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2019.12-1 / 악스트, 2020.1-2

  악스트와 릿터를 읽었다. 릿터는 이미 22호도 나왔고, 크릿터 2호에, <한편>까지 있어서 뭔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아무튼 읽은 기록을 좀 남기기로. 릿터야 뭐 늘 재밌는 글이 많은데, 21호에는 유독 실린 시들이 다 좋았다. 말 그대로 ‘젊은’ 시인들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신선했다. 소설은 3편이 실려 있다.   1. 김희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1969년 […]

현대문학, 2018년 1월호

  월간 <현대문학> 1월호를 읽었다. <현대문학>은 매년 1월호에 다수의 작품을 실어 상당한 볼륨으로 책을 내는데 지금은 중편 프로젝트인 ‘핀’ 시리즈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소설의 경우 예년보단 작품이 적었다. 그래도 중편 포함하여 총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1. 강화길, 서우  ★★★★ 강화길이 “실종된 여자들은 모두 마지막에 택시를 탔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또 ‘여자’들에게 […]

21세기문학, 2017년 가을호

  <21세기문학>을 읽었다. 소위 메이저 출판사의 문예지를 제외하면 가장 풍성한 듯하다. 구성도 꼭 필요한 것들로 다양하고, 필진이나 작품의 수준도 늘 좋은 편이다. 다만 확실히 편집이나 교정에 있어서 전문성이 떨어진다. 오타는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교열조차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열악한 제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출판하여 판매하는 문예지가 이토록 허술한 건 좀 문제다.   ‘페미니즘 시대의 […]

문학동네, 2017년 가을호

  문동 가을호를 읽었다. 늘 풍성한 편이지만 이번 호는 특히 읽을거리가 많았다. 김영하와 김애란에 대한 ‘초점’란은 대담이 재미있게 읽혔고, 강화길 작가에 대한 ‘조명’도 시의적절한 것 같다. 박상륭 작가에 대한 추모의 글은 문사 쪽에 실린 글들과 함께 읽으니 꽤 다채롭다. 이 기회에 <죽음의 한 연구>를 제대로 읽어보면 좋을 텐데, 또 실패할 것 같아서. ‘비평’이나 ‘시’ 지면 […]

문학3, 2017년 2호

  <문학3>은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 하다. ‘문예지’로의 성격을 강화한 창비의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작은’ 창비의 느낌. 다섯 명의 시인과 다섯 명의 소설가가 차지하는 지면이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바로 읽고 ‘중계’하는 지면이나 사진이나 만화가 실리는 ‘시선’ 지면 등이 강조되었으면 싶다. 이런저런 사건이 많아서였는지, 오탈자도 꽤 눈에 띄었다. […]

소설가란 무엇인가

(이 글은 서울대학교 대학신문 9월 26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302 )       마치 이제 소설 같은 건 아무도 읽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지만, 한국에서만 매년 수십 명의 소설가가 탄생하고 매달 수십 권의 신작 소설이 출간된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계시겠지요. 21세기에, 아니 정확히는 2016년에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키보드로 검은 글자를 두들겨 넣는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어떤 […]

지난 겨울의 소설들(1)

여전한 게으름으로 업로드가 늦고, 이런 시기에 창비와 문동을 읽는다는 게 떨떠름하지만, 그냥 할일을 한다는 심정으로, 짧게.   <문학동네>, 2014년 겨울호   1. 김훈, 영자 어쩐지 김훈답지 않은 소설이다. 역사와 자연이 섞여 인물을 뒤흔드는 최근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노량진’의 디테일이 역시나 아쉽다. 취재와 조사로는 얻을 수 없는, 어떤 실감을 작가는 놓치고 있다.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