 다른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근심하고 골몰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라면 이 소설의 방향이 자칫 유보적으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결코 하나이지는 않고, 당신의 세계에 나는 가능한 한 엮이고 싶지 않으며, 결국은 당신이 틀리지 않았냐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에 참을 뿐이라고, 그렇다고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렇게 계속 항변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밀어내려는 인물만이 강조되는 것은 아닐까.

사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 의심하면서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중심으로 서사가 직조될 때, 임현이 하고 있는 고민과 작업이 좀처럼 도약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자기반복의 문제일까, 주제의식의 문제일까.

임현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낯선 구도에서 이런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

3. 최민경, 내 첫번째 거위

2006년에 데뷔하였으나 장편 위주로 작품 활동을 해온 것 같다.

작품을 읽은 기억이 없고, 소설의 도입부가 평범하지는 않아서 기대를 갖고 읽었다.

소설은 함께 살고 있는 연인 ‘종현’과 ‘누나’의 이별을 다루는데 마치 김남숙의 인물 구도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고 집 안에 ‘거위’를 들이는 모티프 역시 내게는 좀 익숙했다.(트위터 때문…)

동물원 사육보조사로 일하거나 콜센터 근무하는 인물에게서 누구나 예상 가능한 이야깃거리들이 추출되고, 동거의 에피소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후배 등 대체로 너무나 익숙한 청년 서사의 구도로 전개되어서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74년생인 작가의 이력을 고려할 때 의외로 어색하게 튀거나 올드한 지점이 없었다는 게 눈에 띄긴 했지만 소설의 결말이 후련하고 깔끔한 홀로서기여서 풍성하게 읽기도 힘들 것 같다.

4. 김유나, 이름 없는 마음

신인상 소설 부문에는 총 1,417편이 투고되었고 이 중 네 편을 최종적으로 논의하다가 이 작품이 당선작이 되었다.

심사평을 빌리자면 “이 작품은 아픈 손가락 같은 동생 현권을 자신의 집 근처로 데려와 챙기려는 누나의 시도가 결국 수포로 돌아가는 일종의 실패담”이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삶이 다소 안정된 ‘나’가 철도 없고 이해도 잘 안 가는 세살 터울의 남동생 ‘현권’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전셋집을 얻어 주려 하는데, 나로서는 읽는 내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무엇 때문에 저토록 전전긍긍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남편’과 ‘현권’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있고, ‘현권’의 사연은 대체 무엇인가 계속 궁금하게 만들지만 그것만으로는 꽤 부족해 보였고, 도입부에서 ‘나’가 난임 상태에서 시술을 결심한 시기와 ‘현권’의 돌봄을 연결시키려는 것도 다소 난감한 면이 있었다.

‘남편’, ‘현권’, ‘준희’ 등 이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들이 흥미롭지만 조금 평면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 사실상 모든 단점을 상쇄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비가 내려 우산이 없던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비를 쫄딱 맞고 집에서 우산을 가져와 행여나 누나를 놓칠까 엉엉 울며 그 큰 우산을 쓰고 있던 동생의 모습, 그리고 “누나는 우산 없어도 되니까 다시는 기다리지 말라고. 나 안 챙겨도 되니까, 너나 잘하라고” 말했던 일,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마음.”

다소 낭만적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장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런 장면을 자주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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