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창비 여름호를 읽었다. 아무래도 특집란에 먼저 눈길이 갔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강경석 평론가의 “혁명의 재배치”는 나에게 이제야 페미니즘이 혁명임을 ‘겨우’ 인정하는 글로 보였다. 이건 전혀 폄하나 조소의 의미가 아니라 뒤늦은 환영이다. 비로소 창비 진영은 퀴어-페미니즘 문학이 ‘혁명’과 함께 얘기될 수 있다고 여러 레퍼런스들을 호명하는데, 결국은 ‘계급’의 문제를 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

문학들 / 대산문화, 2019년 여름호

     <문학들>, <대산문화> 여름호에 실린 작품을 읽었다. <문학들>은 늘 그렇듯 세 편의 소설을, 지역 작가, 신인 작가, 중견 작가로 구성하고 있고 <대산문화>는 항상 두 편의 소설이 실리는데 이번에는 권여선 작가의 작품만 있다. 지면의 변화는 아닌 것 같고, ‘펑크’일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다. 아무튼 간단하게 평을 남겨 놓으려 한다.   1. 김해숙, 매달린 남자  ★★☆ […]

자음과모음, 2018년 여름호

  자모 여름호를 읽었다. 확실히 이제 종합문예지에 가까워진 것 같고, 신인상을 비롯해 경장편소설상 수상자도 뽑았다. ‘지방’이라는 키워드는 조금 더 흥미로운 글들을 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약간 아쉽다. 이를테면 이번에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지만 <복학왕의 사회학> 같은 저작이 함께 다뤄졌으면 훨씬 풍성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음 호에서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좌담’과 ‘리뷰’ 쪽에 눈길이 갔는데, […]

문학동네, 2018년 봄호

  <문학동네> 봄호를 읽었다. 젊은작가상 수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절반 정도는 기대하고 지지했던 리스트이고, 또 절반 정도는 약간 의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갖고 읽었던 작품들이 빠져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정된 작품들 모두 각각의 매력은 충분한 소설들이다. 김숨과 최은미는 작가론이 마련되어 있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데 정홍수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느껴지는 김숨의 저 고집스러운 면모는 […]

21세기문학, 2017년 겨울호

  <21세기문학>을 읽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내가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권 배송이 왔다. 덕분에 2권이 되었고, 주변에도 하나 줄 수 있었는데 왜 나에게 책이 왔는지 사실 전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러저러 해서 읽은 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야 간단히 기록해둔다. 시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지만 실린 소설들이 대체로 좋았다. 또 비평란에 실린 ‘중국의 문학장’이라든가 […]

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문사 봄호를 읽었다. 빼놓을 게 없을 정도로 풍부했다. 김사과의 글과 강혜빈의 시가 좋았고, 하이픈에 실린 글들은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이렇게나 많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머리가 아플 때는 역시 소설이다.   1. 권여선, 손톱  ★★★★☆ 이제 권여선이라고 하면 조금은 과한 기대를 갖고 읽게 되는데, 여지없이 그걸 충족 시켜준다. 사실 그냥 만점을 줘도 무방한, 봄 소설 중 […]

한국소설을 잊은 당신에게

(이 글은 격월간 <릿터> 1호에 실려 있습니다.)                      한국 소설의 독자로 당신을 끌어들이기에 지금보다 좋은 때가 있을까. 늘 열심히 챙겨 읽는 매니아들 말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 그제야 들여다보는, 이야기의 문화 생활은 영화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한국 소설은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당신 말이다. 당신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최근에 샀을지도 모른다. […]

창작과비평 / 문예중앙, 2016년 여름호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   창비는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고 있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한국문학, ‘닫힌 미래’와 싸우다’에 실린 글들은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인데, 그냥 그 얘기하려고 작품을 아무렇게나 끌어들인 느낌이다. 신샛별 평론가의 ‘한강론’은 다분히 ‘시의적’인데,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로 한강을 좁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바람이 분다, 가라>나 <희랍어 시간>, 그리고 꾸준히 써낸 단편집들을 두루 살폈더라면 좋았을 […]

지난 가을의 소설들(4)

<문학과사회>, 2014년 가을호   1. 황정은, <웃는 남자> 잘 쓰는 작가들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단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황정은은 이제 자신이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쓰는 것 같다. 그건 작가가 숙련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황정은이 늘 그렇듯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쓴 느낌이지만 좀 익숙해서, 1년 […]

권여선, 토우의 집(자음과모음, 2014)

‘한국’ 소설은 필요한가 (이 글은 격월 <서울대저널> 3,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혹 지금 당신의 손에 소설책이 들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 소설일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어떤 계기로 인해 소설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 그 관심을 한국의 소설 쪽에 투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성장기의 교과서 문학으로부터 형성된 한국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것인데, 대체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