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창비 여름호를 읽었다. 아무래도 특집란에 먼저 눈길이 갔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강경석 평론가의 “혁명의 재배치”는 나에게 이제야 페미니즘이 혁명임을 ‘겨우’ 인정하는 글로 보였다. 이건 전혀 폄하나 조소의 의미가 아니라 뒤늦은 환영이다. 비로소 창비 진영은 퀴어-페미니즘 문학이 ‘혁명’과 함께 얘기될 수 있다고 여러 레퍼런스들을 호명하는데, 결국은 ‘계급’의 문제를 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

Axt, 2019년 9/10월호

  <Axt>를 읽었다. 원래도 그랬지만 잡지를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를 선정하고 지면을 세부적으로 기획해 청탁을 하고 소설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폭을 늘리고. 어떻게 이 일들을 격월로 할 수 있을까. 물론 실무를 담당하는 분들의 규모가 꽤 있긴 하지만. 아무튼 악스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메인 인터뷰가 최제훈 작가여서 더 관심이 갔다. 이십대 중반(?)이었나, […]

문학3, 2019년 1호

  올해 1호 <문학3>을 읽었다. 실린 글들이 대체로 좋았고, 정세랑 작가의 글이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했다. 그게 어떤 매체이든, 또 어떤 방식이든 소설가가 소설이라고 썼다면 소설이지 않느냐는 말은 장르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도착하는 결론이기도 한데, 만약 그렇다고 하면 장르론이라는 것은 정말로 허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창작자가 이게 ‘소설’이라는데 거기에 무슨 […]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창비 봄호를 읽었다. 문단의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터져 나오는 시기에 이에 관해 특별히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 것은 ‘창비’라는 문예지가 좀 무감각한 게 아닐까. 정치사회적 이슈에 중점을 둔 문예지라고 해도, 또 분단체제나 개헌 문제 같은 것이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는 해도, ‘고은’의 진영에서 이토록 방관하는 태도는 무책임하다. 백낙청 명예편집인과 여섯 명의 편집고문, 또 한기욱 편집주간과 무려 […]

문학동네 /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

<문학동네>는 읽을 게 너무 많아서, <창작과비평>은 읽을 게 너무 없어서 탈이었다. 문동의 ‘한강’이나 ‘박찬욱’ 대담은 그 자체로 재밌었고, ‘악’이나 ‘페미니즘’ 같은 특집도 도움이 많이 됐다. 창비는 문학 관련 글이 너무 적었는데, 뭐 따로 잡지를 하나 만든다고 하니. 두 잡지 모두 신인상을 뽑았다. 평론 부문은 자주 그랬듯 당선자가 나오지 않았고, 시와 소설에서 각각 한 명씩 ‘등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