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도희야>를 보았다. 대체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되지만 <한공주>, <셔틀콕>에 이어 이 영화까지 보자 일종의 불만 같은 것도 생겨났다. 치밀하고 섬세하게 씌어진 각본과 이를 담아내는 연출력은 훌륭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놀라웠다. 열다섯의 김새론은 물론이고, 송새벽이라는 배우의 내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자체로 불만이기도 하다. 한국의 젊은 신인 감독들은 마치 꼭 그래야 한다는 듯 […]

그녀(her)

  또 한 편의 훌륭한 영화를 봤다.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에서 각본상밖에 받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애초에 호아킨 피닉스만 기대했던 나로서는 감탄의 연속. 가까운 미래에 “가상인격”을 설정해놓고 ‘사랑’과 ‘관계맺음’에 대해서 집요하게 성찰하는 이 영화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가 않다. 주인공인 저 남자, 테오도르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운영체제인 사만다와 사랑을 나누는데, 그렇기 때문에 화면은 늘상 […]

한공주와 셔틀콕

  최근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두 편 모두 젊은 신인 감독이 찍은 작품이고, 결론적으로는 둘 다 좋았다.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고, 이야기를 쌓아 나가는 방식이 두 편 다 비슷했다. 이 감독들은 장면 하나하나를 대단히 섬세하게 찍고 있는데, 민용근 감독을 생각나게 한다.   <한공주>는 지켜보기가 아주 어려운 영화다. 끔찍한 경험을 겪은 한 소녀가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

만신

  박찬경 감독의 <만신>. 여기저기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렸지만, 딱히 관심이 생기지 않았었다. 어제 우연히 시간이 비어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잘한 결정이었다.   이 영화는 형식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다. 다분히 형식주의자인 나로서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여러 실험적 시도들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이를테면 첫 장면은 무당인 김금화가 이 영화가 잘 되라고 고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주 멋진 영화.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접했다. 어쩌자고 미국에서는 이렇게 재능있는 감독들이 자꾸 탄생하는지. 어른들에게 필요한 동화 같은 이 영화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다. 이 감독이 그려낸 세계대전을 전후한 20세기 초반의 유럽(주브로브카)이라는 공간부터, 이 속에 들어 있는 저 수많은 군상들. 이를 정말로 멋있는 화면에 담아내는 솜씨. (색감이 엄청나다) 서로 내가 […]

노예 1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라 조금 망설였다. 게다가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참으로 미국적인, 그리고 예측되는 서사들 때문에도 망설였다. 망설임을 불식시킨 것은 영화의 덤덤함 같은 것이랄까. 흑인 노예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우리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지점들을 굳이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흔한 드라마가 되지 않도록 고심한 것 같다.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 특히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이런 저런 단상들. – 이 정도 수준의 영화라면 결코 후회할 일이 없겠고, 딱 아카데미가 원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 남우주연, 조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라 연기가 굉장히 과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정직하고 적절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영화를 이끌어 갔다. – 성적소수자에 관한 미국의 시선은 집요하고 작위적인 면이 있지만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휴머니즘 때문에 늘 설득당한다(미국적 가치라는 […]

몽상가들

이 영화를 2003년에 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스무살의 내가 이 영화를 봤다면 정말이지, 안 본 것만 못 했을 거다. 2014년에 재개봉을 해준 덕에 이 명작을 영화관에서 보게 됐다. 내가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다른 영화들의 좋은 점들을 이 영화가 선취하고 있는 게 많았다. 우선 이 세 젊은이가 머무는 공간, 그다지 넓지도 않은 ‘집’인데 여기에서 영화의 […]

인사이드 르윈

    코엔 형제의 영화가 이런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아마도 <파고>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번 애프터 리딩>과 <시리어스 맨>을 보지 않은 이유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영화들과 <인사이드 르윈>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1960년대 뉴욕의 포크 싱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흥미롭게도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자기가 […]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아델의 삶 1,2부)

  이 영화를 레즈비언에 관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삶의 방식에 관한, 사랑의 형식에 관한 것이다. 글쎄, 나에게는 아델이 아닌 엠마의 방식이 좀 가깝지 않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자아를 실현시켜나가는.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러기를 바라는. 아델의 방식은 다르다. 뭔가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