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읽은 시

소소하고 착한 시-한연희의 시들 (이 글은 월간 <심상> 1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라는 제목의 첫 소설집을 낸 최은영이라는 작가를 잠깐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고 싶다. 그의 작품들에 달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착하다’는 것이다. 선한 인물들이 고통과 상처에 공감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이야기, 그리하여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

10월에 읽은 시

부정(否定)의 감각 (이 글은 월간 <심상> 10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어도 어떤 글을 읽을 때, 그것이 비록 시가 아니라도, 잘 쓴 글인지 못 쓴 글인지는 대강 알 수 있다. 하나의 단어, 하나의 문장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애써 고민했는지 읽으며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맞춤법이나 비문 같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적절한 어휘를, […]

9월에 읽은 시

어쩌면 영원 (이 글은 월간 <심상> 9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영원(永遠)이라는 명사는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 또는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아니함”의 의미를 가진다고, 국어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무한이 공간의 문제라면 영원은 시간의 문제이고, 시간은 인간이 가진 모든 고민의 근원이다. 그런데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은, 또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시간의 문제와 관계가 없다고도 볼 […]

8월에 읽은 시

지구를 떠나서 – 하재연의 시 (이 글은 월간 <심상> 8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예술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은 ‘뻔하다’는 것, 익숙함이다. 새로움에 대한 욕망과 갈급함은 모든 시인에게 있겠지만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늘 그들은 ‘낯설게 하기’라는 망령과 싸워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조금씩의 변화, 아주 약간의 차이가 (그런 […]

7월에 읽은 시

상실의 시대 (이 글은 월간 <심상> 7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한국에서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후 한국 문학의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엄청나게 읽히고, 말할 수 없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후 하루키에 의해 다시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만 출간되어 오고 있지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은 […]

6월에 읽은 시

사랑, 사랑, 사랑 (이 글은 월간 <심상> 6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가장 처음 접했던 시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그리고 돌이켜보면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는 여러 시들도 역시 늘 ‘사랑’을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시들은 끝없는 설렘과 아득한 위로, 알 수 없는 먹먹함과 깊숙이 숨어 있는 상처 […]

5월에 읽은 시

빛의 호위 (이 글은 월간 <심상> 2016년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어떤 말들은 너무 흔하게 쓰여서 특유의 말맛을 잃기도 하는데, ‘빛’이라는 단어가 그런 것 같다. 어둠이나 암흑의 반대편에서, 그러면서도 단지 긍정과 희망의 의미로만은 아니게, 시각적이면서 동시에 촉각적으로, 순간과 영원을 아우르고 광활함과 협소함을 가로지르며 ‘빛’은, 그 모든 것을 의미한다. 빛은 근본적이며 절대적이어서 그 어감을 생각하기 […]

4월에 읽은 시

전형적인 시 (이 글은 월간 <심상> 2016년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어떤 오래된 시인이 자신의 시를 읽는 영상을 보았다.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꾹꾹 읊어 내려가는 모습에서 시가 ‘낭독’의 장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우리는 자주 눈으로만 시를 읽는다. 묵독은 현대시를 받아들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때때로 많은 것을 놓친다. 소리 내어 발음할 때의 어휘 감각, […]

3월에 읽은 시

평범함에 대하여 (이 글을 월간 <심상> 3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시에 관한 가장 전통적인 상식 중 하나는 독자를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어가 아니라 문학어로서 이루어진 언어 예술 장르가 ‘시’임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시인은 언어를 잘 다듬어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초대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시의 언어가 평범하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이 나쁜 […]

2월에 읽은 시

연표, 달력, 역사 – 김경미의 시 (이 글을 월간 <심상> 2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시인 김경미의 작품 다섯 편을 읽었다. 한 시인이 가진 다채로운 세계를 접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 시인이 어떤 것에 골몰하는 ‘연속’을 따라가는 것도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굳이 연작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시인의 사유와 시선이 각 시편 속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