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과 김훈

(이 글은 <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에 실린 리뷰 중 일부입니다)   소재주의라는 매혹과 실패 – 장강명,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 2016)   이제 장강명에 관해서라면 어느 정도 합의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장르적 문법에 관심을 갖고 소설을 시작했고, 기자 생활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에 관해 구체적이고 생생한 눈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전업 소설가로의 […]

손보미, 『디어 랄프 로렌』(문학동네, 2017)

소설을 믿는 소설   손보미의 첫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그간 인상적인 단편들로 익히 주목을 받아 온 작가였고, 그래서 그가 써내는 장편은 어떤 모습일지 꽤 궁금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첫 장편소설은 손보미의 단편을 그대로 확장해 놓은 것 같고, 장편으로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에서 잘 드러났던 손보미 특유의 이국적 감각, 소설의 인물이나 배경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소설의 […]

김중혁, 『나는 농담이다』, 민음사, 2016

(계간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선택” 원고의 일부입니다.)     사실 김중혁의 최근 작품들이 평단으로부터, 또 독자들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았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 2014) 같은 장편이나 『가짜 팔로 하는 포옹』(문학동네, 2015)에 수록된 단편들은 김중혁이라는 소설가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 것 같다. 다만 에세이스트로서의 김중혁,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김중혁, 북 리뷰어로서의 김중혁은 기대 이상이었고 […]

이은희, 『1004번의 파르티타』, 문학동네, 2016

(계간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선택” 원고의 일부입니다.)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신춘문예 2관왕이라는 후광이 아니더라도 잘쓰는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의 단편소설을 구상하고, 솜씨 있게 완결짓는 감각은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특히 각 작품의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또 어디에서 이야기를 잠시 […]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6 / 김언수, 『뜨거운 피』, 문학동네, 2016

(계간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 “선택” 원고의 일부입니다.)     정이현의 지난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문학과지성사, 2007)이 나온 게 벌써 9년 전이었다는 사실을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다. 그는 단편을 쓰지 못했던 긴 시간들을 ‘지나왔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돌이켜보니 정이현도 꽤 변한 것 같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를 읽으면서, ‘지금의 우리’를 읽어내려는 이 작가 특유의 예민한 […]

김솔, 유럽식 독서법(2016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솔식 소설법       소설가의 오래된 꿈 중 하나는 ‘경계’를 지우는 것이다. 작가와 독자 또는 허구와 현실을 구분 지을 필요 없이, 국적과 언어와 인종을 넘어서, 소설을 구성하는 그 모든 것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소설 그 자체로만 남는, ‘무경계의 텍스트’를 만드는 것.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름을 달고, 혹은 메타픽션이라는 형식으로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보르헤스의 후예가 되고자 […]

한국소설을 잊은 당신에게

(이 글은 격월간 <릿터> 1호에 실려 있습니다.)                      한국 소설의 독자로 당신을 끌어들이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가 있을까. 늘 열심히 챙겨 읽는 매니아들 말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그제야 들여다보는, 이야기의 문화 생활은 영화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소설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당신 말이다. 당신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최근에 샀을지도 모른다. […]

성석제, 믜리도 괴리도 업시(문학동네, 2016)

스토리텔링 애니멀   “형님, 문학이 별거예요? 그냥 노가리 까고 생각나는 걸 글로 쓰면 문학이지. 문학은 말로만 해도 되니까 과외나 비싼 레슨 받아야 하는 그림이나 음악보다 훨씬 쉽죠.”(「블랙박스」, 39쪽)     아마도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인상적일, ‘박세권’의 일갈로부터 이 글을 시작해보자. 소설을 사실상 대필하고 있는 그는 소설가 ‘박세권’을 향해 구구절절 통쾌할 정도로 맞는 말을 쏟아내는데, 곰곰이 […]

김혜진, 어비(민음사, 2016)

단호한 표정의 정직한 소설       0.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하자.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소설가는 소설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 소설이 세계를, 또는 인간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누군가와 소설 따위는 그저 이야기의 한 방식일 뿐이라고 여기는 누군가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소설과 사유와 몽상을 자유롭게 헤매는 […]

편혜영, 홀(문학과지성사, 2016)

  크게 적혀 있듯, 편혜영의 네번째 장편소설. 모든 작품을 따라 읽은, 아마 몇 되지 않는 작가 중 한 명이지 싶다.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늘 그냥 모두 읽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잘쓴다는 얘기. 전작인 <선의 법칙>도 꽤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언제나 드는 생각은 편혜영은 장편의 작가가 아니라는 것. 인물도, 이야기도, 문장도 모두 단단하고 탄탄해서 흠잡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