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19년 봄호

  올해부터 읽은 소설은 모두 단평을 올리기로 다짐했는데, 또 한참 버려 두고 있었다. 겨울호와 월간지 읽은 것들 다 업로드 하려면 또 한 세월이어서 포기하고, 봄부터 새롭게 또 각오를 다지며.   역시나 가장 먼저 나온 창비를 읽었다. 시는 대체로 좋았는데, 곽문영, 장혜령이 특히 좋았다. 그리고 최근 <자음과모음>에 실린 것도 그렇고 이소호의 시는 좀 난감하다는 생각도 했다. ‘대화’에서는 […]

문학과사회, 2017년 여름호

  문사 여름호를 읽었다. 하이픈의 ‘시-인’이 무척 풍성하게 느껴진 반면, 본권은 약간 단조로운 느낌이었다. 리뷰나 페미니즘 기획은 좋은 시도고 방향이라 여겨지지만 사실 새롭지는 않고, 본격적인 ‘비평’이나 ‘담론’의 자리가 부족한 듯 하다. 무엇보다도 신인문학상을 시 부문밖에 선정하지 못해 단출해 보였다. 평론 부문이야 수상자 없음이 익숙하지만 소설 부문을 끝내 뽑지 못했다는 건 여전히 ‘문지’형 작가를 찾고 있어서 […]

지난 가을의 소설들(4)

<문학과사회>, 2014년 가을호   1. 황정은, <웃는 남자> 잘 쓰는 작가들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단편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황정은은 이제 자신이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쓰는 것 같다. 그건 작가가 숙련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황정은이 늘 그렇듯 한 문장 한 문장 꾹꾹 눌러 쓴 느낌이지만 좀 익숙해서, 1년 […]

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2014, 창비)

 (이 글은 계간 <문학의 오늘> 겨울호에 실려 있습니다)     사려 깊은 세 가지 목소리     소설은 결국 언어의 예술이라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어떻게’가 아니라 ‘누가’인 이유는 소설이 또 결국 화자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문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문자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 소설 속의 […]

황정은, “양의 미래”에 관해

황정은의 새 소설이 나온 김에, 예전에 써놓았던 글을 하나 업로드.   선택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황정은의 「양의 미래」에 관한 몇 가지 주석     한 사람의 손이 내게 왔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차가웠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양이 없는 하루. 나는 양으로서 녹색 벼랑의 풀을 조금 뜯어 먹었고, 지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죽음을 […]

문예중앙, 2013년 겨울호

복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잡지는 여러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좋은 작가들의 글도 제법 실리는 편이라 챙겨보고 있는데 아마 올해부터 일종의 ‘혁신호’라고 해서, 대대적인 개편을 앞두고 있는 듯하다. 편집위원으로 낙점된 시인 오은, 소설가 편혜영,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 씨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얼핏 듣기로는 “작품” 만을 싣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나로서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면 하고.   어쨌든 […]

황정은, 야만적인 앨리스씨(문학동네, 2013)

    +계간 <문학동네> 2014년 봄호에 실릴 리뷰의 일부입니다.   지금, 한국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를 한 명만 꼽으라면 조금 망설이는 척하다가 황정은이라는 이름을 꺼내야 할 것 같다. 1976년에 태어나 2005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채 십 년이 되지 않는 사이에 두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다작도, 과작도 아닌 작가의 이력을 굳이 상기시키는 것은 […]